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런스 세즈노스키 "車 등장으로 마차 사라졌듯…AI 모르는 의사들 설자리 잃을 것"

입력 2019-12-23 17:22   수정 2019-12-24 01:37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세기의 대국을 벌인 게 불과 3년6개월 전 일이다. 당시 이 9단의 충격적인 패배만큼 생소했던 AI는 현재 세계 경제, 정치,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는 핵심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AI가 어디서 기원했으며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테런스 J 세즈노스키 미국 UC샌디에이고 교수가 쓴 《딥러닝 레볼루션(The Deep Learning Revolution)》(한국경제신문 출간)은 이런 의문에 명쾌한 답을 알려준다. 그는 지난 50여 년간 AI가 발전해온 궤적을 목격했고,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고 있다. 이 책에는 세계적인 AI 분야 석학들과 벌인 논쟁과 협력의 서사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한국어판(사진) 출간을 맞아 지난 18일 샌디에이고에 있는 소크생물학연구소 연구실에서 세즈노스키 교수를 만났다.


▷머신러닝(기계학습), 딥러닝 등 개념부터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머신러닝은 컴퓨터가 인간처럼 스스로 학습하도록 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1950년대부터 연구됐지만 여러 가지 기술적 한계로 상당 기간 구현되지 못했죠. 1980년대 들어 딥러닝 연구가 돌파구 역할을 했습니다. 딥러닝은 머신러닝의 한 연구분야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의 두뇌 활동을 모방한 학습 방법입니다. 아기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학습하는 것처럼 컴퓨터도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보고, 듣는 법을 익히게 되는 거죠.”

▷데이터로 학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인간은 한번 보기만 하면 컵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컴퓨터가 이렇게 컵을 인식하도록 하는 논리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뇌의 학습 방법과 관련한 연구가 시작된 배경이죠. 아기는 다양한 컵 이미지를 보며 컵이라는 개념을 알게 됩니다. 컴퓨터도 이런 과정을 통해 컵의 개념을 알게 되는 거죠.”

▷성인 어른의 지능을 100이라고 하면 현재 AI의 지능은 어느 수준입니까.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시각 분야는 인간의 능력에 거의 도달했다고 봅니다. 추론과 논리 영역은 ‘0~1’ 수준에 불과합니다. 현실 세계는 불확실성이 높고, 고차원적인 정보들이 존재하는 아날로그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0과 1로 이뤄진 이분법적인 디지털 세계입니다. 딥러닝은 이렇게 상이한 두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인간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는 로봇도 개발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인간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보고, 듣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알고리즘을 진화시켜왔습니다. 딥러닝을 포함한 AI의 역사는 기껏해야 50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로봇 ‘알투디투(R2D2)’처럼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기계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AI 기술이 정체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드웨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놀라운 속도로 혁신되고 있어요. 현재 컴퓨터의 정보처리 과정은 연산능력을 담당하는 CPU(중앙처리장치)와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로 나뉘어 있습니다. 정보가 CPU와 메모리를 오가는 과정에서 병목처럼 정체가 발생해 효율이 떨어지죠. 정보량이 많아질수록 전력 요구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내로라하는 반도체 업체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실리콘밸리 기반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세레브라스(Cerebras)는 최근 CPU의 코어(연산장치)와 메모리가 붙어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반도체칩 크기도 커졌지만 데이터 처리 속도는 기존 대비 수백만 배 빨라졌죠.”

▷책을 쓸 당시(2018년) 자율주행자동차의 기술 수준이 ‘평균적인 18세 청소년이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평가했는데요.

“(웃으면서) 그런 숫자들은 벌써 잊어버렸습니다. 자율주행차는 AI가 주도하는 주요 변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띕니다. 다만 자율주행차가 현실에서 상용화되려면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 거예요. 우선적으로 상용화될 분야가 자율주행 트럭입니다. 10년 이내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국에만 수백만 명의 트럭 운전자가 있어요. 트럭은 운전자의 작은 실수로 대형 사고를 초래합니다. 자율주행이 가능하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트럭 다음으로 택시, 일반 승용차 순으로 자율주행차가 확산될 거예요.”

