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조봉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 "소상공인·전통시장 특급 도우미 될 것"

입력 2019-11-22 17:40   수정 2019-11-23 00:40


“몇 달 전 점심 때 직원 한 명과 대전 중앙시장을 찾았습니다. 시장 가운데 좌판 순대집이 눈에 띄었어요. 가격을 물었더니 5000원, 1만원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두 명이어서 1만원어치를 달라고 했습니다. 순대를 썰어주는데 양이 많더라고요. 먹다가 남길 수도 없고 다 먹느라 혼났습니다.”(웃음)

조봉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57)은 시간이 날 때마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가게를 들른다. 30여 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지난 3월 말 소진공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생긴 습관이다. 조 이사장은 통합된 소진공을 하나의 유기체 조직으로 만들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돈을 벌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는 게 목표라고 했다. ‘맡은 일에 대해서는 프로답게 밥값은 해야 한다’는 그의 신조처럼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매주 전국을 누비고 있다.

친구들과 자주 찾는다는 서울 인사동 선천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선천은 지난해 6월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진공으로부터 ‘백년가게’로 선정된 곳이다. 백년가게는 소상공인의 성공 모델을 확산하고 100년 전통의 지역 명소를 육성하기 위한 제도다. 이 식당의 백미인 평안도 김치처럼 조 이사장의 삶이 담백했다.

인문학에 빚진 고시생

“여기 모둠전이 맛이 좋더라고요.” 따끈한 깻잎전의 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한 입 베어 물자 향긋한 향이 입에 가득 찼다. 과하지 않은 소박한 맛이었다.

조 이사장은 경북 안동이 고향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 만리동으로 올라오기 전까지 영주 등 경북 북부지역에 살았다. 향이 진한 산나물을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찬으로 나온 나물들에 먼저 젓가락이 갔다. 어렸을 때 교편을 잡은 아버지에게 혼난 기억이 많다고 했다. 운동장 조례 시간에 친구한테 살짝 돌을 던지고 모른 척하는 등 장난을 많이 쳤다.

경복고 3학년 때인 1979년 서울대 본고사를 치렀다. 7개 수학 문제 중 한 문제도 못 풀었다. “역대급으로 어려웠어요. 시험을 보면서 재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정도였죠.” 이듬해 수학 문제에서 50점 정도 맞아 합격했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에 들어간 조 이사장은 당시 시끄러운 시국 상황을 외면할 수 없어 학생운동에도 참여했다. 전공인 문학의 길 대신 고시(행시)라는 새로운 길을 택한 게 대학 3년 때였다. 조 이사장은 “2학년 때까지 고민했지만 글을 쓰거나 비평 활동을 하는 데 작가적 재질이 모자란 것 같았다”고 했다. 인문학 전공자들이 본업을 떠나 다른 일을 하는 걸 그는 ‘외도’, ‘샛길’이라고 표현하던 시절이었다. 아직도 인문학에 미련이 남고 또 인문학 전공자들한테 빚을 진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소주 한잔을 들이켰다.


농어촌정비법·규제자유특구법 만들어

조 이사장은 행시(30회)에 붙은 뒤 곧바로 석사장교로 임관했다. 1988년부터 농림수산식품부에서 10년가량 일했다. 줄곧 예산 분야만 맡았다. 기획예산처로 옮기게 된 것은 당시 중앙부처 간 공무원 인사교류가 확대되면서였다. 그는 “대부분 예산과 투자심사를 맡아와서 기획예산처에 적응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15년 정도 기획재정부에서 예산과 공공기관 업무를 담당했다.

공무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8년 농어촌정비법을 완전 개정한 일. 농업 생산 기반, 농어촌 생활환경, 농어촌 관광휴양자원 및 한계농지 등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정비·개발해 농수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농어촌 생활환경 개선을 촉진하는 게 목적인 법이었다. 조 이사장은 “현대적인 농어촌 건설과 국가 균형 발전에 기여한다는 생각에 1년여간 야근이 이어져도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마침 밥이 나왔다. “돼지고기 장조림이 쫄깃합니다. 한번 드셔보세요.” 하얀 쌀밥에 장조림 하나를 올렸다. 된장국도 한입 떠넣었다. 농림부 시절 농민들의 고생을 알아 쌀 한 톨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조 이사장은 2017년 중소기업청이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할 때 중기부 정책실장으로 옮겼다. 기획재정부에서 오래 근무한 데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할 때였다. 신설 부처에서 공무원 서열로 맏형뻘이었다. 중기청 시절에 익숙한 공무원들이어서 예산 확보 등 안 해 본 일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조 이사장은 “직원들에게 파이팅을 불어넣고 격려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때 규제자유특구법을 만든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규제 없이 혁신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지역을 정해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게 요지다. 지난 7월 강원 대구 등 1차로 일곱 곳이 정해졌고 이달 2차로 광주 대전 등 일곱 곳이 추가 지정됐다. 조 이사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조직 통합하고 역량 강화 집중

