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問鼎天下의 지혜

입력 2019-09-30 16:57   수정 2019-10-01 00:05

중국 사서에 적힌 열병(閱兵)의 기원은 신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夏) 왕조를 연 치수의 달인 우(禹)임금이 부족 우두머리들을 불러모았을 때 병장기를 깃털로 장식하고 악기를 연주해 환영했다고 한다.

기원전 11세기 춘추시대를 연 주(周)나라 무왕도 상(商)나라 대군과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대규모 관병(觀兵)식을 거행하며 “하늘을 대신해 무도한 주(紂)왕을 벌하겠다”고 맹세한다. 이 시대 열병식은 엄격한 군율을 세우면서도 인접 제후들에게 군 위용을 과시해 겁박하는 수단이었다고 한다.

사회주의 중국이 건국한 뒤 인민해방군 열병식은 모두 18차례 열렸다.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직후인 1949년 10월 1일 개국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열병식이 채택된 데 이어 이듬해 열병식에서 주더(朱德) 총사령은 “조선전쟁의 발발에 즈음해 해방군은 전투를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문화대혁명에서 살아남아 군권을 장악한 덩샤오핑이 1984년 주관한 열병식에서는 중국제 전략미사일이 처음으로 외신 카메라에 잡혔다. 중국의 열병식이 국경절 ‘구경거리’를 넘어 국제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주빈으로 참석한 열병식 주제는 ‘항일 및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기념’이었지만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인접국은 미국과 한판 붙을 수도 있다는 중국의 결기를 읽었다.

1일 열리는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도 마찬가지다. 1만5000 정병(精兵)이 톈안먼 광장을 행진하는 사이사이에 160대의 공군기와 580대의 첨단 군사장비가 등장할 예정이다. 남중국해를 오가는 미국 항공모함과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포대를 일순 타격할 수 있는 무기부터 일본의 레이더망과 미 본토를 사정거리 안에 둔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도 더욱 개량된 버전으로 카메라에 노출될 것이다.

덩샤오핑이 유지로 남긴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최강 미국이 눈치채지 않도록 은인자중하며 국력을 기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종합국력이 미국의 턱밑에 이른 중국이 더 이상 은인자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국이 남중국해 무인도에 군용 활주로를 닦자 미국은 동북아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계획을 공개했다. 두 강대국이 코를 맞대고 대치하면 불똥은 인접국으로 튀기 마련이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는 군사강국 진(秦)이 열국을 병합하면서 막을 내리지만, 이 시기 전반에 걸쳐 가장 영향력이 컸던 나라는 800년 사직을 지킨 초(楚)였다. 남방 오랑캐 취급을 받았던 이 나라 장(庄)왕은 북방 터줏대감 진(晉)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하고 춘추오패에 오른 인물인데, 후대 중국 사회에선 장왕의 칭패(稱覇)보다 천자의 나라인 주의 서울(오늘날 낙양) 지척에서 벌인 무력시위가 더 자주 회자된다. 이를테면 장왕의 열병식이다.

초군의 위세를 염탐하러 온 천자의 대부 왕손만에게 장왕은 “주 왕실의 구정(九鼎)은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가”라고 물었다. 정은 제후들이 열망하는 천하대권의 상징이었다. 초 군의 창 날만 녹여도 그따위 정은 수십 개 만들 수 있으니, 무력으로 접수할 수 있다는 ‘무엄한’ 비유였다. 왕손만은 “천하를 통치하는 것은 덕이지, 정의 무게가 아니다”는 현답으로 장왕의 대군을 물리게 했다.

중국의 역대 최대 규모 열병식을 앞두고 문정천하(問鼎天下)의 고사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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