▷많은 사람은 자율주행차가 위험할 것으로 봅니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어땠나요. 말을 타고 다니는 것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은 자동차를 매우 위험한 기술로 인식했습니다. 말보다 속도가 몇 배나 빨랐기 때문이죠.”

▷자율주행차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까요.

“현재 승용차의 하루평균 주행시간은 4%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6%의 시간은 어딘가 주차돼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도심의 주차장이 생산적인 목적으로 재활용될 수 있어요. 출퇴근길에 운전하며 소비하는 시간을 다른 목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기름을 연료로 쓰는 자동차도 사라질 겁니다.”

▷페이스북이 ‘데이터 전쟁’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페이스북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 개인정보를 많이 축적하고 있습니다. 친구, 가족, 지인들에 관한 방대한 정보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도 개인정보를 알고 있지만 분야가 한정돼 있어요. 당신이 무엇을 할지를 당신보다 페이스북이 더 잘 알게 되는 날이 올 겁니다.”

▷페이스북의 가상화폐 ‘리브라’는 성공할까요.

“국가별로 상이한 규제 등의 변수로 미래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핀테크(금융기술) 시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은 주목해야 합니다. 데이터를 활용한 신기술은 기존 산업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습니다. 광고 시장의 구글, 비디오 시장의 넷플릭스를 생각해보세요. 과거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업들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습니다. 금융 시장은 아직이에요. 환전을 하는 간단한 업무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런 시장에도 구글,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기업들이 나올 겁니다.”

▷한국에선 기득권의 반발로 혁신기술 도입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병원과 의사들은 더 적극적으로 AI를 받아들일 거예요. AI를 활용해 병을 더 잘 고치는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가 있다면 누구에게 치료를 받겠습니까.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와 같은 미국의 대형 병원은 이미 AI 기술을 진단과 진료 분야에 다양하게 활용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AI를 모르는 의사들은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룡처럼 사라질 거예요. 자동차가 대중화되고 나서 말을 이동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뒤 박사후 연구원(포스트 닥터) 때 전공을 생물학으로 바꿨습니다.

“당시엔 드문 사례였지만 지금 미국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죠. AI와 같은 어려운 주제의 학문을 배우려면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협력해야 합니다. AI의 성과는 대부분 인간의 뇌에 관한 연구에서 시작됐어요. 최근 미국에서 AI를 배우려는 대학생들은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동시에 공부합니다.”

▷서로 다른 학문 간 교류를 어떻게 촉진할 수 있을까요.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정부가 시작한 뇌 연구 프로젝트(브레인 이니셔티브)는 초기 5년 동안 서로 다른 전공의 연구팀 최소 두 곳이 파트너를 이뤄야 연구자금을 줬습니다.”

■ 세즈노스키 교수는…

AI 관련 눈문 500편 발표


테런스 J 세즈노스키 교수(72)는 현대 인공지능(AI) 연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꼽힌다. ‘딥러닝(심층학습)’ 분야의 거장이기도 하다.

딥러닝을 체계화한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컴퓨터과학부 교수 등 AI 분야 석학들과 교류하면서 현대 딥러닝 이론의 기초를 닦았다. 1985년 세즈노스키 교수가 힌튼 교수와 함께 발표한 논문 ‘볼츠만 머신의 학습 알고리즘’은 학계의 딥러닝 연구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AI 학계 최대 학술단체인 인공신경망학회(NeurIPS) 재단 이사장직을 1993년부터 맡고 있다. 저술 활동도 활발하다. 《딥러닝 레볼루션》을 포함해 총 15권의 책을 썼고 500편이 넘는 논문을 저술했다. 1989년 월간 학술저널인 ‘신경연산(Neural Computation)’을 공동 창간했으며 편집장을 맡고 있다.

△1947년 미국 클리블랜드 출생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물리학과 졸업
△프린스턴대 물리학 박사
△존스홉킨스대 바이오물리학 교수


샌디에이고=좌동욱 특파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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