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빼곤 '숙맥'…세계 男女통합 챔프 탐나요"

입력 2019-11-21 17:58   수정 2019-11-22 00:21


지난 19일 제24기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 결승 3번기 제1국. 인공지능(AI)이 최정 9단(23)의 승률을 5%로 예측해 모니터 화면에 띄웠다. 거꾸로 말하면 상대 오유진 7단(21)이 이길 확률이 95%라는 뜻. 140수가 넘어가자 승리 예상 그래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유진의 실수였다. 최정은 이 틈을 파고들어 카운터를 날렸다. 승부가 뒤집혔다. 하루 뒤 이어진 제2국도 마찬가지였다. 최정은 오유진의 초반 공세에 역전, 재역전을 오가며 고전했다. 최정은 160수째 나온 오유진의 실착을 놓치지 않고 기어코 경기를 뒤집었다. 3년 연속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최정은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거의 진 바둑이었는데 말 그대로 ‘대역전승’이었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하다 보니 기회가 났다. 정말 값진 경험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전날 서울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대회 결승 3번기 제2국에서 오유진에게 221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며 제22기와 제23기에 이어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국내 1위 닭고기 생산업체 하림이 후원하고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하는 이번 대회에서 그는 우승상금으로 1500만원을 손에 넣었다. 또 이 승리로 지난해 10월 11일부터 이어온 국내 여자 기사 상대 연승 행진을 43경기로 늘렸다. 역대 세계 여자 기사를 상대로 거둔 319승(72패)째이기도 하다.

뒷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승리였다. ‘2인자’ 꼬리표를 떼기 위해 칼을 갈고 나온 오유진의 공격은 날카롭고 매서웠다. 최정은 “초반 경기력이 약한 부분은 보완해야 할 것 같다”며 “고쳐야 할 점을 많이 깨달은 대회였다”고 말했다.

뒷심의 비결은 체력이다. 그는 낮에 바둑 공부를 끝내면 저녁에 꼭 운동을 했다. 평일에는 요가와 필라테스를 챙겼고, 주말에는 농구 동호회에서 땀을 뺐다.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바둑 공부를 하던 ‘오빠’들과 재미로 시작한 농구가 좋아 아직까지 하고 있다.

“바둑은 오랜시간 몰입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게임이다. 그래서 평소 운동의 필요성을 항상 느낀다”는 게 그의 말이다. “키가 157cm로 크지 않은 편이라 ‘가드’를 주로 소화해요. 상대들의 키가 너무 커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순발력은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하하.”

취미는 영락없이 여느 20대와 비슷하다. 랩 음악 듣기를 좋아하고 피아노를 즐겨 친다. 술도 마신다. 그는 “잘 마시진 못한다”며 웃었다. “한 번은 친구들이랑 술 먹다가 지지 않겠다고 소주를 두 병까지 마셨는데 너무 고생했어요. ‘한계 주량’의 의미를 그때 깨달았죠. 이제는 맥주 세 잔이 딱입니다.”

그는 이 대회 우승으로 독주체제를 다시 굳건히 했다. 72개월째 국내 여자바둑랭킹 1위를 지켜냈다. 다음달에도 1위 자리를 예약해 놨다. 말 그대로 ‘최정 시대’다. ‘타고난 천재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바둑 천재요? 일곱 살 때 잰 아이큐는 140으로 높았지만 나이를 먹어서 측정한 뒤에는 120을 조금 넘겨요. 바둑 두는 데 아이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공간지각능력도 뛰어난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릴 때 길 잃고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운 것만 해도 몇 번인지…. 바둑 말고는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여자 바둑에서 사실상 모든 것을 이룬 최정의 눈은 남자 대회를 향해 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세계대회 남녀통합 우승이다. 남자 기사를 상대로도 161승 145패를 기록 중인 그에게 꿈만 같은 목표는 아니다. 최정은 “바둑 둘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계속 ‘재미있는 바둑’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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