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커피 메이트’ 윤진서, 만인을 S극으로 만드는 N극 배우

입력 2017-03-02 08:00  


[김영재 기자] “핑계는 불필요한 것...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

배우 윤진서와의 인터뷰가 예정된 장소는 서울시 중구 한 게스트 하우스였다. 인터뷰 장소는 화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또렷이 집중하고 서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카페가 선호되는 것이 보통이기에 게스트 하우스라는 단어가 전하는 생경함은 기자를 궁금케 했던 것이 사실이다.

공간의 낯섦은 여배우에게 질문을 건넨다는 기대감과 어우러져 긍정의 스트레스를 안겨줬고, 덕분에 명동역에서 약 5분 남짓한 언덕길을 오르며 두 다리는 남산에 가까워지는 피곤함 대신 즐거움을 호소했다.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 혹자는 윤진서를 이야기할 때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유지태)이 오대수(최민식)에게 그토록 잔인한 15년 간의 복수를 계획하게 된 시발점이었던 수아 역할만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어느새 그는 지난 2001년 단편 영화 ‘아름다운 유년’을 시작으로 약 스무 편이 넘는 영화와 약 열 편이 넘는 드라마에서 대중을 사로잡은 중견 배우다.

더불어 데뷔 16년 차 윤진서는 연기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다양한 면에서 그의 매력을 뽐내왔다. 그는 산문집 ‘비브르 사비’와 소설 ‘파리 빌라’를 집필한 작가면서, 자신이 직접 가사를 쓴 디지털 싱글 ’라무르즈(L’amourse)’와 MBC ‘돌아온 일지매’의 OST ‘내가 꿈꾸는 그 곳’을 발표한 가수이기도 하다.

마치 해소할 수 없는 갈증과 배고픔을 느끼는 듯 연기부터 서적 그리고 음악까지 윤진서라는 붓에 예술이란 먹을 찍어 끊임없이 여백을 채워가는 그에게 도전을 물어봤다.

“항상 책을 읽는 편이기에 글 쓰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다만, 노래는 재능이 있어서 도전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꿈구는 그 곳’은 황인뢰 감독님께서 ‘못 불러도 되니까 시청자에게 진솔한 느낌을 주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불렀고, ‘라무르즈’는 이벤트 성 제안이 들어왔는데 재밌을 거 같아서 가창을 맡았을 뿐이다. 기회가 닿았기에 마음껏 도전했다.”

사랑하는 것에 도전하는 일이 무얼 그렇게 망설일 문제냐고 이야기하는 윤진서. 도전의 사전적 의미는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 혹은 어려운 사업이나 기록 경신 따위에 맞섬이지만, 그에게 도전은 무언가에 맞서는 것보다 윤진서라는 배우의 내면을 외연으로 확장하는 하나의 과정처럼 보였다.

그리고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은 채 대중이 원하는 모습 대신 스스로가 바라는 모습을 그간 세상에 드러내온 윤진서가 선택한 2017년 첫 작품이 3월1일 개봉한다. 영화 ‘커피 메이트(감독 이현하)’다.

우연히 커피 메이트가 된 두 남녀가 감정의 폭풍에 휘말리게 되는 이번 작품에서 윤진서는 외로움에 익숙해진 달콤씁쓸한 여자 인영 역을 맡아,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가구 디자이너 희수를 연기하는 배우 오지호와 격정 앙상블을 이뤄냈다.

“(오지호) 오빠랑 저랑 되게 다르다. 뭐든지 다 다른 거 같다. 세상을 보는 가치관뿐 아니라 촬영장에서의 스타일 등 모든 것이. 항상 저와 반대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웃음) 덕분에 오빠한테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특히 ‘커피 메이트’가 워낙 대사량이 많은 영화였다. 더군다나 필름일 때는 롱 테이크가 1분 25초 내외인데 이제는 디지털이니까 막 10분씩 갔다. 집중도가 기니까 몸이 힘든 게 아니라 그 안에서 깊숙이 힘들더라. 저는 그것을 단번에 끝내고 싶은 승부욕이 있는데 (오지호) 오빠는 그렇지 않더라. 이상한 말이지만 다르기에 의지가 됐다.”


외로운 여자와 매력적인 남자의 소통을 다루는 이야기인 ‘커피 메이트’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 더불어 포스터의 제목을 꾸미는 ‘스킨십보다 뜨거운 대화’라는 광고 문구와 영화사에서 작명한 ’일탈 로맨스’란 장르는 윤진서와 오지호가 연기하는 극중 성인 남녀가 스크린 위에 에로스를 펼치는 야릇한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게끔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커피 메이트’는 남녀간의 사랑이 꼭 육체로만 귀결되는 것을 거부하는 영화다. 인영과 희수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이성 사이에도 플라토닉 러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고, 2월20일 언론시사회에서도 그들의 정신적 교감을 굳이 ‘청불’ 등급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는지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저번 시사회 때 감독님이 ’리즈너블(Reasonable)’이라는 단어로 등급이 합당한 판정임을 인정하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이해가 안 간다. 유뷰녀인 여자가 커피 숍에서 낯선 남자와 어떤 스킨십도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왜 청불에 리즈너블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외국에서 이런 내용의 영화들이 ’청불’ 대신 다른 등급으로 수입되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 이 영화를 ‘청불’ 등급으로 매겼는지 궁금한 마음이 있다.”

