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강춘자 "'K골프' 3단계 인재발굴 시스템…스타 탄생 선순환 구조로 정착"

입력 2019-08-23 17:20   수정 2019-08-24 00:49


척박, 그 자체였다. 1978년 8명으로 출발한 회원 수는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고도 44명에 그쳤다. 자체 대회도 없었다. 남자 대회 마지막 조가 출발하면 그 뒤를 이어 여자 프로들이 티샷을 했다. 내딛는 모든 발걸음이 최초라는 자부심을 밑천 삼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41년이 지난 지금, 세계 무대를 평정한 ‘글로벌 K골프’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불혹을 넘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얘기다.

강춘자 KLPGA 수석부회장은 “모든 것이 열악했다. 고군분투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강 부회장은 “지금은 몸에 클럽을 맞추지만 그때는 클럽에 몸을 맞추던 시절이었다”며 “풀 세트가 아니라 7개짜리 하프 세트로 골프를 하던 기억도 새롭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9번 아이언으로 2년 동안 벙커샷 연습을 했는데, 나중에 샌드웨지가 생기니까 벙커샷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며 웃었다.

여자 프로골프의 ‘살아 있는 역사’

올해로 창설 41주년을 맞은 KLPGA의 강 부회장을 서울 방배동의 숙성한우 전문점 ‘바른고기 정육점’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 여자 프로골프 회원 번호 1번이다. KLPGA 역사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배경이다. 그런 그답게 단골 식당도 골프와 인연이 깊었다. 프로대회를 창설하고 여자골프 선수단까지 운영하는 에너지 기업 삼천리가 주인이다. 강 부회장은 “고기는 물론이고 채소와 밑반찬 등 식재료가 다 신선해서 믿음이 간다”고 했다. 그는 한 달에 서너 차례 들른다고 했다. 대회 때문에 매일같이 지방을 오가는 빠듯한 일정을 감안하면 자주 찾는 편이다. 배선우, 박채윤, 김해림, 홍란 등 삼천리 후원을 받는 선수 7명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곳의 단골이 됐다.

강 부회장은 원래 배구 선수 출신이다. 중학교 때 경기 김포에서 배구를 했다. 경기도 중등부에서 우승을 이끌었을 정도로 두각을 보였다. 골프와 연을 맺은 건 아르바이트가 계기가 됐다.

“고3이던 1976년 서울 뚝섬 경마장에서 취업반 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마침 남자 골프협회에서 여자 프로를 육성하기 위해 선수를 모집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배구를 했기 때문에 운동신경은 자신있어 도전했죠. 볼이 펑펑 날아가는 재미에 손가락 물집이 터진 줄도 모르고 연습했어요. 나중엔 반창고로 칭칭 감고 했고요. 지독했죠.”

2년 후인 1978년. 경기 양주 레이크우드CC(옛 로열CC)에서 한국 최초로 여자 프로골프 테스트가 열렸다.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아낸 덕에 그는 함께 테스트를 통과한 동료 중에서도 ‘한국 여자 프로골프 1번’의 주인공이 됐다. 고(故) 한명현, 고 구옥희, 고 안종현 씨가 함께 프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같은 해 추가 테스트에서 김성희, 이귀남, 배성순, 고용학 씨도 합격해 8명의 1세대 여자 프로골퍼가 탄생했다.

이야기가 무르익는 동안 주문한 한우가 나왔다. 알등심, 새우살, 근막살 등 세 가지로 세분화된 등심이었다. 붉은 육질 사이에 눈꽃처럼 빼곡히 박힌 하얀 마블링이 도드라졌다. 연두부, 샐러드, 파절이, 계란찜 등 밑반찬이 정갈하게 차려졌다. 음식과 함께 나온 동그란 돌판의 쓰임새가 궁금해 묻자 직원이 “구운 고기를 올려두는 용도”라고 설명했다. “고기가 타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천천히 식도록 돕는 특수 돌판”이라는 설명이다.

선수 노력과 협회 시스템이 세계 최강 자양분

한우가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사이 강 부회장이 첫 대회 이야기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여자 프로골퍼가 처음 프로 경기를 치른 때가 1978년 9월이다. 한양CC 구코스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선수권 대회에서 ‘여자부’ 경기로 치러진 게 시초다. 이듬해에도 7~9명의 여자 프로가 3개 조 정도를 꾸려 출전한 게 전부였다. 우승상금이 많아야 30만원쯤 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당시 그린피가 1만8000원, 캐디피가 5000원 정도였을 것”이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여자 프로들만 출전하는 3라운드 54홀 규모의 단독 대회는 1987년이 돼서야 가능했어요. 그리고 이듬해 회원 수가 44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하면서 KPGA 여자 프로부가 KLPGA로 독립해 지난해 40주년을 맞은 겁니다.”

2015년 1월 1000명을 넘어선 정회원 수는 지금 1330명으로 늘었다. 준회원, 티칭회원, 특별회원까지 포함하면 회원은 2595명에 달한다.

초창기에 비하면 지금의 한국 여자 프로골프는 말 그대로 ‘괄목상대’다. 이번 시즌 여자골프 세계 랭킹인 롤렉스 랭킹 상위 100명 중 한국 선수는 35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미국(24명), 일본(14명) 순이다. 고진영(1위)과 박성현(2위), ‘핫식스’ 이정은(5위), ‘골프 여제’ 박인비(7위) 등 ‘톱10’에 4명이 포진하는 등 질적인 면에서도 미국과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한국 여자 프로골프가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으로 우뚝 선 비결이 궁금해졌다. 강 부회장은 ‘세계 최다 연습량’을 첫째로 꼽았다. “박세리부터 박성현, 고진영 등 세계 무대에서 국위를 선양한 선수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연습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겁니다. 지금은 외국 선수들도 우리 선수들 때문에 자극을 받아 예전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는 분위기예요.” 세계 최초의 ‘3단계 투어 승강 시스템’이 그다음이다. “정규투어와 함께 그에 못지않은 수준의 2부투어(드림투어), 3부투어(점프투어)가 있고 아마추어 유소년 대상 대회도 개최합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면 상위 투어로 올라갈 기회가 많다는 게 동기 부여가 되는 구조예요. 2부투어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도 있지만 3부투어가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도 와서 배워갔습니다.”

