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유임 발탁'이 유행어인 사회

입력 2019-12-11 17:35   수정 2019-12-12 00:10

요즈음 산업계에 ‘유임 발탁’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유임은 머문다는 뜻이고 발탁은 인재를 뽑아 중용한다는 의미다.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합쳤으니 부조화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바야흐로 긴축 경영과 리스크 관리가 재계의 화두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주력 품목의 수출은 급격히 위축되고, ‘소득주도부진’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내수도 어렵다. 일자리가 늘었다는 정부의 발표는 ‘질은 오히려 악화됐다’는 논란에 파묻히고 있다. 올해 경제 성장률 2%대 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판이다.

무산되는 직장인의 꿈

나빠진 경제 상황은 산업계 전반에 높은 파도로 밀어닥치고 있다. 당장 인사철을 맞아 임원 숫자 줄이기가 두드러진다. 베이비부머 끝자락이자 86세대인 1980년대 초반 학번 임원의 상당수가 짐을 쌌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일부 그룹은 임원 축소 비율이 20%에서 30%까지 거론된다. 새로 선임된 임원 숫자를 감안하면 직장을 떠난 임원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다. “임원 세 명 중 한 명 이상은 회사를 나갔다”는 추측이 공공연하다. 이런 상황이니 자리를 지켰다면 발탁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를 담은 ‘유임 발탁’이 입소문을 탈 만도 하다.

‘유임 발탁’에는 승진이 무산된 직장인들의 냉소적·자조적 뉘앙스가 담겨 있다. 유임 발탁과 임원 숫자 줄이기는 중견 간부들에게 임원 승진 불발이라는 좌절로 이어진다. 직장인이 되기를 바라는 청년 구직자의 꿈은 ‘취업절벽’에 막히고, 직장인의 꿈인 임원 승진은 ‘유임 발탁’에 무산되고 있다. 꿈이 없으면 활력도, 역동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진취적·적극적·주도적으로 뭔가를 이뤄보고자 하는 노력은 크게 줄어든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만수산 드렁칡 심리’가 만연한다.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편승하려는 프리라이더 심리는 더욱 강해진다.

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둔 한국 사회에는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혁신과 창조는커녕 업그레이드조차 기대하기 힘들다. 조직 내 활력과 역동성은 태풍처럼 급격한 외부 여건 변화나 약육강식의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데 매우 중요한 인자다. 이들 인자는 자신들이 기여한 몫이 커지고 그에 대한 보상이 확실할 때 왕성해진다. 유임 발탁이 유행어로 확산되는 곳에서 발전은 공염불에 다름 아니다.

다시 '비즈니스 프렌들리'

발탁은 말 그대로 발탁인 사회가 돼야 한다. 크게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많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등장시켜 덩치를 키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산업 전반의 사업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스타트업의 대표적 인프라로 꼽히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은 언제 효력을 발휘할지 미지수다. 오죽하면 ‘개망신 3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을까. 공유경제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평가받아온 ‘타다’는 국회에서 발목을 잡혔다. 기업가 정신은 존중받지 못하고, 대기업은 협력업체에 갑질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국가 경영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대북 노동 복지 외교에 자리를 내줬고, 경제정책 컨트롤타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 등이 두드러지는 뉴노멀 시대다. 경제정책의 수장도 2%대 잠재성장률을 뉴노멀로 언급했다. 그렇다고 해도 유임은 유임이고, 발탁은 발탁이어야 정상적인 사회다. ‘유임 발탁’이 상당 기간 유행어로 자리매김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은 극소수의 우려에 그치기만 바랄 뿐이다.

kh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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