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여진계·튀르크계 등 유입…청동기 시대에 '단일민족' 기본 틀 완성

입력 2019-10-04 17:40   수정 2019-10-05 00:17


폭풍을 만나 항해할 때엔 선장이 중요하다. 소위 ‘리더론’이다. 하지만 잘못된 선장을 만난 위급 상황에서는 선원들의 자질도 중요해진다. ‘모두론’이다. 지금은 모두가 자각한다. 스스로가 한국호를 운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자문한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언제, 어떻게 이곳에 정착했는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본능적이고, 무의식 속에서도 던지는 물음이다. 생존전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데 익숙하다. 또 당연한 듯이 ‘단일민족’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거주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글로벌화 흐름 속에 ‘민족’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향이 생겨났다. 세계질서에 ‘자(自)집단주의’가 강화되면서 정반대로 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을 요구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정치적 상황들과 맞물리며 때론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민족을 둘러싼 개념

동아시아에서는 ‘민족’이라는 용어와 개념을 기계적으로 사용하고, 문명이나 역사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일본이 서양어(nation)를 번역해 만든 조어인 ‘민족(民+族)’을 공통적으로 사용해왔다. 실은 중국만 해도 쑨원, 마오쩌둥 시대의 민족 그리고 후진타오 이후의 ‘중화민족론’은 사뭇 다르다. 한국도 좌우가 바라보는 내용과 적용 방식이 다르다. 일부는 ‘종족’과 ‘민족’을 동일시하며 반일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북한의 경우 체제 유지 같은 정치적인 부분에 ‘민족’ 개념을 악용한다.

민족은 그렇게 몇몇 요소가 결합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존재, 개념이 아니다. 역사학자로서는 다소 유감스럽지만 최근에는 혈통, 체형, 체질 등 생물학적 요소가 중요해지는 게 현실이다. 자연, 영토 등으로 표현된 공간은 농경, 유목, 수렵, 어업 등 다른 생활양식들과 신앙 등을 형성하고, 심지어는 주민들의 생물학적 특성도 만든다.

언어는 사물과 사건을 정의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연결시키는 중요한 매체이므로 민족은 대부분 유사한 언어를 썼다.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스위스나 중국, 유목민족들처럼 언어가 동일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또한 주민들은 오랫동안 유사한 경험을 하면서 공동의 문화를 창조하고 비슷한 가치관을 지향한다. 이 때문에 민족은 종족과는 달리 장엄하고 복합적이며 유기적인 역사적 존재다. 그렇다면 우리 한민족은 어떤 특성을 지닌 인종과 종족들로 이뤄졌을까? 어디서 왔는가? 또는 어디에서 기원했을까?


북방기원설, 남북혼합설, 원핵론

우리는 습관적으로 ‘북방기원설’을 떠올린다. 청동기 문화가 유입된 경로가 그렇고, 한국어와 알타이어계의 유사성이 강하고, 대륙에 대한 콤플렉스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남북혼합설’이다.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에서 남방민족과 해양문화가 들어왔고, 이들과 북방에서 이주한 유목민이 결합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몇몇 주장을 보면 논리성이 부족하고, 덜 과학적이며, 무엇보다도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특히 일부는 생물학적인 종족과 민족을 혼동하고 있다. 심지어는 활동 영역을 만주와 한반도 북부, 그리고 한반도 중부 이남으로 나눠 선별적으로 조사한 문제점들이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따지지, 원래부터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만주 지역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전기 구석기시대부터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간빙기가 시작되면서 7000~8000년 전을 전후한 신석기시대에도 연해주 북부 일대나 일본 열도, 산둥반도 등에서 사람들이 이주했다. 나는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원핵론’을 설정했다. 이후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서 한민족의 기본핵이 완성됐다. 이것은 유라시아 세계의 전 지역과 연관됐다고 판단한다. 즉 유라시아 지역 내 ‘8개+α’의 길을 통해 집단들이 이주해 혈연, 문화 등의 기본핵을 만들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주민들이 들어왔지만 이들은 원형을 약간 변형시키는 정도에 머물렀다. 왜냐하면 한륙도(韓陸島·한반도와 남만주를 포괄하는 말)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지문화적 환경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단일혈족 아닌 단일민족

