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美 VC "한국선 창업자가, 미국선 주주가 의사결정.. 투자계약서 작성 신중해야"

입력 2019-09-18 13:26   수정 2021-10-19 13:01

이 기사는 09월 18일 13:26 자본 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09월18일(13:26)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이 투자 대상을 물색할 때 꼭 찾는 사람이 있다. 노틸러스벤처파트너스의 브라이언 강 대표(사진)다. 삼성벤처투자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5년 동료들과 함께 초기 단계의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을 설립했다.

대만의 폭스콘을 비롯해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들 중 여럿이 이 회사가 만든 벤처 투자 펀드에 돈을 태웠다. 개별적으로는 경쟁관계지만, 노틸러스를 통해 한 배를 탄 셈이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주요 투자분야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모바일 기술 등이다.

당초 실리콘밸리 취재를 하며 강 대표를 만나기로 했을 때는 펀드의 성과 등에 대해 물어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펀드 자체의 성과모다도 한국계지만 미국 문화에 더 익숙한 그가 양쪽 나라를 오가며 느낀 투자문화의 차이점 그 자체가 흥미로웠다.

강 대표는 “한국과 미국의 투자문화는 아주 다르다”며 “한국에선 지분의 규모와 관계 없이 창업자가 회사의 주인이고 리스크도 감당하지만, 미국에서는 창업자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 뿐 의사결정은 주주에게 맡긴다”고 요약했다. 한국적인 '오너' 개념이 실리콘밸리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강 대표는 불과 몇 년 전에야 한국에서 말하는 '오너'의 의미를 실제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양쪽의 문화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지금은 한국 스타트업도 한국에서 시작할지, 미국에서 시작할지, 아니면 제3의 다른 나라에서 시작할지를 고를 수 있는 시대다. 강 대표는 “각 나라의 표준적인 투자계약서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깊게 반영돼 있다”며 “스타트업을 처음 시작하고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을 때는 어느 쪽에서 시작하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회사 성장의 모습에 맞는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했다.


▶노틸러스벤처파트너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삼성벤처투자에서 2004년 미주 사무소를 낼 때부터 2013년까지 일했는데 전략 투자도 좋지만 개인 사업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펀드를 만든 것은 2015년 3월이었다. 지금 5년차에 접어들었고 첫번째 펀드에서 20개 정도를 투자했다. 기업 벤처캐피털(CVC)와 좀 다른 것은 우리는 10년짜리 펀드라는 점이다. 처음 3년반 사이에 투자를 다 끝냈고 나머지 7년간 회수하는 중이다.

펀드 1은 1000억 정도 되는데 출자자는 9곳 정도다. 실적은 좋은 편이다. 말루바라는 회사는 알파고와 비슷한 인공지능(AI) 개발회사였는데 마이크로소프트(MS)에 2017년 인수되었고, 보크(Voke)라는 가상현실(VR)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는 인텔에 인수됐다. 나머지 중에는 성적이 좋은 것, 적당한 것, 어려운 것이 섞여 있다. 어려운 회사는 1~2개 정도니 괜찮은 편이다. 유니콘 가능성을 기대하는 회사도 있다. 두 번째 펀드는 작년 10월에 시작했다. 한국 CVC들이 출자를 많이 했다.”

▶지금까지 주로 어떤 업체에 투자했나.

“지금까지 투자한 회사 중 한국에 관련이 있는 것은 20개 중 3개인데, 한국에 있는 1개 회사는 미국으로 사업을 가져오고 싶어해서 다른 VC에 그 회사를 소개하는 작업 중이다. 나머지 2개는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나온 기술이다. 스타트업을 하기 위한 환경은 절대적으로 여기가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서는 투자 후 출구전략(엑싯)도 상장(IPO) 아니면 구주 거래(지분매각) 뿐인데, 여기는 인수합병(M&A)가 80~90%다. 과거 투자한 회사들도 거의 다 M&A로 했고 IPO는 3개 뿐이었다. 한국은 상장을 못할 경우 기업이 묻히거나 헐값에 팔리는 경우가 많다. 진짜 좋은 기술인데도 그렇다.

이런 회사들을 초기에 찾아서 아예 회사를 미국으로 옮겨서, 지식재산권(IP)과 기술도 이전해서 미국 회사를 만들면, 개발은 한국에서 계속 하더라도 그림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는 시리즈 A 펀딩(첫 번째 펀딩)을 노틸러스에서 한 다음 시리즈 B는 미국에서 한다.”

▶왜 회사를 미국으로 옮기나.

“원래 100원짜리 회사면 한국에서 500원으로 키울 수 있다면 미국에서는 5000원으로 키울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초기 투자 구조를 다 짜 놓으면(최초 투자가 이미 이뤄졌다면), 한국식 지분 구조로는 엑시트를 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 회사를 만들려고 하면 자본금을 창업자가 자기 돈으로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 VC 문화도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창업자가 집 담보잡히고 지인들에게 돈 빌리고 고생해서 처음 시작을 해 놓으면 VC가 이미 흑자나는 회사에 들어와서 2~3배 먹고 그랬다.

미국에는 (창업자가 마련해야 하는) 자본금이라는 개념이 일단 없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펀딩은 VC가 하는 것이다. 주주로서 이사회에 참여하고. 창업자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지만 자기 지분만큼의 결정권한만을 갖고 있다. 큰 결정, M&A 여부 등은 다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한국과 미국은 창업주와 기업의 관계가 좀 다르다.

