37년간 질긴 인연 이어온 '산업은행 & 대우조선'

입력 2015-10-29 16:00  

설립초기 참여…89년 산업합리화·99년 대우사태 때도 지원

해양플랜트에서 대규모 부실을 드러낸 대우조선해양과 그 위기 탈출을 돕는 산업은행은 그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다.

산은은 대우조선 설립 당시부터 산파 역할을 도운데다 위기를 겪을 때마다 버팀목이 돼 왔다.

산은은 지금도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이다.

◇ 옥포조선소 기반 대우조선 설립 때부터 산은 출자 대우조선이 간판을 내건 것은 1978년 가을이다.

국영기업인 대한조선공사가 짓던 옥포조선소를 대우가 떠맡게 된 것이 그때였다.

옥포조선소는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따라 1973년 5월 착공됐지만 1차 오일 쇼크에 따른 세계 경기 하강으로 공사가 진척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설립 초기에 지분의 40% 넘게 출자했다.

대우조선의 1980년대는 그늘이 많았다.

만성 적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게다가 1987년 이후 노사분규의 회오리는 1989년 여름에는 폐업 직전까지 몰고가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조선 경기마저 부진했다.

부실해진 대우조선은 1989년 8월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되며 위기를 맞았다. 이때 산은의 지원이 이뤄졌다.

당시 대우가 계열사와 부동산 매각과 대우조선 증자로 4천억원이 넘는 자구노력을 하는 대신 산은이 대출금 상환을 유예하고 신규 자금을 수혈한 것이다.

사업을 다각화해 경영 정상화를 꾀하고자 대우조선이 국내 첫 경차인 티코를 만들고 굴삭기나 지게차 같은 중장비 제조에 손을 댄 것도 이 무렵이다.

대우조선에 대한 대우의 증자와 자구책은 40%대이던 산은의 지분율을 1년 사이에 10%대로 떨어뜨릴 정도였다. 조선 경기도 호전되며 1991년에는 사실상 첫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산업합리화 조치의 족쇄에 따라 대우조선은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에합병됐다.

◇ 분식으로 얼룩진 대우사태…대우조선 새 출발 때 첫 출자전환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1999년 대우사태다.

세계경영을 기치로 외형을 키우던 대우그룹이 결국에는 유동성 위기를 맞은 것이다.

채권단은 재계 서열 2위였던 대우그룹의 자체구조조정방안이 시장 신뢰를 잃자1999년 8월 대우중공업을 포함한 12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들어갔다.

정부의 공적자금백서를 보면 1999년 12월부터 2000년 8월까지 대우그룹에 대한특별감리 결과, 부채 고의 누락과 가공채권 계상 등으로 드러난 분식회계 금액이 22조9천억원에 달했다. 분식회계액은 세계경영의 핵심축이었던 ㈜대우가 14조원이 넘었지만 대우중공업도 2조1천억원이나 됐다.

채권단은 진통 끝에 2000년 10월 대우중공업을 대우조선공업과 대우종합기계로나눠 '클린 컴퍼니'로 출범시키고 그해 12월 양사에 출자전환을 단행했다.

출자전환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주도했다.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캠코)의 부실채권정리기금의 대우조선에 대한 출자전환 채권액은 1조1천714억원이다. 이과정에서 산은은 주당 5천335원에 8천99만주를 취득했다.

그 결과 이듬해 2월 대우조선의 신규 상장 당시 산은의 지분율은 41%, 캠코는 26%였다.

◇ 경영 정상화 이후 2008년 뼈아픈 매각 실패 그 후로는 경영 정상화를 이루고 지분을 팔아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게 산은과캠코의 지상과제가 됐다.

대우종합기계는 2005년 1월 1조8천973억원에 두산중공업에 팔렸다. 당시 매각된지분(51%)은 캠코와 산은이 갖고 있던 지분 가운데 각각 31%, 20%였다.

대우조선은 2001년 8월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하고서 순탄한 길을 걸었다. LNG선 등에서 최고 경쟁력을 확보했고 그간 잠수함 건조를 포함한 방위산업 분야에서도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주인 찾기에는 실패했다.

산은과 캠코가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발행을 통해 보유 지분(산은 42.1%, 캠코27.6%) 가운데 15%(각 10%, 5%)를 2억2천600만달러에 해외에 판 일이 있지만, 실제매각이 본격화된 것은 주가가 급등한 2007년부터다.

2006년말 3만원을 밑돌던 대우조선 주가는 2007년 10월 6만5천원까지 올랐다.

아직 깨지 못한 역대 최고가다.

그래서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매각 대상은 산은(31.3%)과 캠코(19.1%)의 보유 지분 50.4%(9천639만주)였다.

2008년 3월부터 시작된 공개경쟁입찰에서 포스코와 GS, 현대중공업, 한화가 참여한 예비입찰, 현대중공업과 한화 간에 이뤄진 본입찰을 거쳐 그해 10월 한화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주가는 4만원을 밑돌있으나 한화컨소시엄이 제시한가격은 6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을 맞았다.

한화가 본계약 체결 연기나 분할납부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매각대금을 기한 내에 내지 못하면서 이듬해 1월 매각절차가 중단됐다. 당시 이행보증금 3천150억원 반환을 둘러싼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 공격적 영업에 글로벌 업황 부진이 부실로…또 출자전환 그 후로도 2009년 12월에 이어 2012년 1월에 매각을 시도했으나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지난해 5월에도 시장에 인수 의사를 타진해봤으나 인수 의사를 표시한 기업은나타나지 않았다.

중국의 조선산업 성장, 업황 부진, 대우조선의 실적 악화가 맞물린 상황이어서그랬다.

캠코는 2013년 2월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청산하면서 갖고 있던 대우조선 지분 17.2%를 금융위원회의 공적자금상환기금에 넘겼다. 금융위는 이 가운데 5% 지분을 블록세일 방식으로 팔아 3천402억원을 회수했다.

따라서 지금은 산은이 31.5%를 가진 최대주주, 금융위가 12.2%를 보유한 2대주주다.

최근의 위기는 경영진 교체 이후 부실을 털어내는 과정에서 불거졌지만 그간의외형 확장이 화근이 됐다.

2000~2013년에 이뤄진 해양플랜트 수주, 풍력발전 등으로의 사업을 다각화하는과정에서 공격적인 영업이 이뤄졌지만, 예상보다 길어진 경기 침체나 유가 급락이대우조선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산은은 29일 대우조선 경영정상화 방안에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유동성 지원과 연계한 유상증자, 출자전환 등의 방식으로 자본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0년에 이은 두 번재 출자전환이다.

대우조선의 주가는 2분기에 3조원의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급전직하했다.

이날 대우조선 종가는 6천820원이다. 시가총액은 2007년 10월 12조2천억원을 웃돌았으나 현재는 거의 10분의 1 수준인 1조3천억원대에 불과하다.

정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 예산안에도 대우조선 주식 매각대금을 반영했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의 내년 매각 물량은 5.72%이다. 지분 12.15%를 갖고있는데 6.43%를 매각한다는 올해 예산을 전제로 잔여물량을 내년에 넣은 것이다.

내년 매각액으로는 과거 평균주가를 단순 반영해 주당 2만4천892원에 총 2천723억원을 책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를 고려한다면 당분간 대우조선 매각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prince@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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