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너의 결혼식’ 박보영, 도봉순의 용기로

입력 2018-08-23 10:30   수정 2018-09-19 19:42


[김영재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8월22일 개봉작 ‘너의 결혼식’ 승희 役

배우 박보영은 SNS를 하지 않는다. 즉흥적으로 올린 게시글이 그에게 독(毒)이 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감정에 취할 때가 있잖아요. 제가 감정에 많이 취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그가 선택한 소통은 실시간 방송을 열 수 있는 한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서다. 그가 그 자신에게 취하지 않을 때 박보영은 앱을 켠다. 실수가 독으로 돌아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그는, 팬들에게 대화를 건다. 박보영의 근황은 인스타그램의 정지 화상이 아니라 동영상으로만 만날 수 있다. 영상 안에서 그는 팬들이 보내준 편지를 읽곤 한다.

“그분은 삶에 있어서 시련이 굉장히 많았나 봐요.” 박보영이 마지막으로 읽은 편지서 그의 팬은 삶에 시련이 많아 마지막으로 지킨 게 자존감밖에 없는 이였다. 더불어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도 어둡고 쓸쓸한 곳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박보영이 띄었다.

팬의 눈에 박보영이 사는 세상은 굉장히 반짝거리고, 아름답고, 순수한 곳이었다. 그가 박보영에게 말했다. “만약에 그 세상이 보영 씨에게도 그런 세상이라면 보영 씨는 그 세상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난감한 박보영이었다. 그에게 세상은 “반짝반짝 하기는 하지만 마냥 행복하고, 즐겁고, 순수한 곳은 아니”기 때문. 그럼에도 배우는 팬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상상을 깨는 건 더더욱 싫었다.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박보영은 회상했다.

대중이 보는 배우의 삶은 화려하나 이면엔 현실적 고민이 있다. 배우 박보영의 삶은 반짝거린다. 하지만 그의 고백처럼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삶은 세상에 없다. 화장을 지우면 배우는 개인으로 되돌아간다. 다수와 개인 사이의 괴리. 겉과 안의 온도 차. 무엇이 됐든 박보영은 온몸으로 그 차이에 맞서는 중이다. 또한, 차이는 하나가 아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블리’라고 부른다. 이름과 영단어 ‘러블리(Lovely)’의 합성어다. TV 광고에서 “네가 있어 좋다”고 노래하는 그를 보면 ‘보블리’는 영원할 것만 같다. 하지만 박보영에게 ‘보블리’는 향기 나는 찐득찐득한 운명이다. 벗어나고픈 숙명이다. “조금의 반항심이 있는 거 같아요. 보통 절 작고 여리게 봐주시잖아요. 지켜주고 싶고, 지켜줘야 될 이미지고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아서 자꾸 다른 면을 보여드리려고 하는 게 좀 있어요.”

영화 ‘너의 결혼식(감독 이석근)’ 승희는 ‘3초의 사랑’을 믿는 이다. 예쁘고, 명문대에 수석 입학할 정도로 똑똑하다. 여기까진 기억 속 박보영이다. 동시에 승희는 거칠다. 추파를 던지는 급우에게 중지를 날리는 것도 모자라, 좋아하는 거 하면서 잠시 사는 게 왜 낭비냐고 묻는 우연(김영광)에게 찰진 욕까지 던진다. “네가 놔버린 그 시간 때문에 팔구십까지 고생하면서 사는 거다”고 강조하는 승희는 까칠한 박보영이기에 더 매력있다.

하지만 까칠할지라도 사랑스러운 승희다. 그간 배우가 쌓아온 ‘보블리’ 때문이다. 숙명은 행간까지 침식했다. 언론시사회서 배우는 승희에 관해 “내 범주 안에 있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고 했다. 이 경우 누가 봐도 단어 ‘범주’로 묶인 성질은 사랑스러움이다. 하지만 시사회 며칠 후 다시 만난 그는 “‘사랑스러운 범주’가 아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에 한해’란 뜻이었다”고 오해를 바로잡았다.

단어 하나에도 배우와 대중은 평행선을 달린다. “어떻게 해도 사랑스러운 모습을 봐주신다”는 박보영에게 ‘너의 결혼식’은 운명을 떨쳐내기 위한 한 걸음이다.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서 만난 박보영은 “(정통) 멜로도 너무 하고 싶은데 어느 순간 ‘아, 이건 내 영역이 아니구나’를 깨달았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 및 “또르르” 예쁘게 우는 것과 거리가 먼 게 멜로를 하지 못하는 이유란다.

