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돌적인 언어로 아픈 사랑을 품다

입력 2020-01-08 17:07   수정 2020-01-09 00:33

올해 등단 21년째인 김민정 시인(사진)은 직설적이고 충격적인 초기 발표 시들의 이미지로 인해 그동안 ‘좀 불편하게 하는 시를 쓴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최근 내놓은 네 번째 시집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문학과지성사)도 이전 시집들과 마찬가지로 거칠고 자유분방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시집 제목부터 파격적으로 길다. 내용도 알쏭달쏭하다. 이 긴 제목에는 시인이 끈질기게 질문해온 시와 언어에 대한 고민이 숨어 있다. 그는 “문학을 향한 큰 열망과 욕심에 비해 문학 본령의 구멍은 늘 작아 자꾸 헤어지는 것 같았다”며 “헤어지는 중이라고 표현한 것 역시 헤어지는 와중이라는 자체가 ‘시의 존재감’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인은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시는 안 쓰고 수만 쓰는 시인들’이란 시에선 시인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어떤 시인은 “나 알죠? 내 시 몰라요? 모르겠는데요. 나를? 내 시를 모른다고?//왜 다 태어나서 이 고생일까”라며 주변 문인들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나는 뒤끝 짱 있음’이란 시에선 “환각은 있고 기대는 없음/환상은 있고 기대는 없음/기대는 있고 포옹은 없음/포옹은 있고 당신은 없음”이라며 ‘있음’과 ‘없음’이란 대구법으로 지난한 삶을 푸념하고 투덜거린다.

시집을 관통하는 화두는 ‘곡두’다. 수록된 모든 시엔 곡두에 번호를 매긴 부제가 달려 있다. 곡두는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환영’을 뜻한다. 그는 뒤표지 산문에 “화두는 곡두. 그러나 사랑은 나에게 언어를 주었다”고 적었다. 모든 시엔 함께 살고 있는데 미처 보지 못하고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허상 같은 세계 속 이웃들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고 언어로 연대해 보려는 사랑이 담겨 있다.

그간 많은 시에서 여성 문제를 다뤘던 그는 이번 시집에서 내러티브의 지평을 더 넓힌다. ‘나를 못 쓰게 하는 남의 이야기 셋’이란 시에선 네이멍구 출신 여성 마사지사의 목소리를 시인 특유의 언어로 들려준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깊게 바라보지 않았던 이웃과 국내 외국인노동자, 해외 여성들의 삶까지로 시선을 뻗는다. 거침없고 솔직한 언어 속에 이처럼 약하고 아픈 삶을 품는 사랑이 숨어 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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