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윤석열 현상과 진중권 신드롬

입력 2020-02-03 09:31   수정 2020-02-03 10:21


혼란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작년 8월 조국 사태 이후 선거법과 공수처, 하명수사와 감찰 무마, 검찰 물갈이 인사 등 청와대가 기획·연출한 뉴스들로 국민은 하루에도 몇번씩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까지 퍼져 더욱 스산해진 요즘이다. 어디에 의지하고 무엇에 희망을 가져야 할 지 혼란스럽다고들 한다. 대한민국 국민 노릇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도 한다. 절로 읊조린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이런 기류는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34%)이 현 정권 들어 최저, 무당층(33%)은 최대였다. 민주당(-5%포인트)뿐 아니라 자유한국당(-1%포인트)도 떨어지고 무당층만 6%포인트 늘었다. 총선이 70여일 앞인데 유권자들은 마음 둘 곳을 잃어간다는 얘기다.

그럴수록 주목 받는 두 명의 뉴스메이커가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다. 이들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과 열광은 가히 '윤석열 현상', '진중권 신드롬'이다.

윤석열 현상은 이미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우직한 수사로 중도보수층에서 상당히 부풀어 올라 있었다. 여기에다 지난주 세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가 불을 질렀다.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윤석열을 2위(10.8%)에 올려 놓은 것이다. 이낙연 전 총리(32.2%)와는 거리가 멀지만, 황교안 한국당 대표(10.1%)를 단숨에 앞질렀다. 정치권은 화들짝 놀라고, 청와대는 불편해 한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가정법이 주말 모임의 화제가 됐다. 윤 총장이 "대선후보군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지만 대중의 관심이 쉽게 식을 것 같지 않다.

진중권 신드롬은 어느덧 '국민 엔터테인먼트'가 돼간다. 좌충우돌, 촌철살인, 시의적절로 공격 대상의 뼈를 때리는 모습에 대중은 열광한다. 진중권의 페이스북은 기자들의 '핫플레이스'가 됐고, 지리멸렬한 야권 통합에 실망한 보수우파들은 "진중권 한 명이 제1야당 108명보다 낫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진중권은 하루에도 몇건씩 내공 만랩(최대 레벨)의 '모두까기'를 시전한다. 보수는 물론 중도층도 그의 한마디한마디에 묵은 체증이 내려가고, '오늘은 또 누가 터질까' 기다려진다고 한다.

진중권의 독설이야 본래 유명했지만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것은 연초 TV토론에서 입으로는 난공불락 같던 유시민을 KO시키면서다. 그는 유시민의 유튜브 알릴레오에 대해 "판타지 싫어해서 안 본다"고 저격했다. 과거 '마이크는 유시민, 키보드는 진중권'이라던 세평은 '확실한 세대 교체'로 바뀌었다. 말발 센 좌파 진영 누구라도 진중권과 일합을 겨루고 나면 다시 맞설 생각이 사라지는 모양이다. 입을 다문 이들이 많다. 대신 '배신자'니, '관종'이니 하는 뒷담화만 무성하다. '내버려두고 관심 끊는 게 낫다'는 정신승리도 엿보인다.

왜 대중은 지금 윤석열과 진중권에 열광할까. 그럴 만한 요인을 몇가지 추려봤다.

①혼자 싸운다=관중은 소수, 약자를 응원한다. 교수직을 버린 진중권은 말할 것도 없고, 윤석열도 수족이 다 잘려 단기필마나 다름 없다. 둘에게서 장판교의 장비, 오관참장의 관우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②성역이 없다=진중권은 싸움 상대로 정치권력, 행정·사법권력, 문화권력, 대중권력을 가리지 않는다. VIP(대통령)부터 얼굴 없는 맹목 추종자들까지 예외가 없다. 건드릴 수 없을 것 같던 대상을 정면으로 건드리고, 오만한 권력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만드는 데서 대중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윤석열도 청와대 핵심 전·현직 참모들을 죄다 기소하고 있다. 여태껏 이런 검찰이 있었던가.

③이해가 쉽다=윤석열이 국민에 각인된 것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한마디였다. 그 소신을 지금 행동으로 입증하는 언행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진중권의 비유와 수사, 풍자와 냉소는 기존 미디어의 금기를 뛰어넘어 목표를 초정밀 타격한다. 그동안 끓는 분노를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던 대중들은 연신 무릎을 친다. "법 아래로 내려오라" "참 저렴하게 산다" 같은 독설을 대신할 말이 뭐가 있을까.

④상식을 말한다=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이 의심하고 비판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비리 백화점 같은 부부에게 '조국 수호, 정경심 사랑해요'를 외치는 집단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은 본인의 윤리관, 판단능력을 의심했다. 그런데 윤석열과 진중권이 아무 문제 없다고 인증해주고 있다.

⑤멘탈갑이다=서슬 퍼런 정권과 맹목적 지지자들의 어떠한 압력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오히려 눈 깜짝 하는 순간, 대중의 응원 열기가 확 식을 수 있다는 점을 본인들이 잘 안다.

⑥진영논리에서 자유롭다=윤석열은 전 정권 때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했고, 현 정권에선 권력비리와 남용을 수사중이다. 좌우 이념과 무관하게 '나쁜 놈' 잡는 검찰이 검찰다운 일은 하는 것이다. 진중권은 '자기 편'이면 무슨 짓을 해도 감싸는 진영논리를 넘어 같은 편부터 깐다. 그는 여전히 좌파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내부고발자인 셈이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얘기하는데 달라진 건 당신들"이라고 한다. 지금은 좌파가 정권을 잡았으니 비판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그때는 우파를 더 세게 깔 것이다.

⑦손 볼 대상은 화수분이다=대중이 분노하고 비난할 만한 대상은 화수분처럼 나온다. 경험상 정권 말기로 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진중권의 '키보드 신공', 윤석열의 '수사 무공'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계속돼야 한다.

윤석열 현상, 진중권 신드롬은 청와대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 수뇌부에서 "감히, 명을 거역해"라고 윽박지를수록 윤석열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더 끓어오르고, 좌파 진영의 반성과 성찰이 없는 한 진중권의 독설은 더 날카로워질 것이다. 그게 문재인 정부의 딜레마다.

그렇다고 한국당도 '두 사람을 영입하자' 운운하며 김칫국 마실 때가 아니다. 이대로 가면 총선은 폭망이다. 공론장에 보수우파가 안 보이고, 좌파 간의 싸움만 남았다. 권력의 독선과 오만에 대해 국민 반감이 쌓이는데 전혀 반사이익이 없고 무당층만 늘어나는 이유다. 악플보다 더 힘든 게 무플이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국민들이 윤석열과 진중권을 지켜보며 그마나 위로 받고 있는게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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