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 화백 "1980년대 뉴욕 이스트빌리지, 내 예술의 핏줄"

입력 2020-02-02 17:17   수정 2020-02-03 03:11

1980년대 미국 뉴욕 이스트빌리지는 실험예술의 용광로였다. 당시 마약과 범죄로 살벌한 동네였지만 임차료가 저렴하고 폐허가 된 건물이 많아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사회·정치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폭력과 차별로 가득한 현실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식을 예술로 펼쳐 보였다. ‘검은 피카소’ 장미셸 바스키아는 거리 뒷골목과 기차역 담벼락 등에 그래피티(낙서화)를 남기며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분출했다.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도 지하철에 그린 낙서화로 주목받았고, 데이비드 워나로위츠는 행위예술로 이름을 날렸다. 30대였던 최동열도 이스트빌리지의 중심에서 고단하고 처절한 현실을 동료 아티스트와 부대끼며 살아냈다. 베트남전쟁 참전 후 새로운 변화를 꿈꿨던 그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을 화폭에 쏟아냈다. 자유와 희망을 찾아 이스트빌리지로 떠난 청년은 이제 그 ‘반항의 유목지’를 초월해 21세기 현대인의 심리적 강박감을 풀어내려 캔버스를 붙들고 정진하는 중견 화가가 됐다.


‘한국의 고갱’으로 불리는 최 화백이 당시 이스트빌리지에서 겪은 경험과 영감을 서울 전시장으로 끌어냈다. 서울 이태원 인터아트채널에서 이달 18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최동열과 이스트빌리지 친구들’을 통해서다. ‘노마딕 라이프 인 뉴욕(Nomadic Life in NY)’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 40년간 작업한 유화, 밀랍, 도자기, 드로잉 등 40여 점을 펼쳐 보인다. 여기에 이스트빌리지에서 활동한 크래시, 데이즈, 마샤 쿠퍼, 제임스 롬버거의 작품도 함께 걸어 생존의 치열함이 기저에 깔린 삶과 직결된 예술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올해 69세인 최 화백은 이스트빌리지의 예술적 토양을 기반으로 산과 꽃, 누드, 도심 빌딩을 소재로 자연과 도시문명의 접점을 깊숙이 짚어왔다. 밖에서 안을 보는 동양화의 전형적 구도에서 벗어나 안에서 밖을 보는 구도를 통해 ‘안팎의 하모니즘’이란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는 다양한 생물 및 초목이 공존하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내재하는 원천적인 에너지에 주목한다. 그림에는 자연스럽게 구상과 추상이 교차한다. 등만 보인 누드엔 수줍음보다 당당함이 있고, 흰색과 원색을 대비한 화면엔 원시적이고 주술적인 기운이 감돈다. 그는 “단순히 웅장한 자연을 담아낸 풍경화에서 끝나지 않고 여인의 누드를 그려넣어 좀 더 신비롭고 장엄하게 느낄 수는 없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산이 예쁘고 둥근 데 비해 외국의 산들은 날카로움과 장엄함 그 자체”라며 “특히 히말라야의 깊숙한 산속에서는 스스로 강렬한 청년으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자연과 인간의 접점을 포착하는 최 화백의 작업에는 극적인 인생 경험이 녹아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민족대표 33인을 변호했던 국내 1호 변호사 최진이다. 할머니는 소설가 나도향의 누나이자 국내 최초의 피아니스트다. 최 화백은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로 고교를 건너 뛴 수재였다. 15세에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입학해 2학년 때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해병 첩보부대(HID)에 근무하며 전쟁의 잔인함을 체험했다. 22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공장 노동자, 유도와 태권도 사범, 바텐더 등을 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기도 했다.

‘글쟁이’의 꿈을 키우던 1977년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배경이 된 뉴올리언스의 풍광을 보러 갔다가 추상화가인 부인 로렌스를 만나 미술로 방향을 틀었다. 그림이 글보다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는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이스트빌리지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미국 화단에서 주목받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멕시코 유카탄 정글지대와 미국 서북부 지역, 중국 우루무치, 티베트, 네팔 등에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2년씩 머물며 작업했다. 최근에는 ‘미술 한류’를 개척하기 위한 아트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최 화백은 “삶이란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의미가 있게 마련”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미술은 내 인생의 ‘멜팅 포트’(용광로)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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