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규제 샌드박스, 행정 편의주의부터 걷어내야

입력 2020-01-19 17:38   수정 2020-01-20 00:15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성장의 성패는 규제개혁에 달려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나 아이디어도 규제에 막혀 사업화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규제 샌드박스’다. 지난 1년간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정부는 처리건수를 제시하며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또 다른 규제가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일부 성공사례에도 불구하고 제도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 배경에는 행정 편의주의, 책임회피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규제 신속확인, 임시허가, 실증특례 3종으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의 실적은 158건의 실증특례에 몰려있다. 임시허가는 21건에 불과하고 신속확인은 처리건수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지금 ‘타다’ 서비스는 위법 여부에 대해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정작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입장은 모호하다. 벤처업계는 처음에는 환영하던 정부가 지금은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사업 시행 초기 신속확인 제도를 통해 규제 여부를 명확히 했더라면 이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규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신속확인이나 임시허가는 공무원에게 부담스러운 제도다. 허용 후 문제가 생기면 책임 논란이 제기될 수 있어서다. 반면 실증특례는 결정을 미룬다는 점에서 그리 부담이 크지 않다. 실증기간도 2년으로 길다.

실증특례 요건도 지나치게 공무원 편의주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지규제에 대해 실증특례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규제가 모호하거나 불합리한 경우에도 실증특례를 받도록 한다는 점이다. 모호한 규제를 명확하게 해야 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불합리한 규제는 당연히 풀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실증특례를 받도록 함으로써 모호하거나 불합리한 규제를 정비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고 있다.

실증특례 설계 책임을 전적으로 기업에 지우는 것도 큰 문제다. 실증을 하면 그 혜택을 기업이 보는데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그리 간단치는 않다. 실증특례 결과를 보고 규제를 풀지는 공무원이 판단한다. 사업 시작 전에 규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지표가 설정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업 종료 후 바로 허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규제 샌드박스 원조국 영국에서는 규제 담당 공무원이 사업 설계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그런데 그간 정부 발표를 보면 사업 내용만 제시될 뿐 측정지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실증특례가 끝나고 또다시 실증특례를 신청하려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택시 손님이 같이 타는 동승 비즈니스 모델인 ‘반반택시’의 실증특례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별다른 문제 없이 승객의 요금을 낮추고 택시기사의 수입이 늘어나는 효과를 확인했다. 그렇다고 실증특례가 끝나면 규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당 업체는 정부와 협의를 거쳐 올초 허용 시간과 지역을 늘리는 실증특례를 다시 신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실증특례가 사실상 임시허가의 역할을 하면서 금지규제의 지속 여부를 실제로 검증한다는 실증특례 제도 본래의 취지는 점점 더 퇴색하고 있다.

지금처럼 모든 책임을 기업에 지우는 상황에서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성공시킬 수 없다. 기업의 신청을 처리한다는 소극적 태도는 곤란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기업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이런 시각이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정부는 규제의 타당성을 공무원이 입증해야 하는 규제 입증책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신속확인 제도 활성화가 시급하다. 모호하거나 불합리한 규제는 정부가 책임지고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향후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정부 의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신속확인 실적과 사례를 공개하는지 여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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