그런 그가 ‘너의 결혼식’ 후반부에서 눈물 연기를 선보인다. “현실적 연애를 표현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간 판타지 사랑을 많이 해왔죠. 늑대랑 사랑을 하거나, 귀신에 빙의가 돼서 사랑을 했잖아요. 힘이 너무 세거나요.”

“일반 사람이 보기에도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 사랑”이 그가 생각하는 작품의 강점이다. 이석근 감독이 쓴 대사가 강점을 뒷받침한다. 승희가 우연에게 “나 네가 생각하고 바라는 어릴 때 그 여자애 아니라고” 하는 순간 관객은 사랑과 집착을 구분해낸다.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사가 벤치 신에 나와요. 실언을 잊으라는 남자에게 여자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그에 대한 엄청난 배신이라고 해요. ‘그래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너의 결혼식’은 “남자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그래서 배우는 승희가 나쁘게 보일 것을 염려했던 바 있다. “제 표현을 쓰자면 승희를 좀 지킨 거 같아요. 피드백이 다 다르게 오고 있어요. 어떻게 보셨어요? 승희가 많이 나쁘던가요? 여자 분들도 승희가 나쁘다고 하셔서요. 얘도 얘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는데 잘 안 보여서 그게 속상하더라고요.”

관객이 승희에게 마음 줄 수 있는 신이 본편에선 사라졌다는 후문. 박보영은 “어디 갔을까 이게” 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저는 승희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저는 승희 편을 들 수밖에 없잖아요. 승희가 저니까. 왜 맘을 접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부분이 없어졌어요.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죠.”

배우는 고등학생부터 사회인까지 승희의 다면을 연기해야 했다. 과거엔 “더 성숙해 보여요?”, “애기가 화장한 거 같지 않아요?” 하며 어린 외모 감추기에 급급한 그였다. 하지만 시간은 만인에게 공평하다. 풋풋함은 연륜에 반비례한다. “옛날엔 성숙해 보이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썼다면 이번엔 어려 보이려고 부단히 애를 썼어요. 학생 신이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가는 게 이렇게 느껴지는구나’ 했어요.”


연륜이 쌓인 배우의 꿈은 “여자 선배님”과의 공연이다. “개인적으로 김해숙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요. 선배님이랑 꼭 같이 해보고 싶어요. 엄마와 딸도 좋지만 다른 기회도 좋을 듯해요. 그럼 더 재밌을 거 같아요.” 하고 싶은 배역을 묻자 섬뜩한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 죽이는 연기 해보고 싶어요. 살인자나 사이코패스 역할 해보고 싶은데 안 시켜주시네요.”

살인자 연기는 예고였다. 고정 관념을 탈피하는 데서 오는 희열을 박보영은 즐기는 듯했다. JTBC ‘힘쎈여자 도봉순’ 출연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말에 감출 수 없는 흥이 잔뜩 묻어났다. “봉순이도 재밌었어요. 재밌고 시원했죠. 봉순이 할 땐 제가 봉순이라고 생각했어요. 밤늦게 다녀도 무섭지 않았죠. ‘내가 다 이길 수 있어’란 자신감이 있었어요.”

배우는 타인의 삶을 산다. 어느 한 쪽에 속하지 않고 운명을 바꿔 산다. 그래서 그들은 경계 위 유령이다. 유령은 누구든 될 수 있도록 투명하다. 그리고 누구든 투영할 수 있기에 약하다. 대중이 ‘보블리’를 투영하자 그는 경계서 내려와야 했다. 투명함은 사라져갔다.

‘내가 다 이길 수 있어’가 중요한 건 그가 밤길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내적 자신감을 안겼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다 이길 수 있어’는 박보영에게 전염된 도봉순의 용기다. 배우에게 배역이 투영됐을 때 투명한 존재 박보영은 도봉순의 용기를 가졌다. 그리고 도봉순이 건넨 용기에 그는 오늘도 내일도 연기한다. ‘보블리’로 국한되기엔 아직 젊은 그다.

영화 ‘너의 결혼식’은 순정남 우연과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첫사랑 승희의 다사다난 첫사랑 연대기를 그린 작품. 8월22일부터 상영 중이다. 12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150만 명. 순제작비 30억 원.(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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