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작품상까지 '기생충'…4관왕 이변, '로컬'을 벗다 [종합]

입력 2020-02-10 13:32   수정 2020-05-10 00:04


2020 아카데미 최대 이변은 '기생충'이었다.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2020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됐다. 비영어권 작품, '백인 오스카'라고 불렸던 아카데미에서 '기생충'이 주요부문 상인 각본상, 감독상 외에 국제영화상까지 4개 부문을 수상한 것.

한국 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출품을 시작으로 꾸준히 아카데미상에 도전했지만, 후보에 지명된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한국영화 101년 역사를 새로 쓴 것. 오스카를 거머쥔 영화 역시 '기생충'이 한국영화 사상 최초다.

첫 도전임에도 '기생충'은 오스카에서 4개의 트로피를 받으면서 2019년 최고의 영화였음을 입증했다.

'기생충'은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등 총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국제영화상 수상이 강력하게 거론돼 시상식 시작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봉준호 감독 뿐 아니라 송강호, 조여정, 최우식, 이선균, 박소담, 이정은, 한혜진, 박정훈 등 '기생충' 주요 배우들이 모두 참석해 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각본상 후보 한진원 작가, 미술상 후보 이하준 미술감독, 편집상 후보 양진모 편집감독, 작품상 후보 곽신애 바른손E&A 대표 등도 함께했다.

시작은 각본상이었다. 앞서 영국 아카데미에서도 각본상을 수상했던 '기생충'이었지만 그동안 아시아계 작가에게 각본상을 준 적이 없었던 오스카이기에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아시아계 작가가 각본상을 탄 것 역시 오스카 역사상 '기생충'이 최초다. 영어가 아닌 외국어 영화가 각본상을 수상한 것 역시 2003년 '그녀에게'의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기생충'은 '나이브스 아웃'(라이언 존슨), '결혼이야기'(노아 바움백), '1917'(샘 멘데스),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등 함께 후보에 오른 쟁쟁한 작품을 제치고 각본상 영예를 안았다.

역대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 처음으로 오른 아시아계 작가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1986) 각본을 쓴 파키스탄 출신 하니프 쿠레이시이다. 13년 뒤 인도 출신인 M. 나이트 샤말란이 '식스 센스'(1999)로 후보에 올랐다.

이어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 각본에 참여한 일본계 2세 아이리스 야마시타,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015)으로 피트 닥터 감독과 함께 지명된 필리핀계 로니 델 카르멘, 2017년 '빅식'에서 주연과 각본을 맡은 파키스탄 출신 쿠마일 난지아니가 후보에 지명됐으나 트로피를 받지는 못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날 각본을 함께 작업한 한진원 작가와 함께 무대에 올라 "감사하다"고 말했다. 봉준호는 "시나리오를 쓰는 건 고독한 작업"이라면서 "국가를 대표해서 시나리오를 쓰는 건 아니지만 이건 한국의 첫 오스카다. 고맙다"며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또 "영감을 준 아내에게 감사하다"며 "제 대사를 화면으로 옮겨준 배우들에게도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한진원 작가는 "할리우드가 있듯 한국엔 충무로라는 곳이 있다"며 "제 심장인 충무로 모든 영화 제작자와 스태프와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아카데미 감사하다"고 한국말로 소감을 전해 감격을 자아냈다.

국제영화상은 '기생충'의 수상이 일찌감치 점쳐졌던 부문이다.

국제영화상 후보로는 '페인 앤 글로리'(스페인), '레미제라블'(프랑스), '허니랜드'(북마케도니아), '코퍼스 크리스티'(폴란드)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 전초전으로 불리는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면서 시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기생충'은 이변없이 국제영화상을 수상했다. '기생충'이 호명되자 객석에서 모두 기립해 박수를 치는 장관을 연출했다.

봉준호 감독은 국제영화상 수상 후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영화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처음으로 바뀐 이름으로 상을 받게 돼 감사하다"며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오스카가 추구하는 가치에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함께 만든 배우 스태프가 여기 와 있다"며 송강호부터 호명을 했다. 봉준호 감독의 소개에 배우들이 기립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감독상은 봉준호 감독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국제영화상 수상하고 오늘 할 일 끝났구나 싶었다"며 "너무 감사하다"면서 소감을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어릴 때 영화 공부할 때 가슴에 새긴 말이 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이라는 것이라는 말을 책에서 읽었다"며 "그 말은 마틴 스콜세지가 한 말이었다"며 소감을 말했다. 이에 마틴 스콜세지는 고마움을 드러냈고,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마틴 스콜세지는 '아이리시맨'으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 감독상 경합을 벌인 인물이다. 마틴 스콜세지 외에 '1917' 샘 멘데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등 할리우드 거장들이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봉 감독은 "제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를 보며 공부했던 사람인데,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같이 후보에 오른 감독 모두 제가 존경한다"며 "오스카가 허락만 한다면 텍사스 전기 톱으로 잘라서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고 유머러스한 소감으로 마무리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계 감독이 수상한 건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이 유일하다. 이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로 오스카를 차지했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감독만 아시아계일 뿐 할리우드의 자본과 배우들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였다는 점에서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의 성과는 남다르다는 평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꽃으로 불리는 작품상까지 '기생충'의 차지였다. 외국어로 된 작품이 아카데미에서 최고 상인 작품상을 받은 건 '기생충'이 최초다.

