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법조인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라

입력 2020-02-20 18:40   수정 2020-02-21 00:19

‘비즈니스 천국’을 꿈꿨던 미국의 건국자들은 의회를 다양한 사업에 종사하다가 잠시 쉬고 싶은 사람들로 채우고 싶어 했다. 경제활동에 종사해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상·하원 의원이 되고 임기를 다하면 다시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는 모델이다.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사업과 혁신을 이해해야 진짜 비즈니스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는 《대번영의 조건》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 의회에서 로펌 출신에 비해 기업에서 일을 해 본 의원이 줄어들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래도 미국은 여전히 부럽다. 우리 국회에서는 가물에 콩 나듯 한다는 창업가 또는 경영자 출신 의원이 미국 상원에서는 4명 가운데 1명이라는 통계가 있다.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진입장벽이 낮은 데다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경우가 많다는 점도 한국과는 다르다. 안 된다는 것 말고는 다 되는, 이른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의 법체계도 경제의 ‘역동성’을 떠받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대 국회에서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인 출신은 49명으로 전체 의원의 16.6%다. 6명 중 1명꼴이다. 17대 54명(18.0%), 18대 59명(20.4%), 19대 42명(14.3%)을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법조 국회’가 아예 고착화된 듯하다.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에서도 법조인 예비후보가 정치권의 영입 경쟁 속에 벌써 150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여·야 모두 ‘법조당’이 될 판이다.

법조인이 국회의원이 되면 입법 과정에서 법률적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다. 국회가 시대정신과 미래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과잉 입법’으로 치달으면서 법률지식의 기술적 남용이 어떤 폐해를 초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는 사라지고 툭하면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동물 국회’ ‘식물 국회’ ‘무생물 국회’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신사업과 혁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 지식, 입법적 상상력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법 지식은 ‘과잉 규제’로 질주하기 십상이다. 미국처럼 네거티브 규제 방식의 법체계가 아니라, 되는 것만 적시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의 대륙법 체계에서는 특히 그렇다. 국회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규제 입법 수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게 이를 말해준다.

한국에서 국회는 부동산을 압도하는 최고 ‘지대(rent)’를 구가하는 영역이 된 지 오래다. 지대에 익숙한 법조인들은 ‘그들만의 카르텔’ 구축으로 유명하다. 가끔 드러나는 법조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런 법조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더 큰 지대를 보장하는 정치권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치권력은 그들대로 무슨 물밑 거래를 했는지 법조인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치권력과 법조인 간 카르텔 동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혁신을 죽이는 카르텔이야말로 불공정의 상징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창업과 벤처가 활성화되려야 될 수 없다.

국가혁신시스템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국에서 혁신의 가장 큰 적(敵)은 정치”라고 토로한다. 미래에 대한 할인율이 극도로 높아 현재의 표에만 혈안이 된 정치문화, 다양성·관용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정치문화에서 혁신은 불가능하다. 법조 정치가 이런 후진적 정치문화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혁신성장이 절박하다는 지금, 대통령도 제1 야당 대표도 법조인 출신이다. 정치 혁신을 위해 걷어내야 할 대상은 자기 손으로 돈 한 번 벌어본 적 없는 정치인, 반(反)기업 운동을 업(業)으로 해온 정치인만이 아닐 것이다. “‘타다’ 서비스는 불법 범죄 행위로 즉시 이재웅 쏘카 대표를 구속 수사하라”고 가장 큰 목소리로 주장했던 의원은 검사 출신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법조인들은 이제 그만 제자리로 돌아가라.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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