큰 갈래만 몇 개 살펴보자. 우선 북방 몽골로이드(몽골 인종)의 몽골어 계통 주민들이 동만주를 제외한 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 일대에 살았다. 몽골의 선조인 선비족과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족은 원래는 우리 조상의 범주(방계 종족)에 속했다. 또 발해만과 산둥반도 일대에서 중화문명의 토대를 놓은 훗날 ‘동이(東夷)’로 분류되는 이들은 발달한 농경문화를 갖고 서해를 횡단하거나, 해안을 따라 연안을 항해하거나, 걸어서 서해안 일대에 정착했다. 바이칼호와 주변 초원지대, 알타이 초원과 중앙아시아 일부에 살던 백인종의 피가 섞인 튀르크계 종족들은 말을 타고 청동기로 무장한 채 서북 만주로 진입했다. 이들은 고조선은 물론 고구려 신라 등 우리 역사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근대 초기에 조선의 산천을 여행한 서양인들은 답사기에서 한결같이 이렇게 서술했다. ‘한국인들은 영리할 뿐 아니라 피부색도 하얗고, 키도 커서 백인에 가장 가깝다.’ 물론 지금도 동아시아에서 서양인과 가장 가까운 외모를 가진 민족은 한국인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또 동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숲과 강에는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소위 여진계가 우리와 생활공동체를 이뤘다. 일부는 동해안을 따라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함경북도 일대와 동간도에는 이들의 흔적이 강하고, 당연히 피가 섞여왔다.

이렇게 우리는 주로 알타이어계의 튀르크어, 몽골어,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골고루 섞였다. 알타이어계의 핵심 단어로 ‘한’ ‘밝’ ‘감’ ‘텡그리’ ‘달’ 등이 있는데, 특히 한(칸, khan, kan)은 크다, 하나다, 길다, 임금 등의 의미를 지닌다. ‘한국’의 한(韓)처럼 나라를 뜻하기도 한다. 인류 역사에는 킵차크한국, 크림한국처럼 한국(칸국)이 39개 이상 있었다. 알타이어계 주민들은 샤머니즘을 믿고 있었으며 유달리 조상을 숭배하고 파란 하늘을 숭배하는 신앙이 강했다.

중국 대륙에는 우리와 다른 중앙몽골로이드 계통의 인종이 많았다. 이들 가운데 비록 적은 숫자지만 우리 터에 이주해 피가 섞였다. 또 중국의 남부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거주한 남방 몽골로이드들도 남서 계절풍과 쿠로시오(흑조)를 이용해 바다를 건너와 우리 민족의 중요 구성원이 됐다. 혈연, 언어(드라비다어 계통), 건축(난간식 건물) 등이 영향을 줬다. 특히 제주도와 전라남도 해안 지역에는 장례 방식, 음식, 신앙, 설화 등에 그런 흔적이 많다.

이렇게 보면 한민족은 구성이 복잡한 듯하지만, 다른 민족에 비하면 간단한 편에 속한다.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한반도와 만주를 연결한 단단한 역사공동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록 ‘단일혈족’이나 ‘단일종족’은 아니지만 ‘단일민족’이란 표현은 맞다고 봐야 한다.

‘한민족 역할론’까지 의식해야

그러면 이런 사실들이 지금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500년 이상 우리의 세계관은 배타성과 사대성으로 가득했다. 반도인이며, 역동성과 국제성은 없다고 교육받아 왔다. 사실이 아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정치적인 구호로 악용됐다. 보편적 인류애나 세계화를 구하는 이들로부터는 ‘민족’이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최근에는 각각 ‘탈민족주의’와 ‘전체주의’에 악용되면서 사사건건 충돌하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다 못해 적대감마저 생성시켰다.

식구들이 모이면 마을이 되고, 민족이 된다. 희로애락을 함께 겪은 생존공동체로서 오랫동안 발전해온 ‘한식구’라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부를 붕괴시키는 불필요하고 정체불명인 갈등들을 치유할 수 있다. 또한 안팎에서 압박하는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 힘과 논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세계 10위를 바라볼 정도로 성공한 나라라면 민족에 대한 자의식, 자긍심을 갖고 인류의 이상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민족 역할론’이 그것이다.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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