'기생충' 제작을 담당한 곽신애 바른손 대표는 "상상도 해본적이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져서 너무 좋고 기쁘다"며 지금 이 순간에 뭔가 굉장히 의미있고 상징적인, 그리고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여진 기분이 든다"면서 감격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어 "이러한 결정을 해주신 아카데미 위원 분들의 선택에 감사하다"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기생충' 투자배급을 담당한 이미경 CJ 부회장은 "이 영화를 사랑해주고 지지해준, 참여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며 "저희의 꿈을 만들기 위해 항상 지원해준 분들 덕분에 불가능한 꿈을 이루게 됐다"고 감격을 표현했다.

또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한국 영화를 보러와주신 모든 분들이 보내준 의견 덕분에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라며 "여러분들이 주신 의견 덕분에 우린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여러분이 있었기에 한국 영화가 여기에 올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생충'은 '포드V페라리' 제임스 맨골스, '아이리시맨' 마틴 스콜세지, '조조래빗' 타이카 와이티티, '조커' 토드 필립스,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 '결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 '1917' 샘 멘데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와 함께 작품상을 놓고 경합을 펼쳤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른 아시아계 영화인은 '기생충' 곽신애 바른손E&A 대표를 비롯해 5명이다. 1986년 인도계 영국인 이스마일 머천트가 '전망 좋은 방'으로 이름을 올렸고, 1990년 홍콩 출신 키트먼 호'가 '7월 4일생', 1992년 'JFK'로 후보로 거론됐다. 또 1997년엔 '제리 맥과이어'로 일본계 미국인 리처드 사카이, '와호장룡'과 '라이프 오브 파이' 이안 감독도 2001년과 2006년 각각 노미네이트됐지만 모두 수상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하지만 기존에 후보에 오른 작품은 모두 할리우드 자본이 들어간 작품. 배우는 물론 자본과 언어까지 모두 할리우드와 무관한 작품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생충'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다.

'기생충'은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시작 전부터 이변의 주인공으로 꼽혀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1991년 데뷔 이후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했음에도 2016년에 오스카를 거머쥐었을 정도로 보수적인 아카데미에서 영어도 사용하지 않는 외국 영화가 '기생충'만큼 주목받은 적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오스카는 로컬"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도발이 통했다는 반응도 있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10월 미국 매체 '벌처'와 인터뷰에서 "한국영화는 지난 20년 동안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왜 단 한작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했냐"는 질문에 "오스카는 로컬(지역 시상식)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날 인터뷰는 올해 칸 국제영화제 최고 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미국 개봉을 앞두고 진행됐다. 봉준호 감독의 '쿨'한 답변에 미국 내에선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미국 네티즌들은 "맞는 말인데 생소하고, 충격적"이라는 모습이다. "미국 영화 산업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다", "맞다. 오스카는 칸, 베니스와 같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로컬이다", "오스카는 지역 축제치고 꽤 괜찮은 시상식이고, '로컬'은 그 시상식에 대한 완벽한 요약"이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1929년 시작돼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영화 시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이 영화 산업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아카데미 시상식 트로피인 '오스카' 역시 힘을 얻었지만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는 미국만의 시상식"이라는 부분을 꼬집은 것.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기생충'이 오스카 활약은 작품성과 흥행성, 인지도와 화제도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

'기생충'은 미국의 주요 영화사이트인 IMDB, 로튼토마토 등에서 만족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여기에 미국내 흥행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11일 북미 지역에서 개봉한 '기생충'은 9일 기준 박스오피스모조 집계에서 15위에 이름을 올렸다.

외신들도 '기생충'이 작품상 수상을 기대했다. CNN은 "지난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가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수상에 그치고 작품상이 '그린북'에 돌아간 건 넷플릭스 영화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기생충'은 넷플릭스 영화가 아니며, 제 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기에 '로마' 보다 아카데미 수상에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기생충'은 아카데미 이후 드라마로도 제작 돼 북미 신드롬을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1월 미국 현지 매체들은 "미국 케이블 채널 HBO가 넷플릭스와 치열한 입찰 경쟁을 벌인 끝에 영화 '기생충' TV시리즈 제작 계약을 따냈다"고 보도했다. HBO가 제작할 드라마 판 '기생충'은 영화의 후속작일지, 영어 리메이크작이 될 지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기생충'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봉준호 감독이 제작 총괄로도 참여할 것으로 알려져 어떤 형태의 드라마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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