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쌍용차 사태, 본질은 숫자다

입력 2013-01-08 16:35   수정 2013-01-08 16:34


 지난 2003년, 기업개선작업을 막 졸업한 쌍용차는 그 해 15만4,307대를 국내외에 판매했다. 이익도 냈다. 성공적인 기업개선작업을 거쳐 무려 9년 만에 건강을 회복했다. 그리고 이듬해 채권단인 조흥은행은 신한은행과의 흡수 합병을 앞두고 쌍용차 지분 매각을 공고했다. 이 때  상하이차는 1주당 1만원, GM은 7,000원을 제시했다.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기술, GM은 중대형 디젤 SUV가 필요했다.
 
 쌍용차의 미래 생존을 위해선 GM에 인수돼야 했지만 조흥은행은 돈을 선택했다. 가뜩이나 쌍용차로 오랜 기간 골치가 아팠던 만큼 높은 인수금액이 우선이었다. 게다가 조흥은행의 미래가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쌍용차의 앞날은 결코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흥은행 최동수 행장은 "쌍용차가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갖게 됐다"며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 GM으로 가야 된다는 자동차업계의 권고를 외면한 만큼 그야말로 포장이라도 거창하게 했던 셈이다. 
 




 조흥은행이 보유한 쌍용차 주식 48.9%는 그렇게 상하이차에 매각됐다. 그리고 2004년 쌍용차는 13만5,548대를 판매했다. 1년 전보다 1만8,700대가 줄었다. 하지만 2005년은 14만1,306대로 다소 회복됐다. 어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2006년 판매량은 12만1,000대로 2만대 감소했다. 연간 14만대에서 2만대는 14%에 해당되는 물량이다. 매출이 줄고, 수익도 떨어졌다. 당황한 쌍용차는 노사가 합심해 판매 총력전을 펼쳤고, 2007년 13만1,600대를 기록해 이익을 냈다. 마음을 모으면 '할 수 있다'는 신뢰가 회복됐고, 회사는 노조 요구에 따라 임금인상 및 복지를 늘렸다.   

 하지만 문제는 2008년부터 시작됐다. 국제 시장에서 경유 값이 가파르게 오르더니 급기야 연일 사상 최고 가격을 경신했다. 이로 인해 국내외 디젤차가 직격탄을 맞았고, 디젤 제품군이 대부분이었던 쌍용차는 융단폭격을 맞았다. 판매량은 1년 만에 무려 3만8,000대가 줄어든 9만2,600대로 집계됐다. 

 장사가 어려워 집안 살림이 팍팍해지자 노사 갈등은 서서히 깊어갔다. 노조는 판매량 감소에 따른 이익부족을 중국 상하이차 본사에서 가져오라고 경영진을 압박했고, 상하이차 경영진은 쌍용차의 근본 위기는 판매량 감소에 있는 만큼 기존에 올렸던 임금 및 복지 축소가 먼저라고 맞받아쳤다. 

 치킨 게임처럼 평행선을 달리던 노사는 2008년 대안 없는 협상을 펼쳐 갔고, 결국 상하이차는 자신들이 원했던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판단, 쌍용차 주식을 미련 없이 포기하면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그리고 경영에서 물러난 뒤 중국으로 모두 돌아갔다. 순간 노조로선 협상 파트너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싸워야 할 상대가 갑자기 링 밖으로 나가 집으로 돌아간 격이다. 링 위에 홀로 남은 노조는 어리둥절했다.

 상하이차가 떠난 뒤 노조의 새로운 상대는 법원으로 대표되는 정부였다. 하지만 법원은 링을 떠나 경기장을 통째로 없애는 방안을 강구했다. 그리고 회계법인의 실사가 시작됐고, 상하이차가 경영을 포기한 만큼 회생과 청산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방침 아래 법정관리인을 파견했다. 그가 현재 쌍용차 대표를 맡고 있는 이유일 사장이다.

 회생과 청산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자 쌍용차 협력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생을 요구했다. 규모를 줄여 회생이라도 해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판단이 앞섰다. 법원은 결국 구조조정을 전제로 회생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법원의 명령에 따라 쌍용차는 2,600명에 달하는 대규모 구조 조정에 나서게 된다.

 법원의 판단에 맞선 쪽은 노조였다. 회생은 반기지만 구조조정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해고자 명단에 포함된 사람을 중심으로 공장을 점거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에게는 회생을 통한 일감이 필요했고, 공장 점거가 풀리지 않는 이상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 한 때 한솥밥을 먹는 사이였지만 현실 앞에선 서로의 입장 차이만 존재했을 뿐이다.

 갈등의 골은 깊어져 반목과 대립은 극에 달했다. 이대로 배가 모두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그렇다고 정부가 국영기업으로 삼는다는 것도 시장 논리에 맞지 않았다.
급기야 잔류가 결정된 직원들이 공장을 찾겠다고 움직였다. 이들은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공장을 점거한 해고자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회사에 남게 된 사람들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을 못하고, 판매할 차가 없으니 그야말로 해고자들과 함께 굶어 죽느니 공장이나 되찾은 후 같이 죽자고 덤벼들었다. 공장 철조망이 무너지고, 공장 안과 밖은 전쟁터로 변해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개입했고, 파업 해결 과정은 폭력사태로 얼룩졌다.

