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기생충'에 숟가락 얹은 정치권…제2의 봉준호 나오려면

입력 2020-02-15 08:38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덕에 세계의 이목이 한국 영화계로 쏠리고 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해 트로피 4개의 주인공이 됐다.

'기생충'은 지난해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부터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 수상행진을 이었고, 마지막으로 오스카 트로피까지 품에 안으며 유럽과 북미 등 전역에서 최고 권위상을 휩쓴 아시아의, 한국의 영화로 기록됐다.

시상식이 끝난 후 베버리힐스의 한 파티장에는 전세계에서 활약하는 영화계 인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할리우드 연예매체 배니티페어 주최로 열린 오스카 뒷풀이의 주인공은 단연 봉준호 감독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봉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배한 것처럼 오스카 뒷풀이에도 참석자의 관심은 봉 감독에게 쏠렸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봉준호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은 매우 혁신적인 한국 영화계에 걸맞는 보상"이라고 평가했다.

오스카 수상 후 '기생충'은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사흘째 4위를 유지하며 흥행 광풍을 잇고 있다. 박스오피스 집계 사이트 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은 12일(현지 시간) 47만5991달러의 매출을 추가해 4위를 지켰다. 북미 배급사 네온은 이번 주말부터 '기생충' 상영관을 1060개에서 2001개로 늘린다.

101년 한국역사의 쾌거로 평가받는 '기생충'은 하루 아침에 탄생한 작품이 아니었다.

2000년 초반 봉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장편 영화에 입봉했다.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비옥한 한국 영화의 토양이 있기에 차기작 '살인의 추억'이 나올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를, 이창동 감독은 '오아시스', '박하사탕'을 선보였다.

가디언은 "한국 영화계는 지난 20년간 지구상 가장 역동적이고 독창적인 영화산업을 이뤄왔다"며 그 증거로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을 거론했다.

2000년대 중후반 '천만 관객'을 노린 오락성을 띈 영화들이 등장하면서 혁신은 설 자리를 잃었었다.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외에는 해외에서 주목하는 감독도 없었다.


'포스트 봉준호'를 바라는 업계의 바람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양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제2의 봉준호가 나오려면 개인의 재능과 창의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체계적 지원과 대기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흥행 실패를 피하려고 '천만' 흥행 공식에 인기 배우 캐스팅에만 의존하는 행태는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봉준호의 기세를 이어 신진 감독들이 모습을 기량을 펼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은 윤예정과 한예리의 할리우드 진출작인 '미나리'로 제36회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1980년대 미 아칸소주(州) 농장으로 건너간 한인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현지에서는 "이민자들의 속사정과 드라마를 살린 담백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플랜B가 제작해 화제가 됐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수상후 기자들을 만나 "선댄스 영화제에서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최고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며 "미국에 있는 한인들을 억지로 어떤 흐름으로 따지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많은 재능을 꽃피우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데뷔작 '벌새'로 스타로 떠오른 김보라 감독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36관왕을 달성하기도 했다.

영화 ‘벌새’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다룬 영화로, 어느날 갑자기 14세 은희(박지후 분)이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하며 그려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94년 당시 주인공과 같은 나이었던 김보라 감독은 “성수대교 사건이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통증이나 단절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 점이 공감을 해주신 것 같다”고 밝혔다.


영화 '파수꾼'으로 제32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가 주목한 비주얼텔러 윤성현 감독의 신작 '사냥의 시간'도 담금질을 끝내고 관객 맞이에 나서고 있다.

'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들과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간의 숨막히는 사냥의 시간을 담아낸 추격 스릴러다. 이번 작품은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 등이 의기투합했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 최초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초청돼 오는 22일 오후 3시40분(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프리미어 상영회도 개최한다.

정치권에서도 '기생충' 4관왕을 의식한 듯 영화 산업 육성을 위한 계획을 쏟아내고 잇는 상황이다.

강요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구가 봉 감독의 고향인 만큼 영화를 대구의 아이콘으로 살려야 한다"면서 "봉준호 영화 박물관을 건립해 세계적 관광 메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규환, 곽상도 의원 역시 '고향 사람' 봉 감독을 언급하며 영화 산업 확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봉 감독과 '기생충' 출연 배우인 송강호는 전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바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사들에게 이제 숟가락을 얹으려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당의 축하가 뻔뻔함인지 진심인지 모르겠다며 비꼬았다.

유상진 정의당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은 이번 국면에 대해 할 말이 하나밖에 없다"며 "지난 정권에서 저질렀던 숱한 핍박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도 '제2의 봉준호' 만들기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김용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독립예술영화인들과 간담회를 열고 독립예술영화 분야의 저력이 있기에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갈채를 받게 됐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우리 국민들과 독립예술영화의 접점을 확대하는 데 힘쓰면서 제작 환경을 개선하는 데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봉 감독이 다녔던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영화진흥위원회도 "'기생충'과 같은 창의적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지원을 강화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 교육과정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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