윤진서의 항변처럼 ‘커피 메이트’에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쓰다듬는 스킨십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깊은 커피 향과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나긋한 목소리 그리고 커피 메이트로서 서로를 마주하는 반가움이 있는 고즈넉한 북촌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으로 스킨십을 나눈다. 고루할 거 같은 정신적 교감은 대화 속에 관객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인영과 희수가 단지 대화로써 느낌을 깊이 나눌 수 있던 것은 확실히 성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어린 사람들이 이야기를 얕게 나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 경우에는 어릴 때보다 더 많은 함축적 의미를 요즘 대화에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지점들이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선택하게 됐던 이유였다. 그런 대사들을 해보고 싶었다.”

“오지호 오빠 대사 중에 ‘인간에게도 자기장이 있을까?’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정말 자기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장의 마이너스 플러스처럼 실제로 살다 보면 괜히 말없이 좋은 사람이 분명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푼수처럼 느껴져서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제 풀에 그만둔다. 저도 물론 그랬다.”


극중 인영이 희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배경에는 상류층에 편입된 삶을 행복이라고 믿었던 그의 자기 최면이 결정적 역할을 차지한다. 전과 달리 옷은 화려해지고, 식사는 풍족해지고, 취미는 다양해졌지만 그는 무의미한 삶을 의미있다고 왜곡시키며 가장 솔직해야 할 대상인 스스로마저 거짓이라는 유리의 벽에 가두고 만다.

이에 대해 윤진서는 인영과 자신은 다르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나 마음을 일신하다고 밝혔고, 더불어 과거 꿈이었던 세계일주는 아직 열심히 준비 중이라며 일순간 여행지를 추천하는 가이드로 변신해 놀라움을 안겼다.

“저는 갇혀 있다는 느낌이 없다.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 ‘벗어나면 되지!’라며 비행기 표를 알아보는 스타일이다. (웃음) 그렇기에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경험은 없지만, 그게 뭔지는 알 거 같다.”

“2014년 언급했던 세계일주는 아직도 못 떠났다. 아직 자격증을 더 많이 따야 해서 2년 뒤에나 떠날 예정이다. 캠핑 카로 떠나고 싶어서 배터리 충전하는 법, 물 정수하는 법 등 여러가지를 공부 중이고, 3월에 ‘커피 메이트’가 개봉하면 요트 자격증과 트레일러 면허도 딸 예정이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갖춰서 더 좋은 여행을 만들고 싶다.”

“미국 시애틀이 배경인 여행 프로그램 일정이 끝나고 저 혼자 멕시코에 갔다. 치안이 안 좋을 거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카보 이런 쪽은 되게 안전하고, 맛있는 음식 진짜 많아서, 멕시코하면 대개 칸쿤만 생각하는데 이쪽도 추천하고 싶다. 멕시코가 오히려 다른 여행지보다 더 편리했다. 그리고 멕시코를 간다면 아르헨티나, 페루, 코스타리카 등 남미 여행도 추천한다.”

끝으로 윤진서는 핑계를 이야기했다. 삶의 주인공은 다른 누구 아닌 나 자신이며 주제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논지였다. 그의 말이 맞다. 뉴스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야기 나오는 ‘상실의 시대’ 혹은 ‘체념의 시대’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은 불평의 화살을 남에게만 돌리곤 했다. 윤진서라는 명의가 짚어준 불행의 시작은 마치 거울 같아서 기자를 부끄럽게 했다.

“인영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점이다. 인영은 줄곧 엄마와 친구 탓을 하지만 사실 저는 그것이 핑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 때문이다’라는 핑계를 만들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주장들이 요즘 시대에서 제일 불행한 지점인 거 같다. 계속 핑계를 만들면서 이를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약 50분 가량의 인터뷰가 끝나면서 어떤 기자는 “저도 딱 윤진서 씨처럼 살고 싶다”는 말로 윤진서를 기쁘게 했다. 과연 윤진서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연기부터 음악까지 넘치는 끼를 온전히 예술로 승화시키는 아티스트의 삶? 아니면 어딘가에 갇히지 않고 여행을 만끽하는 자유인의 삶? 어느 쪽이든 비범한 인생이기에 그 자체로 즐거울 테지만, 문득 그런 삶이 담고 있는 내실보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윤진서의 존재가 더 대단해 보였던 것은 기자만의 착각인지 궁금했다.

‘커피 메이트’ 제작보고회에서 이현하 감독은 윤진서에 관해 “얼굴에 이야기가 있는 배우”라고 극찬했던 바 있다. 그의 말처럼 가까이서 만난 윤진서는 분명 평범하지 않았다. 솔직한 직설부터 보헤미안적 감성까지 여배우답지 않은 내면을 인터뷰를 통해 드러냈고, 어느새 기자는 그의 팬이 됐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그만의 매력이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한편 영화 ‘커피 메이트’는 3월1일 개봉 예정이다.(사진제공: 스톰픽쳐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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