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문명' 앞세워 감시 강화하는 중국

입력 2019-12-12 18:33   수정 2019-12-13 00:07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 대도시 곳곳에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글자가 새겨진 플래카드와 포스터가 걸려 있다. 대부분은 ‘애국(愛國)’ ‘평등(平等)’ ‘부강(富强)’ 등 중국 공산당의 핵심 가치를 선전하는 문구로 채워져 있다. 이 중 외국인의 눈길을 끄는 것은 ‘문명(文明)’이란 단어다. 황하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중국에서 문명은 ‘교양’이나 ‘시민의식’이란 뜻으로 쓰인다.

중국에서 생활할 때 가장 위험한 일 중 하나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다. 녹색등이 켜져 있는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가는 차량이 많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차와 사람 중 누가 우선이냐’는 운전면허 시험 문제에 많은 응시자가 ‘차에 우선권이 있다’는 오답을 고를 정도다. 중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자녀들에게 “횡단보도를 건널 때 녹색등이어도 바로 움직이지 말고 중국인들이 건널 때 따라서 건너라”고 가르친다.

中, 낮은 시민의식에 몸살

아파트 단지와 공원, 대로변에서 목줄 없이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도 많다. 애완견의 배변을 치우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언론으로부터 ‘중국의 4대 발명품’ 중 하나로 불리며 각광받던 공유 자전거 업계가 위기를 맞은 것도 낮은 시민의식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공유 자전거를 아무 곳에나 세우는 것을 넘어 개인 자물쇠를 채워놓거나 집에 가져가 QR코드를 떼내고 개인 소유물처럼 사용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한때 130여 개에 달했던 중국 공유 자전거 업체는 현재 세 곳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집요하리만큼 시민들에게 ‘문명’을 강조한다. 상가와 공공장소에 있는 남성 화장실엔 어김없이 ‘한 걸음만 소변기 앞으로 다가오면 문명이 더 가까워진다(向前一小步 文明一大步)’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다. 마오쩌둥 전 주석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하면서 “경제와 문화 건설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중국인이 ‘불문명’이라 흉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명 강국 건설’을 역설한다.

감시 강화만으론 변화 어려워

하지만 중국인들의 시민의식은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낮은 시민의식이 국가 이미지를 훼손한다고 보고 칼을 꺼내들었다. 대도시 횡단보도마다 무단 횡단이나 신호 위반을 단속하기 위한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했다. 교통법규 위반자를 포착해 대형 스크린에 얼굴을 띄워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

중국 정부는 나아가 인공지능(AI)과 얼굴 인식,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14억 중국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국 전역에 얼굴 인식 기능을 갖춘 CCTV 2억 대가량을 설치해 3초 안에 신원을 구별해낸다. 내년엔 3억 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 국민 개개인에게 점수를 매겨 이를 기초로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사회신용제도도 내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공공질서와 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에겐 우대 혜택을 주고 이를 어긴 사람에겐 벌점을 부과해 기차나 항공기 이용을 금지하는 등 각종 제재를 가하는 방식이다.

중국 정부는 사회신용제도가 주요 2개국(G2)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시민의식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은 정작 국가 이미지를 갉아먹는 것은 국제사회의 규범과 법질서를 지키지 않는 중국 정부라며 사회신용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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