“그렇다. 나는 미국에 21살에 건너왔는데, 2014년이 되어서야 오너라는 개념을 이해했다. 창업자를 왜 오너(owner, 소유자)라고 부르는가? 실제 지분율은 얼마 되지 않는 경우에도 그렇게 부르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왜 그런 개념이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여기는 창업자가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 돈은 투자받으면 되고, 장소를 제공하는 곳도 많고. 창업자가 뭘 담보로 잡히고 그런 게 없다. 대신 '이게 내 회사다' 이런 것도 없다. 아무리 내가 창업자라도, 약속을 못 지키면 바로 잘린다. 저도 (투자기업의 창업자를) 자른 적이 있다. 돈은 투자자가 대는 것이고 CEO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런 문화적인 배경, 투자자의 배경, 창업자의 기대치 이런 것이 서로 대단히 다르다. 그런 것이 계약서에도 반영이 된다.”

▶계약서가 어떻게 다르게 작성되나.

“한국 같은 경우, 투자계약서에 창업자의 권한을 많이 담아놓느다. 왜냐하면 창업자가 모든 리스크를 지고 이 회사를 만든 사람이니까. 투자자는 감시자다. 경영에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의 투자계약서에서는 창업자는 경영 CEO고 언제든 투자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쫓겨난다. 초기투자를 한국에서 받은 다음에 미국 가서 그 다음 투자를 받으려 할 때 한국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구조와 미국식 투자문화를 맞추기가 까다롭다.

한국에서 성공한 기업이 M&A 시장이나 VC 투자를 받을 때 비슷한 조건의 미국 기업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CEO가 모든 의사결정을 하게 되어 있고, 그런 점이 이쪽 회사들이 보기엔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스라엘 같은 경우 투자조건이 미국과 100% 동일해서, 어느 쪽에서 다음 단계 투자를 받는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어느 쪽이 반드시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큰 시장, 미국에 가서 성공하고 투자받고 투자하고 하려는 회사라면 그 문화와 양식을 따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이 스타트업이 크기에 좋지 않다는 것인가.

“사실 미국시장, 중국시장이 워낙 커서 비교가 되어 그렇지 두 곳을 제외하면 한국이 정말 스타트업 하기에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어 일본 같은 경우, 나라 수준에 비해서 스타트업 시장은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도 대학 나와서 공부해서 대기업 가는 거 안 하고 스타트업 많이 해서 몇백억씩 벌고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대기업에 집중해서 나라를 여기까지 가져온 거고, 당시로선 그게 최선이었겠으나 여러 부작용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한국에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있다. 그런 것들이 미국으로 나올 기회가 별로 없었을 뿐이다. 여기(미국)에 있었으면 잘 만드면 대박이다 하는 게 한국에서는 원하는 만큼 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쉽다는 것이다. 그런 회사를 초기에 찾을 수 있으면, 여기 데려와서 훨씬 크게 키울 수 있다. 나는 VC 하는 사람이니까 수익 극대화가 중요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VC를 통해 선순환이 되고 큰 회사 나오는 것을 많이 보니까,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한국 대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대거 진출해 있다. 이들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삼성벤처투자가 처음으로 미국에 사무소를 설립한 2004년에, (해외 VC로서) 투자하는 한국 대기업은 그때는 삼성 하나 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 생긴 게 LG다. 2009년에 만들어진 전신이 있었고 이번에 LG테크놀로지스로 새로 출발했다. 이어서 현대차가 나왔고, 하이닉스도 2015년에 이리로 왔고. 두산도 지금 막 생겼다. 한화도 2~3년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3~5년 사이에 한국 20대 기업 다 나왔다. 삼성 현대차처럼 정식 투자기구 같은 걸 두지 않았더라도, 돌아가는 거 파악하려고 1~2명씩이라도 나와 있다. 그들은 돈 많이 벌자고 하는 것 보다는 실리콘밸리 이노베이션, 메인사업 신사업 이런 걸 발견하는 것이 목표다.”

▶투자기업은 어떻게 선정하는지도 궁금하다.

“실리콘밸리 스탠다드는 '1%'다. 100곳을 검토해서 1곳에 투자한다. 한국 말고 미국 중국 대만 등 여러 나라의 스타트업을 본다. 1년에 적을 때는 700~1000개씩 본다. 한국에 지사가 있어서 그쪽에서도 보는 한국 딜이 약 50개 정도 되는 것 같다.

반 정도를 골라서 미팅을 한다. 저 혼자는 아니고 팀이 나눠서 한다. 하루에 적으면 5개 많으면 10개 정도를 본다. 다시 검토를 하고, 실사도 해서 최종적으로 6~7개 정도 투자하게 된다. 출자한 회사에는 중에 맞는 비즈니스 연결도 해 준다.”

▶국내 기업 말고 연기금이나 금융사도 VC 투자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 대기업 외에도 최근에는 은행권, 국민연금 등에서 해외 VC 투자를 하고 있다. 사모펀드(PEF)나 헤지펀드에 돈을 태우기도 하는데 아직은 국민연금이 주도하는 것 같다. 민간에서는 미래에셋대우 정도가 관심이 큰 회사다.”

▶두 번째 펀드 조성은 어떻게 되고 있나.

“1000억원 이상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투자 대상 기업은 너무 많아지면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20곳 정도를 고를 계획이다. 보통 초기에는 200만~300만달러를 투자하고, 추가 펀딩 등을 통해 평균적으로 500만달러 정도씩 들어가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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