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록 메트라이프생명 사장 "리더는 직원 능력 증폭시키는 프리즘 역할 해야"

입력 2020-02-11 17:27   수정 2020-02-12 02:32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번엔, 살면서 겪은 가장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주실래요?”

송영록 메트라이프생명 사장(52)이 채용면접 막판에 꼭 던지는 질문이다. “재미있는 얘기요?” 면접자들은 대부분 당황한다. 송 사장은 “사람의 진짜 면모는 자신의 경험을 자신만의 리듬으로 전달하는 스토리텔링 과정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직원들이 올린 보고서도 ‘OO 추진전략’ ‘O개년 계획’ 같은 건 바로 퇴짜다. 연필로 끄적인 메모지 한 장이어도, 왜 이런 아이디어가 필요한지 풀어내야 한다.

금융업 중에서도 숫자 많고 복잡하기로 소문난 분야가 보험이다. 송 사장은 수학을 전공한 회계사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하지만 그는 숫자에 함몰되는 경영을 가장 경계한다. 24개 생명보험회사가 치열하게 싸우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논리’가 아니라 ‘스토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게 송 사장의 지론이다.


좋은 조직문화는 불황을 뚫는다

메트라이프생명은 미국계 금융그룹 메트라이프의 한국법인이다. 국내 생명보험산업은 저성장·저금리·저출산의 ‘3저 위기’에 빠져 있다. 하지만 지난해 메트라이프는 전년 대비 17%(연환산 초회보험료 기준) 성장해 이런 말을 무색하게 했다. 송 사장은 1993년 이 회사 전신인 코오롱메트라이프 계리팀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세동·한영·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하다 2007년 메트라이프의 재무 담당 임원으로 영입돼 친정에 복귀했다. 2016년 최고재무책임자(CFO), 2018년 9월에는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본사에서 파견한 외국인이 한국법인 대표를 맡던 관행이 깨졌다.

송 사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정은 전국 90개 지점을 돌며 3000여 명의 설계사와 만나는 것이다. 아침 회의부터 저녁 뒤풀이까지 참석하는 게 철칙이다. 외국인 사장들은 설계사를 만나도 통역이 필요해 분위기가 모호해지기 일쑤였다. 송 사장은 식당을 통째로 빌려 지점 식구들과 소주잔을 화끈하게 주고받은 뒤 KTX 막차로 복귀한다. 달변에다 소주 두 병도 너끈한 송 사장 특유의 친화력이 발휘되는 때다.

지방 설계사들이 쏟아내는 “경쟁사에 있는 상품이 우리만 없다” “본사에서 왜 OO를 지원해주지 않느냐”는 등의 거침 없는 요구를 꼼꼼히 기록해 둔다. 호남의 한 지점은 “실적을 두 배로 올리면 크게 쏘겠다던 약속을 지키라”며 송 사장을 ‘협박’하기도 했다. 송 사장은 기꺼이 내려가 100여 명에게 술과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그는 메트라이프의 강점으로 “설계사들의 조직문화가 좋은 것”을 꼽았다. 전부 개인사업자이니 서로 도울 의무가 없는데도, 선배가 후배를 끌어주고 함께 모여 공부하는 돈독한 문화가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전문성 있고 점잖은 이미지’로 통하는 메트라이프 설계사들의 장점을 살려 3.8%인 점유율을 5%대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하던 대로’는 싫다, ‘하기 나름’이다

‘스토리광’인 그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는 책은 38권짜리 일본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런 소설에 나오는 영웅호걸처럼 선 굵고 시원시원한 리더십이 송 사장의 특징이라고 직원들은 귀띔했다. “티나게 아부하는 직원은 티나게 싫어하세요.”

예전에는 외국인 사장들에게 직언하기로 유명했다. 회의실에서 임원끼리 와인파티를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직원들이 보기에 안 좋다. 한국 문화를 감안해 달라”고 딱 자르는 식이었다.

메트라이프 직원 사이에는 송 사장과 대화할 때 써선 안 되는 몇 가지 금기어가 있다. ‘원래’ ‘하던 대로’ ‘본사 지침에 따라’ 같은 것들이다. 송 사장은 “리더는 조직원들이 가진 능력과 아이디어를 더 크게 증폭시키는 프리즘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보험사가 같은 상품으로 같은 소비자층을 공략하는 상황에서 조직문화가 ‘원래 하던 대로’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는 것이다.

송 사장은 CEO를 맡은 이후 사장실 소파와 사장 전용 엘리베이터를 없앴다. 대신 탁자를 들여놓고 실무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늘렸다. 분기마다 열리는 타운홀 미팅은 실적 목표를 하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직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으로 바꿨다. 암과 싸우는 꼬마에게 보험금을 주면서 함께 울었다는 보험금지급팀 직원의 사연, 소비자의 불만과 항의를 최전선에서 받아내는 콜센터 직원들의 경험담 등이 오갔다. “불편한 질문도 좋으니 마음껏 얘기하라”는 취지로 만든 사내 전산망의 익명 게시판 ‘톡 투 CEO’에도 온갖 의견이 올라온다. “커피머신 바꿔달라”는 민원부터 “OO 상품의 경쟁력이 타사보다 떨어지니 이렇게 개편하자”는 제안까지 각양각색이다.

한국법인 성공사례, 해외에서 배워가

송 사장은 “5~10년 뒤에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생명보험사가 15개 안팎으로 정리될 것으로 본다”며 “대기업 계열, 금융지주 계열 등과 차별화하려면 메트라이프만의 색깔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자회사 메트라이프금융서비스는 이런 역발상이 잘 들어맞은 사례다. 이곳은 보험 판매를 전담하는 법인대리점(GA)이다. 다른 생명보험사에도 비슷한 자회사가 있지만 저성과자나 퇴직자를 보내는 용도로 쓰였던 게 사실이다. CFO 시절부터 메트라이프금융서비스 설립을 주도한 송 사장은 “할 거면 제대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본사에서 가장 뛰어난 80명을 투입해 설계사 채용과 육성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4년 만에 설계사 800명의 대형 GA로 성장했고, 생산성은 업계 최상위권(월납 초회보험료 50만원대 중반)으로 개선됐다. 보험업계에서 GA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지는 가운데 자체 GA를 통해 성공한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송 사장은 보험산업의 미래가 어둡다는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작년에 일본 자동차 판매가 3년 만에 줄었는데 렉서스는 오히려 13% 늘었어요. 백화점이 안된다고들 하는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연 매출 2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시장은 어려울 수 있지만, 결국 조직이 하기 나름인 거죠.” 올초에는 메트라이프 일본법인 직원들이 한국법인 GA의 성공사례를 공부하고 돌아갔다. 한국은 메트라이프의 40여 개 진출국 중 5~6위를 지키고 있다.

■ 송영록 메트라이프생명 사장

△1968년 대구 출생
△1986년 대구 성광고 졸업
△1994년 서울대 수학과 졸업
△1993년 코오롱메트라이프 계리팀
△1997년 세동회계법인 회계사
△1999년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2002년 한영회계법인 회계사
△2005년 삼일회계법인 시니어매니저
△2016년 메트라이프생명 CFO
△2018년 메트라이프생명 사장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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