그는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선순환도 한몫했다”고 평가했다. “한국 선수들은 효심이 커서 부모가 헌신하고 희생하는 걸 모른 척 못 해요. 고생하는 부모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는 거죠. 열심히 그리고 잘 해야겠다는 목적의식이 더 뚜렷할 수밖에 없어요. 그 결과가 지금의 K골프라고 봐요.”

해외 승전보, 국내에도 긍정적인 영향

한국 선수들은 LPGA 무대에서 지난 4년 연속 신인왕을 꿰찼다. 2015년 김세영을 시작으로 2016년 전인지, 2017년 박성현, 2018년 고진영이 주인공이었다. 올해는 이정은의 신인상 수상이 유력하다. KLPGA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 섞인 목소리도 있다.

강 부회장은 그러나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이 각종 대회에서 우승, 준우승을 하는 등 맹활약을 펼치면서 여자골프에 대한 관심이 KLPGA에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가 성립됐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빠진 자리는 또 다른 KLPGA 스타 선수가 탄생해 메움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내 투어에 좋은 영향을 줬다는 얘기다. 실제 박세리가 LPGA투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맹활약을 펼친 1998년에는 51명이 정회원이 됐다. 한국 여자 선수들이 미국에서 11승, 일본에서 10승을 수확한 2009년에는 정회원을 99명이나 배출했다.

“올 시즌에도 최혜진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탄생해 KLPGA투어 흥행을 주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올 시즌부터는 드림투어에서 상위 20위 선수들이 정규투어 시드를 받아 루키로 활약하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신인들의 돌풍이 대단합니다. 덕분에 내년, 후년 시즌에도 더 많은 스타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의 ‘화수분’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색깔부터 구수한 된장죽이 나왔다. 같은 메뉴를 파는 식당은 많지만 여느 된장죽과 달리 맛이 깊었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곁들여 죽을 비워가던 강 부회장이 바람을 내비쳤다.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연습하고 실전 경험을 늘릴 수 있도록 협회 체계를 단단히 다지는 일이다.

“한국 여자골프는 이제 세계 최강을 넘어서 부러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배우고 따라 하려는 해외의 움직임도 많아졌고요. 선수와 협회가 다 함께 어우러져 제 몫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젠 세계 표준, 글로벌 KLPGA로 가야죠.”


■세계최강 화수분 'K골프' 산실…41년 된 한국女프로골프협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는 세계 최강 ‘K골프’의 산실이다. 1978년 8명으로 시작한 회원 수가 41년간 2595명(준회원, 티칭회원 등 포함)으로 늘었다. 3개 대회 총 150만원에 불과하던 투어 총상금도 79개 대회 296억원(2019년 기준)으로 2만 배가량 규모가 커졌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854억원),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426억원)에 이은 세계 3대 여자골프투어로 평가받는 배경이다. 고(故) 구옥희 프로가 1985년 일본에서 첫 승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총 418승을 해외에서 수확했다. 박세리 박인비 등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를 무수히 배출해 ‘화수분’이란 평가도 받는다.

■ 강춘자 KLPGA 수석 부회장 약력

△1956년 경기 김포 출생
△성동여상 졸업
△국제사이버대 졸업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1호 입회
△협회 전무
△협회 부회장
△협회 수석부회장(2011년 3월~)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주식 회사 대표
△우승 이력=삼양오픈(1979년) 오란씨오픈, 동해오픈, 쾌남오픈, 한국여자프로골프선수권대회(이상 1983년) 동해오픈(1986년) 한국여자오픈(1987년) 챔피언경기(1992년)



강춘자 수석부회장의 단골집 바른고기 정육점

2℃ 물속에서 21일간 숙성한 안동 한우


바른고기 정육점은 상호처럼 최상급 투 플러스(1++) 한우만 취급하는 숙성 한우 전문점이다. 2도 물속에서 21일간 숙성한 안동 한우를 2㎝ 내외 두께로 썰어 제공한다. 숯도 최고 품질의 비장탄을 사용한다. 입구에 마련된 고기 숙성고와 주방의 육부실을 투명한 유리창으로 마감해 고기 숙성 과정부터 손질 모습까지 모두 볼 수 있는 게 일반 고깃집과 다르다.

대표 메뉴는 ‘세 가지 맛 등심’이다. 육즙이 풍부한 알등심, 부드러운 새우살, 쫄깃한 근막살까지 세 가지 부위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알등심, 근막살, 새우살 순서로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새우살은 매콤한 청양고추 소스가 느끼함을 잡아준다. 알등심은 토판염(전통방법으로 생산하는 천일염)을 곁들이면 풍미가 한층 살아난다. 고기 메뉴 외에도 진도 대파를 넣은 육개장, 명인 된장죽, 한우 차돌 깍두기 볶음밥 등의 식사 메뉴가 있다. 평양냉면은 매장에서 직접 뽑은 면을 슴슴한 한우 육수에 말아내 평양식 냉면의 풍미를 제대로 살렸다는 평가다.

2017년 5월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에 문을 연 뒤 지역 대표 한우 전문점으로 자리잡았다. 2019년 5월 을지로점과 강남점이 추가로 문을 열어 성업 중이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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