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 라면' 먹는 것 같은데…3년간 쏟아진 '신상 라면' 112개

입력 2019-11-29 17:44   수정 2019-11-30 01:19

한국인은 1년에 평균 74개의 라면을 먹는다. 세계 1위다. 2위 베트남과는 20개 차이. 한국인의 라면 사랑을 보여주는 수치다. 라면 사랑은 자신만의 조리법으로 이어진다. 사람들마다 라면 레시피를 하나쯤 갖고 있을 정도다.

이런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 기업들은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2017년부터 최근까지 약 3년간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4개 라면회사가 내놓은 제품만 112가지에 달한다. 이 제품이 지금 모두 대형마트에 진열돼 있는 것은 아니다. 29가지는 생산 중단됐다. 거미새해물라면, 스리라차볶음면 등은 소비자들이 이름을 들어보기도 전에 사라졌다.

라면 4사의 신제품 출시 시기와 전략도 달랐다. 농심은 찬바람이 부는 성수기인 11월부터 3월 사이에 많은 제품을 내놓는다. 오뚜기는 여름과 가을에 공격적으로 출시했다. 삼양라면은 패턴이 다르다. 많이 내놓고 빨리 접는다. 3년간 32개를 내놓고 이 중 20개를 단종시켜버렸다. 올해 트렌드는 신라면 건면의 분전을 제외하면 ‘저가형’이 대세라고 할 수 있다. 2015년과 2016년 짜왕 짬뽕면 등 고가 라면을 내놨지만 반짝 인기에 그친 여파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수많은 라면이 쏟아지지만 베스트셀러는 장수 라면들이다. 신라면 짜파게티 진라면 안성탕면 육개장사발면 비빔면 등은 수년째 10위권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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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흔한 음식이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1963년 삼양식품이 국내에 라면을 처음 선보인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산업화 시기, 라면은 서민들이 저렴하게 끼니를 잇게 해줬다. 소설가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라는 책에서 이 시절을 “라면을 먹으면서 상실된 삶의 두께를 괴로워했다”고 표현했다.

농심은 겨울, 오뚜기는 여름에 신상라면
삼양은 '많이 내고 빨리 포기'


소외된 개인의 음식이었다는 말이다. 2000년대 이후 라면은 진정한 의미의 기호식품이 됐다. 다양한 라면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인의 라면 사랑도 변치 않았다. 1인당 라면 소비량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트렌드와 전략은 바뀐다. 지난 3년간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국내 대표 라면회사가 내놓은 제품과 전략을 분석해봤다.

농심은 겨울파 vs 오뚜기는 여름파

지난 3년간 4개사가 내놓은 라면 신제품은 모두 112개였다. 매년 약 37개, 매달 3개의 새로운 제품이 나온 셈이다. 라면회사마다 집중적으로 새 제품을 내놓은 시기는 달랐다. 찬바람이 불 때쯤부터 새 라면을 쏟아내는 곳이 있는가 하면 날씨가 더워질 때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회사도 있다.

찬바람이 불 때 특히 활발해지는 회사는 업계 1위 농심이다. 지난 3년을 보면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총 22개 제품을 내놨다. 전체(40개)의 절반(55%)이 넘는다. 겨울(12월~이듬해 2월)과 봄(3~5월)에만 모두 24개. 한 해 동안 내놓은 신제품의 60%가량이 이 시기에 ‘등판’했다. 최근에는 ‘집밥감성 고추장찌개면’을 새로 내놨다.

업계 2위 오뚜기는 날이 더워질 때 신제품을 쏟아낸다. 5월부터 9월까지 내놓은 제품은 모두 16개. 전체 신제품(29개)의 55%가 이 시즌에 나왔다. 9월 한 달로만 따지면 3년 동안 10개를 내놨다. 농심(3개)의 세 배가 넘는다. 오뚜기는 대신 한겨울에는 동면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최근 3년 동안 1~2월에는 신제품을 아예 내지 않았다.

두 회사 모두 출시 시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신제품 개발과 출시는 연간 단위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숫자는 ‘겨울 농심, 여름 오뚜기’라고 말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10월에는 조용했다. 3년을 통틀어 지난달 말 농심이 출시한 ‘강황쌀국수볶음면’ 외에는 신제품이 없었다. 한 라면회사 관계자는 “10월은 보통 추석 명절을 끼고 있어 신제품 출시를 피한다”고 설명했다. 명절 선물세트 등에 소비가 집중돼 신제품을 내도 주목받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칠전팔기’의 삼양

3위 삼양의 전략은 ‘많이 내놓고, 안 팔리면 빨리 접는다’로 요약할 수 있다. 어떤 회사는 신제품이 팔리지 않아도 버티지만 삼양은 기대치에 못 미치면 미련없이 생산을 중단한다. 삼양이 2017년 초부터 지금까지 낸 라면은 총 32개로 오뚜기(29개)보다 많다. 이 가운데 지금도 팔리고 있는 제품은 겨우 14개, 생존율 44%. 신제품 가운데 18개가 3년 새 시장에서 사라졌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새로운 맛을 계속 개발하고, 안 되면 접고, 다시 새 제품을 냈다.

삼양의 주무기는 스테디셀러 불닭볶음면의 변형 제품이다. 이 가운데 2017년 나온 쿨불닭비빔면, 커리불닭볶음면, 마라불닭볶음면은 현재 살 수 없다. 까르보불닭볶음면, 짜장불닭볶음면, 핵불닭볶음면은 지금도 나온다. 지난 20일엔 미트스파게티불닭볶음면을 출시했다.

생존율로만 따지만 오뚜기가 97%로 가장 높다. 29개 신제품 중 딱 한 가지만 단종됐다. 2017년 6월 나온 ‘와사비마요볶이’다. 타

와사비 안주, 와사비 과자 등 와사비 맛이 식품업계를 휩쓸 때였다. 맛 트렌드가 바뀌면서 판매량이 줄자 생산도 멈췄다.

농심 신제품의 생존율은 85%(40개 가운데 34개). ‘얼큰토마토라면’ ‘양념치킨면’ 등 ‘실험적’인 라면은 자취를 감췄다. 신제품 출시가 많지 않은 팔도에선 11개 가운데 7개가 살아남았다. 삼양의 불닭볶음면에 대항해 내놓은 ‘볼케이노 꼬꼬볶음면’도 사라졌다.

프리미엄에서 저가형으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라면시장의 키워드는 ‘프리미엄’이었다. 이때 나와 지금도 팔리고 있는 짜왕, 진짬뽕, 신라면블랙 등의 가격은 1500~1600원 정도다. 가장 많이 팔리는 신라면(830원)과 진라면(720원)의 두 배 수준이다.

올해는 얘기가 다르다. ‘초저가’ 라면이 대세다. 편의점 이마트24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월 민생라면(5개 1묶음) 가격을 1950원으로 낮췄다. 한 봉지에 390원. 농심도 곧바로 저가 트렌드에 올라탔다. 1990년 단종됐던 해피라면을 700원에 선보였다. 간판 상품 신라면보다 130원 저렴하게 책정했다.

올초 시작된 저가 경쟁은 하반기에도 이어졌다. 편의점 CU는 봉지당 500원짜리 ‘CU 실속500라면’을 출시했다. “경기 불황으로 가라앉은 소비심리를 띄우기 위해 가격을 낮춘 라면을 내놓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오뚜기가 가장 최근에 선보인 라면도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웠다. 600원대의 ‘오!라면’이다. 출시 82일째인 29일까지 총 1500만 개가 팔렸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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