 그렇게 77일의 파업이 끝나고, 생산이 재개됐다. 하지만 2009년 국내외 판매량은 3만5,296대였다. 사실 상 1년 동안 공장 문을 닫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파업으로 점철된 해를 넘긴 2008년 생산량이 8만1,747대로 올라섰고, 몸집이 가벼워지자 법원은 인도 마힌드라에게 곳간 열쇠를 건넸다. 인수 후 1년 뒤인 2011년 판매량은 11만3,001대로 마감했다.






 일련의 쌍용차 과정을 보면 현재 정치권에서 네 탓 공방을 벌이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쌍용차 사태의 근본은 조흥은행이 오로지 돈만 보고 상하이차를 선택한 것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비록 주당 인수금액은 낮아도 GM에 편입됐다면 쌍용차의 해외 수출 경쟁력은 커졌을 게 명약관화하다.

 그런데 조흥은행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경영상의 책임을 져야 할 상하이차는 손을 털고 국경을 넘었다. 상하이차가 설령 의도적으로 회계를 조작한 뒤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해도 이미 국내법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이 없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를 보면 본질은 잊은 채 오로지 네 탓만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쌍용차 사태의 본질은 상하이차의 주당 인수금액에 눈이 멀었던 조흥은행, 그리고 판매량 감소라는 숫자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만약 청문회에서 무언가 밝혀내려면 당시 중국 상하이차 경영진, 그리고 상하이차에 쌍용차 주식을 넘긴 조흥은행장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 현재 쌍용차 경영진은 곪았던 상처가 터진 후 치료를 목적으로 온 사람일 뿐 문제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더러 이전 상하이차 경영진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그나마 어제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의미 있는 한 마디가 나왔다. 생산량이 늘면 무급휴직자를 우선 복직시키겠다는 쌍용차 이유일 대표의 언급이다. 유럽 불경기가 있지만 상황은 다소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고자 모두를 다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인도 마힌드라 경영진은 '정상화가 우선, 복직은 그 다음'이라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어서다. 청문회에 마힌드라 고엔카 사장을 증인으로 부른 것도 해고자 복직 건의가 목적이었겠지만 참석할 것으로 기대했다면 어리석음의 전형이다. 인도 내 부실에 빠진 자동차공장이 구조조정을 겪고, 현대차가 인수했다고 가정하면 이해가 쉽다. 이 때 인도 국회가 현대차 인수하기 이전의 문제로 현대차 김충호 사장을 증인으로 부른다면 갈 이유가 있을까. 해고자 복직을 받아들이라면 정말 수용할 수 있을까.

 정치권의 쌍용차 청문회 방향은 무엇보다 대안 찾기가 우선돼야 한다. 네 탓 공방은 쌍용차 해고자 문제 해결에 전혀 보탬이 안 된다. 쌍용차를 돕겠다고 한다면 청문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이 쌍용차를 한 대씩 사주면 된다. 그렇게나마 판매가 늘면 복직 시기가 당겨질 수 있어서다. 복직 때까지 해결책을 찾는다면 정부가 일자리를 보장해 주면 된다. 하지만 해고자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복직뿐이다. 그래서 해결점을 찾기가 어렵다. 치킨 게임이 여전히 진행중이다. 

 물론 쌍용차 해고자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모두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할 뿐 어느 누구 하나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쌍용차 사태의 정치적 이용은 오히려 해결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정상화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도록 돕는 게 최선이다. 그나마 묘수를 찾는다면 해고자들의 생계 고통을 줄여주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해고자들이 '오로지 복직'에서 한발 물러나야 가능한 일이다.

 이래저래 답답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쌍용차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려면 정치보다 민간 기업 논리가 더 낫다는 점이다. 좋은 제품 개발해서 판매가 잘 되면 복직은 하지 말라고 해도 기업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 숙련된 근로자 구하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홍영표 의원이 이유일 대표에게 "능력 없으면 물러나라"고 했다. 이유일 대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했다. 만약 이유일 대표가 물러나고 홍영표 의원이 경영을 한다면 해고자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해고자 모두를 복직시키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마힌드라로부터 제명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강행한다면 마힌드라가 다시 손털고 떠날 수도 있다. 쌍용차 앞날에 안개가 드리워지고, 이 문제를 놓고 또 다시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 때는 정말 회생이 아닌 청산에 들어갈 지 모를 일이다.  

 청문회에선 국정조사까지 언급됐다. 국정조사를 통해 상하이차로의 인수 과정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참여정부와 현 정부의 과오가 드러난다면 쌍용차 판매가 늘어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자동차 판매량이 국정조사와 청문회로 증가했다는 얘기는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얻을 수 있는 것은 교훈이다. 자동차회사는 금융이 아니라 산업 논리에 따라 인수합병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기술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업 생존 요건이기 때문이다. 쌍용차의 기술개발에 마힌드라가 적극 투자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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