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전복 '비밀 박스'에 담아 수출…더운 나라로 24시간 싱싱 배송"

입력 2019-11-19 09:52   수정 2019-11-19 11:45



살아서 꿈틀대는 전복과 바지락, 농장에서 방금 수확한 딸기, 제주의 겨울 특산물 노지 감귤. 한국에서 유별나게 맛있는 신선 먹거리들은 동남아시아와 중동 등에서 사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수십 년간 수출의 한계가 분명했다. 산지에서 바로 보내도 항공 배송 과정에서 무르거나 썩어 30% 이상 버려졌다. 통관할 때 운이 나쁘면 오래 묶여 100% 폐기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신선도가 떨어지면 현지에서 막상 제값도 못 받았다.

통관과 신선도 유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초신선식품 해외배송’ 시장을 연 물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있다. DHL, 페덱스 등 쟁쟁한 글로벌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이 시장에 과감히 뛰어든 건 이수아 에스랩아시아 대표(33)다. 이 회사가 배송하는 신선식품의 폐기율은 5% 내외다. 5년 전 일반물류로 시작해 K뷰티, K푸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그를 지난 30일 서울 서초동 위워크에서 만났다.

○우주공간 같은 ‘비밀의 박스’

에스랩아시아의 핵심 경쟁력은 신선식품 전용 배송박스인 ‘그리니박스’다. 온도, 습도, 조도와 파장까지 제어해 생물을 24시간 살 수 있게 했다. 이 대표는 “마치 우주 공간처럼 어떤 진동도 소리도 느껴지지 않는 박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IoT(사물인터넷) 장치를 달아 상자의 위치 및 온도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 가능하도록 했다.

두 번째는 통관 라이선스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홍콩 등에서 딴 통관 관련 라이선스만 300개가 넘는다. 비행기에 가장 늦게 물건을 싣고, 가장 빨리 내릴 수 있는 ‘포워딩 라이선스’ 등을 갖고 있어 통관 때문에 물건 배송이 늦어지는 경우가 없다. 현지 법인도 강점이다. 배송 보낸 택배를 현지 업체가 아닌 에스랩아시아의 물류 창고에서 직접 보관하고 유통한다. 5년간 쌓인 동남아 주문량 빅데이터는 이들의 핵심 자산. 동남아 물류 파트너사는 30곳을 넘겼다. 전 세계 물류 회사 중 동남아 시장에선 가장 넓은 네트워크다. 어떻게 이 모든 걸 33세의 여성 대표 혼자 해냈을까.

“급할 땐 지게차와 트럭도 직접 몰고, 1년에 200일 이상은 한국 밖이나 비행기에 있었어요. 택배를 보내면 아직도 손으로 직접 써서 풀로 붙이는 나라에서 ‘물류의 디지털화’를 전도하려는 게 시작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일본 오이타 리츠메이칸대APU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4년 반의 유학 끝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글로벌 의류 수출기업 세아상역. 4년간 중국과 동남아를 오가며 의류 원단을 소싱하고, 공급망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물류 관리를 해보니 재미가 있었다. 그는 “물류는 눈에 보이지 않아 막연히 어렵게 느껴지고 전통적인 산업이라 지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디지털과 만나면 얼마든지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고 앞으로 더 커질 분야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24시간 신선…더운 나라 수출하는 화장품이 먼저

에스랩아시아는 창업 초기 화장품 역직구 플랫폼으로 해외 시장에서 인정 받았다. K뷰티가 주목 받으며 국내 화장품이 동남아로 불티나게 팔릴 때였다. 이 대표는 “K뷰티 열풍으로 화장품 역직구가 크게 늘었는데, 덥고 습한 나라로 배송되다보니 향이 다 날아가거나 변질되는 사고가 숱하게 생겼다”고 했다. 세아상역 때 원단 소싱을 해본 경험을 살려 그는 특수 재질의 택배박스 충전재 개발에 나섰다. 기존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을 가득 채울 경우 신선 유지 시간은 6시간. 그가 개발한 그리니박스는 이동 중에 온도 차이가 10℃이상 벌어지더라도 24시간을 처음 상태 그대로 유지한다.

어려움도 많았다. 이름 모르는 회사인데 왜 택배값이 비싸냐며 강짜를 부리는 파트너도 많았다. 해외 물류 창고 계약을 맺은 회사에 막상 가보면 에어컨도 틀지 않은 방에 아무렇게나 택배 물건을 방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말레이시아와 태국 등 파트너사를 일일이 찾아가 택배 송장 프린터기 등을 무상으로 주면서 한국의 디지털 기술로 더 편하고 정확한 택배를 할 수 있게 된다고 일일이 발로 뛰며 설득했다”며 “한국의 기업 고객들도 물류 로스나 사고가 다른 곳보다 훨씬 적다는 신뢰가 쌓이면서 변화했다”고 말했다. 현지 도매상과 유통상을 연결해주는 일도 이 대표가 직접 했다. 단지 물류만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한국 식자재의 우수성을 알리고 소비 채널을 확보하는 데도 함께 뛴 것.
DHL 등 글로벌 물류 기업들도 이 같은 온도 유지와 충격 방지 특수물류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고가의 의약품을 실어나르는 목적이어서 한 번 보낼 때 에스랩아시아의 같은 택배에 비해 비용이 2배 이상이 든다.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식품 업계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수출 효자 반도체·차? 이젠 ‘식품’


전복과 바지락, 홍합 등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물로 장거리 항공 이동 시 최적의 온도와 습도, 파장 등을 연구한 데이터만 수만 건 쌓였다. 그는 “다른 대기업이 진출한다고 해도 우리가 5년간 했던 실험을 그대로 반복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성과도 나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방금 딴 노지감귤을 김포공항에서 받아 싱가포르로 수출해 연말 연시에 팔았다. 1t도 겨우 팔 수 있을까 싶었는데 7?을 팔고도 모자랐다. 전복은 국내 최대 수출업체인 청산전복과 손잡고 싱가포르 등 프리미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산 식품이 일본산과 많이 겹치는데 최근 원전 이슈 때문에 한국산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 데다 한국 신선식품이 더 싸고 맛있다는 것을 동남아 사람들이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BTS를 중심으로 K팝의 인기가 치솟으며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기회다. 그는 “조만간 한국의 밀키트도 24시간 내 배송해 제대로된 한식를 전 세계 사람들이 요리하며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그의 다음 진출 국가는 중동이다. 에스랩아시아의 전략 국가인 말레이시아에 이슬람권 바이어들이 드나들며 먼저 물류 요청을 해왔다. 그는 “신선 먹거리를 거의 전량 수입해야 하는 중동은 항공 냉동 운송 등으로 인해 식품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면서 “그리니박스를 활용해 더 신선한 식품을 싸게 먹을 수 있기를 원하고 있다”고 했다.

에스랩아시아에는 각종 투자와 협력 요청도 몰리고 있다. TBT로부터 올초 10억원을 투자 받았고, 최근 풀무원 가락시장을 포함해 각 지역 농수산 기업과 협약을 맺었다.

김보라 기자/사진=김영우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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