공무원 생활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소진공으로 온 뒤 정책이 현장에서 얼마나 잘 녹아들어 도움이 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잘되는 곳도 있고, 그렇지 못한 곳도 있었다. 잘되고 있는 곳은 더 잘되게, 안되는 곳도 잘되게 도와야 했다. 먼저 직원들을 독려했다. “우리 스스로 역량을 키워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매출을 늘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자”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자체 교육을 통해 임직원 역량 강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소진공에서 해야 할 일을 두 가지로 정했다. 하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630만 소상공인과 전국 1450여 곳의 전통시장 상인이 돈을 잘 벌 수 있게 하는 일. 제로페이 등을 홍보해 수수료도 낮추고 온라인을 통해 매출을 올리는 법 등을 열심히 알리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성공 모델을 만들고 전파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전통시장에서는 가격표시제를 활성화해 손님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열심히 장사하려는 사람들에게 같은 업종에서 성공 사례를 발굴해 전파하면 큰 힘이 됩니다. 업종별로 많은 성공 사례를 파악해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소진공이라는 조직을 통합하는 것도 남은 과제다.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지원 조직이 합쳐진 지 6년이 지났지만 화학적 결합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조 이사장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지역센터를 열심히 다니고 본부 직원과도 부지런히 소통하고 있다. 피자데이를 통해 직원들에게 피자를 사주며 대화하고 있다. 직원들도 소탈한 이사장에게 거리낌없이 다가온다. 조 이사장은 “평소 성격이 꾸밈없고 부담이 없다 보니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출장갈 때 비행기값은 해야

조 이사장은 로마의 이탈리아 대사관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파리 사무국 등에서 오래 근무했다. 외국 생활이 길어 영어 등 외국어를 잘하는 편이다. 그는 공무원들이 해외 세미나나 콘퍼런스에 가서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최소한 “당신의 생각에 동감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회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무원들이 해외 행사에 갈 때는 국가를 대변하는 겁니다. 비행기값은 하고 와야 합니다. 종종 네트워크 활성화에 소극적인 후배들의 모습을 볼 때 조금 아쉬웠습니다.”

조 이사장은 틈틈이 등산을 하거나 영화 보는 걸 즐긴다. 전국의 명산은 다 올라갔다. 2년 전 지리산을 무박2일로 다녀온 경험이 있다.

1남2녀를 둔 조 이사장은 영상영화학과를 전공하는 막내딸 덕분에 최근 큰딸과 함께 ‘1982년생 김지영’을 봤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 출연진이 무대 인사를 했다. “남자 배우 공유가 얼굴이 작고 비현실적(?)으로 잘생겼더라”며 웃었다. 젊은 영화팬들이 주연 배우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채운 것을 보면서 그 열성에 놀랐다고 했다. 영화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점을 잘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조 이사장은 “우리 사회도 과거와 많이 달라지고 있다. 그런 시대 흐름에 맞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생태계를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소상공인·전통시장 지원기관이다. 2014년 시장경영진흥원과 소상공인진흥원 두 기관이 통합돼 탄생한 조직이다. 소상공인은 제조업 광업 운수업 건설업종의 경우 상시 근로자 10명 미만, 기타 업종의 경우 5명 미만의 종업원이 근무하는 사업장의 사업주를 의미한다. 음식점 미용실 철공소 등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소진공은 620만 소상공인과 1450개 전통시장의 경영안정과 자생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우리 경제의 당당한 주체”라고 말한 뒤 소진공의 업무에 힘이 실리고 있다.

■ 조봉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 약력

△1961년 경북 안동 출생
△1979년 경복고 졸업
△1984년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198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1987년 행정고시 30회
△2013년 기획재정부 공공혁신기획관
△2014년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
△2016년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장
△2017년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정책실장
△2019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3대 이사장



조봉환 소진공 이사장의 단골집 선천

직접 담근 간장·신선한 재료로 만든 평안북도 가정식 백반

서울 인사동 골목에 있는 선천은 1969년 해원으로 시작, 2년 뒤 선천으로 간판을 바꿨다. 식당 이름은 박영규 사장(88)의 고향인 평안북도 선천에서 따왔다. 박 사장은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인사동에 선천과 사천 두 한식당밖에 없었다”며 “1980년대 옛 민정당사가 들어서면서 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선천은 전통 한식당으로 가정식 백반과 주요 반찬들이 정갈스럽다. 2015년 3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코스 요리가 주요 메뉴였다. 이후 단품으로 바뀌었다.

장을 식당에서 직접 담근다. 한 해 콩 다섯 가마를 사용해 메주를 쒀 선천표 장이 탄생한다. 김치가 특히 별미로 꼽힌다. 평안도 김치로 맵고 짜지 않은 게 특징이다. 김치에 조미료 대신 생새우와 생낙지를 넣어 맛을 낸다.

박 사장은 음식맛의 비결로 신선한 재료를 꼽았다. 채소는 40년째 같은 가게에서 배달해준다. 박 사장은 “가정식 백반은 집마다 개성이 있었다”며 “지금은 사서 먹다 보니 음식 문화가 똑같다”고 했다. 그는 또 “양념을 고루 넣어서 간을 잘 맞추는 정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박 사장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메뉴는 낙지를 듬뿍 넣은 파전이다.

김진수/나수지 기자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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