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감사원장 "정부 주도 R&D '창조적 실패' 용인하는 감사시스템 구축하겠다"

입력 2020-01-15 19:18   수정 2020-01-16 02:05


최재형 감사원장은 지난 14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권력과 기업 간 ‘규제 카르텔’이 공고화되지 않도록 손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무원이 규제를 생산해서 지대(기득권)를 구축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최대한 감사 역량을 투입해 비위를 적발하고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국가 연구개발(R&D) 사업과 관련해서는 감사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했다. 최 원장은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안전하고 성공확률이 높은 R&D 과제만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감사원에 책임이 있다”며 “창조적인 과제 선정에 장애가 되는 국가 R&D 감독 자체를 감사하겠다”고 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들의 예비타당성 조사(예타)가 면제됐다. 선거철을 맞아 공직사회 기강이 흔들리고, 국가 예산이 선거용으로 쓰이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 원장=SOC 사업의 예타 면제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다만 대규모 SOC는 관심 분야이기 때문에 어떻게 집행되는지 관심을 갖고 보겠다. 선거철의 선심성 예산도 원래 취지와 달리 쓰이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공무원이 증원되면서 국가재정과 공공기관 재정에 악영향은 없는지도 잘 살피겠다.

▷김 교수=사업주가 임금을 체불할 경우 형사처벌되는 등 정부가 기업환경을 옥죄고 있다. 임금이 밀렸다고 감옥에 간다면 누가 기업을 일구겠나.

▷최 원장=기업 경영을 형사적으로 규제하고 있다는 문제점에 공감한다. 지나치게 형사 규제를 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건 당연한 결과다. 최대한 시장원리에 맡기는 게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형사처벌 문제는 입법사항이어서 감사적으로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관료들의 지대추구 행위가 심각하다. 관료는 규제를 통해 공기업의 독점권을 보장해주고, 공기업은 관료의 퇴직 후 자리를 마련해준다.

▷최 원장=구조적 문제여서 감사로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비리가 발견된다면 감사적으로 적발해 처리하겠다. 권력과 기업 간 카르텔이 공고화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김인철 성균관대 명예교수=기술을 갖고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는 공무원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최 원장=외국 투자자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공무원들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이라 생각한다. 공무원의 업무파악 능력은 물론 투자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는지 살피도록 하겠다.

▷안건준 한국벤처기업협회 회장=공무원 적극행정에 대한 면책 범위 확대를 제안한다. 특히 혁신정책 및 국가 R&D사업 분야는 면책 범위를 더 확대해야 한다.

▷최 원장=외부 공표는 하지 않고 있지만 특정 분야에 대해선 감사를 자제하고 있다. 혁신 생태계의 경우 감사 기준 자체가 없는 때가 많다. 그런 부분에 감사를 한다면 유사 규정을 가지고 억지로 적용해야 하는데, 그런 감사는 하면 안 된다는 게 확고한 방침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공무원의 ‘행위’보다는 정부 재정이 들어간 부분에 감사의 초점을 둬야 민간 부문의 활력을 채울 수 있다.

▷최 원장=감사원장에 부임하면서 감사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여러 제안을 했다. 확실한 방침은 혁신성장과 R&D의 발목을 잡는 감사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국민이 체감하기까지 시간은 걸린다. 그동안 쌓아온 업보의 시간이 길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행정서비스의 최종 소비자는 국민이다. 감사원이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전국 현장을 돌아본 적 있나.

▷최 원장=국민이 공직사회가 달라졌다고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감사원이 돼야 한다. 무조건 지적사항을 적발하고, 징계하는 감사 행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감사원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역량에 버거울 정도로 크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정부 R&D 사업이 ‘밑빠진 독’이란 소리를 수년째 듣고 있다. 실패해선 안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안전한 것만 선택한다.

▷최 원장=정부 R&D 사업 성공률이 95%에 달한다는 사실에 문외한인 나도 놀랐다. 감사원의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 개별 R&D사업을 감사하기보다는 R&D 감독 시스템을 점검해달라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연구자가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장애가 되는 부분이 없는지 감사하겠다.

▷송종국 한양대 특훈교수=감사원이 R&D 사업의 성공 여부에만 감사의 초점을 맞췄기 때문 아닌가.

▷최 원장=담당 공무원으로선 예산이 투입된 R&D 사업이 실패하면 업무집행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과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창조적인 R&D를 저해하는 감독 행태가 없는지 제대로 살피겠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공무원 역할이 대국민 서비스를 강화한다기보다는 점점 국민을 규제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최 원장=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초기에 법을 경직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은 사회상규상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억지로 문책하는 건 가급적 지양하고 있다. 부정청탁금지법 자체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는 데 공감한다. 법의 취지를 살리되 무리한 적용은 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

▷장석인 한국산업기술대 석좌교수=감사가 지적사항 위주로 진행돼 공무원 사회에선 감사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를 불명예스럽게 여긴다.

▷최 원장=지적 중심 감사가 아니라 공직사회 전반을 점검해주는 감사를 하겠다. 감사원과 공직사회가 공통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대전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정확히 감사한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는 것에 따라 감사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큰 정부가 되면서 모든 정책이나 행정 행위가 규제를 늘리는 쪽으로 가고 있다. 기업들이 투자하려고 해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사회공헌을 요구해 부담을 느끼는 때도 많다.

▷최 원장=신산업은 내버려두는 게 좋다는 말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 정부가 커지면 규제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 정부 정책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잘하는 지자체에는 포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수감사기관이 되면 감사를 면제해주는 제도가 있다. 감사원장 표창이 ‘싸구려’가 됐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적극적으로 모범사례를 발굴하겠다.

고은이/김소현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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