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강남 불패' 끝내는 법

입력 2019-12-31 17:18   수정 2020-01-01 00:18

서울 강남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대체로 선망과 질투가 뒤섞여 있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선망은 ‘강남 입성’이 더 어려워진 데 대한 아쉬움으로, 질투는 강남 주택 소유자의 주머니가 더 두둑해진 데 대한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에 편승해 ‘보유세 폭탄’ 등의 초강력 조치를 내놓으며 ‘강남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강남은 주택 수요자들의 욕망이 집중된 곳이다. 최고의 학군이 있고, 좋은 직장이 가깝고, 각종 문화·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영동대로 주변 개발 등 부동산시장 호재가 적지 않다. 정부의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 폐지 조치는 학군이 우수하고 사교육 기관이 밀집한 강남 선호 현상을 더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강남 희소성' 줄이는 게 해결책

경제학에서 욕망의 강도는 희소성과 반비례한다.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달래려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주거나 대체재를 공급하는 게 최선이다. 욕망을 일시적으로 억누를 수는 있지만 원하는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원초적 본능까지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렇게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무시하고 부동산시장을 ‘이념’의 문제로 계속 접근한다면 앞으로도 ‘정부 실패’를 피하기 어렵다.

이념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지고지순한 가치에 맞춰 현실을 재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은 ‘문제(원인)’에 맞게 ‘답(해결)’을 도출하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해진 답에 문제를 꿰맞추는 것이다. 이들에게 집값 상승은 원인을 제대로 진단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박멸해야 할 대표적인 ‘불로(不勞)소득’일 뿐이다.

부동산시장을 이념의 문제로 접근하면 주된 정책이 근본 해결책인 ‘욕망 충족’이나 ‘욕망 대체’가 아니라 ‘욕망 억제’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악의 근원’인 강남 아파트 투기를 근절해야 집값이 잡힌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치적으로도 밑질 것이 없다. 정치적으로 재미를 보려면 그 대상이 소수여야 하고, 제3자의 동정을 유발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부자 동네인 강남 때리기는 제격이다.

'건축·교육 규제샌드박스' 검토해야

경제논리를 무시한 정치논리는 사람들을 잠시 현혹시킬 수 있지만 시장까지 속이지는 못한다. 전방위 세무조사, 대출 규제 등 고강도 규제에 시장이 잠시 움찔하기는 하겠지만 완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강남 불패(不敗)’가 ‘서울 불패’와 ‘수도권 불패’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 특성을 이해할 때 제대로 된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자주 쓰는 용어 중 하나인 ‘맞춤형 정책’도 시장을 인정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효과를 낼 수 있다.

강남의 희소성을 줄이려면 새해에는 적극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긴 안목에서 강남 편중을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재건축 층수·용적률 규제를 풀어 강남의 수직적 주거공간을 확장하고 강남을 대체하는 곳을 개발하는 방법밖에 없다. 낙후된 강북 옛 도심을 재정비해 강남·북 균형 개발에 나서야 한다.

수도권 교통 요지와 지방 주요 도시에 ‘건축·교육 규제 샌드박스’를 설치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봄 직하다. 이곳에서 분양가 상한제, 층수 제한, 용적률 제한, 임대주택 의무건축 등을 없애 중산층이 선호하는 고급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다. 이곳만이라도 자사고 폐지 정책에서 벗어나 우수 특목고를 유치하면 강남 수요의 상당 부분을 분산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원하는 ‘국토균형 개발’과 ‘지방 활성화’도 저절로 이뤄질 것이다.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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