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 민담에서 피어난 세련된 공포 (종합)

입력 2017-08-08 18:23   수정 2017-08-08 20:02


[김영재 기자 / 사진 조희선 기자] ‘장산범’이 산에서 내려온다.

영화 ‘장산범(감독 허정)’의 언론시사회가 8월8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는 허정 감독, 염정아, 박혁권, 신린아가 참석했다.

‘장산범’은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람을 홀린다는 장산범과의 조우 속에 한 가족에게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 염정아가 미스터리한 일에 휘말린 여자 희연을, 박혁권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의심을 품는 남편 민호를 연기했다. 그 외에 신린아가 어느 날 나타난 낯선 소녀 역을, 허진이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역을 맡아 극에 힘을 보탰다.

지난 2013년 영화 ‘숨바꼭질’로 한국형 스릴러의 새 장(章)을 열었던 바 있는 허정 감독은 “가족을 배경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계속 생각한 것은 아니다. 각 작품마다 다르다”라며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가족애가 관통한다는 부분에 대해 차이점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번 ‘장산범’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소리로 홀린다’이다. 그리고 소리가 개인의 어쩔 수 없이 넘어갈 수밖에 없는 부분을 건드려서 넘어간다는 부분이 무섭기도 하고. 어떤 것이 감정을 홀릴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아이를 잃은 상실감이 떠올랐다.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가족을 설정했다”라고 밝혔다.

‘장산범’은 ‘누군가 내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다’라는 광고 문구가 눈길을 끈다.

수십억 인류는 저마다의 목소리 색을 가진다. 지문(指紋)처럼 성문(聲紋) 또한 개인을 구분할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 그러나 장산범은 이러한 상식을 깨부순다. 예고편에서 이 미지의 범은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서 대상을 홀리게 만드는 것으로 소개된다. 게다가 ‘흉내’라는 불완전을 완전으로 가능케 하는 초자연적 힘을 발휘한다.

더불어 예고편 마지막 “믿으면 안 돼, 절대로”라는 대사는 장산범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보는 이를 공포에 몰아넣는다. 과연 가족은 존재의 불가항력적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지.

또한, ‘장산범’은 염정아가 14년 만에 선보이는 공포 영화라는 점도 이목을 모은다. 그는 영화 ‘장화, 홍련(2003)’에서 두 딸의 새어머니 은주 역을 맡아 원작의 계모를 관객에게 전달했던 바 있다. 어머니라는 역할의 공통점 그리고 장르의 중첩. 이 가운데 염정아가 세월에서 숙성된 어떤 변화로 관객을 매료시킬지가 관전 포인트.

박혁권의 출연 역시 관심을 한 곳에 모은다. 2017년만 해도 ‘아빠는 딸’ ‘택시운전사’에서 눈에 띄는 조연으로 관객의 주목을 받은 상황. SBS ‘초인가족 2017’에서는 웃음마저 한 손에 잡기도. 이번 ‘장산범’에서는 어떤 연기를 선보일지 궁금증이 집중된다.

#‘장산범’의 소리


‘장산범’은 소리가 강조되는 영화다. ‘소리 스릴러’라는 별칭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 영화는 장산범이 흉내 내는 여러 인물의 소리로 관객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후시 녹음을 뜻하는 ‘ADR’이 다른 영화보다 5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장산범’. 먼저 허정 감독은 “일단 친숙한 소리가 들릴 때, 그런데 그 소리가 소리 내는 사람이 아니었을 때 스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라며, “‘ADR’ 할 때 너무 일상 소리라면 덜 무서울 것 같고, 무서운 느낌을 주면 일상의 느낌이 옅어질 것 같아서 각 상황마다 어느 정도 공포의 느낌을 줘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운을 뗐다.

더불어 그는 “무서운 소리만으로, 소리를 흉내내는 것만으로 홀리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들이 듣는 심리적 소리 같은 것을 표현해 보려고 노력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장산범’은 공포 영화다. 이와 관련 염정아는 공포스러운 소리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꼽았다. “생각을 안 해봤는데,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듣고 싶지만 들을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어떤 존재의 목소리. 극중 희연이한테는 아들의 목소리가 그랬다.”

하지만 ‘장산범’은 소리가 부각되는 영화치고 시각적 면도 만만치 않게 공포스럽다. 때로는 시각이 청각을 압도할 정도. 이에 관해 허정 감독은 “그런 시각적인 모습에서 예상할 수 없는 다른 목소리가 나올 때 공포가 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아이의 목소리가 나온다든지.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장산범’의 고충


‘장산범’은 스릴러와 공포 사이에서 후자에 조금 더 축이 기울어졌다. 그리고 영화의 주된 현장은 숲과 동굴이다. 현장 학습 때나 접할 거친 공간들. 애로사항이 꽃필 수밖에 없다.

염정아는 “지나고 난 것은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다. 그 당시 많이 힘들었던 것을 영화를 보고 다시 느꼈다. 정말 몸이 많이 힘들었다. 고생을 좀 했다”라며, “분장도 매일 아침에 가면 지저분한 분장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종일 찝찝한 상태로 촬영했다”라고 회상했다.

고충은 상황에서도 발생했다. ‘장산범’의 특징은 소리다. 그리고 소리의 대다수는 후시 녹음에서 추가됐다. 가상의 소리에만 의지하는 연기의 고충을 묻자 염정아는 “아무래도 소리를 직접 들으면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하면서 연기했다. 정신적으로 많이 부담스러웠다. 지금 이렇게 영화를 보고 나니까 현장에서 감독님께서 디렉션을 잘 주셨던 것 같다. 문제 없이 잘 지나간 것 같다”라고 허정 감독을 칭찬했다.

더불어 염정아는 “초중반에 들리는 소리는 상상을 하거나 감독님이 대신 소리를 내주셨다”라고 운을 뗀 뒤, “뒷부분에 가면 희연이가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감정이 올라가고, 그것 때문에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런 과정은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힘들 것 같더라. 아이가 녹음을 하고, 인이어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연기했다”라고 말했다.


행사의 마무리 속에 박혁권은 다음의 맺음말을 전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영화를 안 보고 인터뷰하는 부담스러움이 있었다. 그저 ‘기대가 크다’라고 많이 인터뷰했다. 보고 나니까 조금은 풀렸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세련되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하셔도 좋은 영화라고 보실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영화 ‘장산범’은 공포 영화다.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공과 ‘누군가 내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다’라는 문구, 그리고 ‘숨바꼭질’ 허정 감독이라는 감독의 전작 안내까지. 어느 면을 봐도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 한 번 해야 될 것 같은 인상을 건넨다.

더불어 민담과 도시 전설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는 장산범의 스크린화는 관객에게 호기심과 기대감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어떤 맛의 음식일지 가늠은 되지만, 정확한 맛은 누구도 모르는 상황. 결과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기대에 충족되거나 아니면 박한 평가를 받거나.

박혁권은 ‘세련되다’라는 형용사로 영화를 표현했다. 기자도 이에 동의하는 바다.

괴생명체가 민가를 습격하고, 녀석의 무력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진부하게 흘러갈 수 있는 영화에 허정 감독은 모성애를 부여하며 현실감을 이끌어냈다.

물론 장산범의 존재 앞에 현실감은 반감된다. 그러나 등장인물에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끈만은 유지되고, 덕분에 관객은 희연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완주한다. 아마 박혁권이 언급한 형용사는 편집으로 축조된 전달의 미려함을 뜻할 테다.

한편 영화 ‘장산범’은 8월17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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