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숲길 鐵馬는 멈춰도, 낭만은 ing

입력 2019-10-20 14:57   수정 2019-10-20 14:58

‘도시는 과거의 기억들이 거리 모퉁이에, 창문 창살에, 계단 난간에, 깃발 게양대에, 피뢰침 안테나에 그리고 모든 부분 부분에 흠집으로 각인되고 무늬로 새겨져 마치 손에 그려진 손금과도 같이 담겨 있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묘사된 문장처럼 600여 년 동안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구석구석에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서울관광재단과 함께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 있는 길을 걷고, 문학과 영화 속에 입체적으로 그려진 서울 모습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첫 여정으로 빌딩 숲이 우거진 복잡한 도심에서 수려한 풍경을 품은 길을 걸으며 문화와 예술의 흔적을 따라가 보면 어떨까.

역사의 숨결과 예술의 향기 가득한 한양도성 순성길

1396년 조선은 새로운 수도 한양에 백성의 땀이 스민 거대한 성곽 한양도성을 세웠다. 서울을 둘러싼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잇는 한양도성은 능선을 따라 평지, 산지, 구릉지 구간을 연결해 축성한 18.6㎞의 대규모 도시성곽이다. 네 구간의 한양도성 순성길 가운데 도성 서문인 돈의문에서 서북문 창의문을 잇는 인왕산 구간은 문화와 예술의 정취가 가득하다.

서대문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돈의문은 1396년 처음 세워졌으나 1413년 경복궁의 지맥을 해친다는 이유로 폐쇄됐다가 1422년 지금의 정동 사거리에 새로 조성됐다. 이때부터 돈의문은 새문(新門)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돈의문 안쪽 동네는 새문안 동네로 불렸다.

1915년 일제강점기에 도로를 확장한다는 이유로 돈의문은 철거됐다. 서울 사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복원되지 못했다. 이를 대신해 돈의문 터에 근현대 100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조성했다. 조선시대 모습이 그대로 남은 언덕 위 골목길에 한옥을 비롯해 일본과 서양의 건축 양식을 접목한 근현대 건축물을 단장해 새로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다시 태어났다. 붓으로 그리고 칠해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영화 포스터가 그려진 새문안극장에서는 1960~1980년대 한국 영화 역사를 소개하고 실제 영화필름을 전시한다. 추억의 영화도 상영한다. 아버지의 머리를 말끔하게 다듬었던 이발소를 재현한 삼거리 이용원 간판이 정겹다. 1980년대 결혼식장 분위기 같은 서대문사진관에서는 흑백사진에 추억을 담아간다.

좁은 골목을 돌아 나오면 3·1운동과 4·11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조성한 독립운동가의 집이 있다. 맞은편 돈의문구락부는 프랑스인 부래상(富來祥), 미국인 테일러 등 마을에 거주했던 외국인들과 개화파 인사들이 문화 교류를 했던 근대사교장으로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고즈넉한 한옥이 늘어선 골목에서는 한지공예, 서예, 화장·복식, 한국 가요 변천사를 알 수 있는 음악 예술, 근현대 차(茶)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을 나오면 강북삼성병원 안에 아치 모양의 창문이 달린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 경교장이 있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경교장은 근처의 경교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지은 2층 건물이다. 1945년 해방 후 백범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이 숙소로 사용했다.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였던 이곳에서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수차례 열렸다. 1949년 김구 선생이 서거한 역사적 현장인 경교장은 이후 중화민국대사관 사택, 월남대사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1967년부터 병원시설로 이용됐다. 2010년 당시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김구 선생의 집무실과 귀빈 식당 등을 그대로 복원하고 전시관을 마련했다.

경교장을 나와 인왕산으로 향하는 도성을 따라 걷다 보면 월암공원이 나온다. 공원 근처의 작고 아담한 서양식 붉은벽돌 주택은 ‘고향의 봄’ ‘봉선화’ ‘퐁당퐁당’ 등 수많은 가곡과 동요를 남긴 작곡가 홍난파의 집이다. 홍난파는 1935년부터 1941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집에서 주옥같은 대표작을 남겼다. 다시 도성길을 따라 인왕산 정상을 넘어 걷다 보면 별처럼 빛나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흔적을 만난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서서 도심 한복판을 바라보니 그의 시처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다.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누상동에서 하숙하며 종종 인왕산에 올랐던 윤동주는 이 시기에 ‘별헤는 밤’ ‘자화상’ 등 지금도 사랑받는 작품을 썼다.

아름다운 한강의 풍경을 담은 겸재정선길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60대 후반인 1740~1745년 지금의 강서구 일대인 양천 현령으로 있으면서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등 걸작을 남겼다. 이곳에서 서정적인 강변의 경치를 그렸다. 겸재가 바라본 한강 겸재정선길은 양천향교, 궁산 소악루, 겸재정선미술관으로 이어진다.

가양동 궁산 중턱에 있는 양천향교는 전국 234개 향교 중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교로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됐다. 조선 태종 11년(1411년)에 처음 지었고, 1981년 복원했다. 공자와 유가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며 유학을 연구하고 강론한 지방 교육문화의 산실이다.

양천향교 뒷산인 궁산 기슭에 오르면 한강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 소악루가 있다. 누각에 올라서면 안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이 한눈에 보이고 넓은 한강 줄기를 따라 진경이 펼쳐진다. 겸재가 그린 ‘경교명승첩’에 담긴 풍경과 지금의 풍경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소악루에서 산길을 따라 내려오면 겸재정선미술관이 나온다. 3층 규모의 겸재정선미술관에는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서울과 한강을 주제로 한 작품과 옛 강서 모습인 이수정(二水亭), 소요정, 개화사, 양천현아, 종해청조, 공평층탑, 소악후월, 소악루 등 겸재정선길의 아름다운 풍경이 화폭에 담겨 있다.

추억과 낭만이 깃든 경춘선숲길

서울과 춘천을 연결하는 철길 경춘선은 서울 경(京)에 춘천의 춘(春)을 더한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철도는 일제의 침탈용으로 부설됐는데, 조선총독부가 철도가 없다는 이유로 강원도청을 춘천에서 철도가 있는 철원으로 이전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춘천 부자들이 사비를 들여 서울에서 춘천까지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했다.

이런 사연으로 들어선 철길에는 이후 성동역(현재 제기역 근처)과 춘천으로 이어진 철로를 따라 청춘의 낭만을 실은 열차가 달렸다. 경춘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성동역에서 성북역 구간은 철거됐다. 더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선에 월계역에서 구리시 담터마을까지 경춘선숲길을 조성했다. 철길 원형을 그대로 살리고 정원과 산책로, 문화공간을 조성해 도심에서도 옛 기억을 추억하며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옛 감성이 그대로 묻어있는 화랑대역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다. 원래 태릉역이라는 이름이었지만 1958년 육군사관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저녁노을이 내리면 더 낭만적인 화랑대역에는 1950년대 미카 증기기관차와 협궤열차, 체코와 일본의 노면전차가 전시돼 있다. 역사 내부에는 승차권 매표소와 역무원이 사용했던 철제 책상도 놓여 있다. 역사에 마련된 1970~1980년대 교복을 입고 열차의 기적 소리를 추억하며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글·사진=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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