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단재 신채호의 '直筆정신' 환생하길

입력 2020-02-19 18:28   수정 2020-02-20 00:11

단재(丹齋), 일편단생(一片丹生)으로 자신의 호를 선택한 신채호. 그는 1936년 2월 21일, 원조선 고구려 발해의 영토, 독립군들의 전장, 일본이 지배한 ‘만주국’,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만주의 뤼순(旅順) 감옥에서 모진 고초를 겪다가 순국했다.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었다. 사상가가 아니었고, 언론인이 아니었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을 다 포함한 독립운동가였다. 안재홍은 신채호의 《조선사》 권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 단재는 구한말에 낳은 천재적 사학자요, 또 열렬한 독립운동자이다.”

그는 20대에 《의(이)태리건국 삼걸전》을 번역했고, ‘을지문덕’ ‘이순신’ ‘최영’을 선택해 영웅전을 출판했다. 1908년 후반에는 근대 역사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독사신론(讀史新論)’을 연재했다. 단재는 《이순신 열전》에서 “사필(史筆)이 강하여야 민족이 강하며, 사필(史筆)이 무(武)하여야 민족이 무(武)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채호는 중국으로 망명해 블라디보스토크, 상하이, 베이징을 오고가면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1914년에는 고구려의 첫 수도로 알려진 환인에 대종교가 세운 동창학교에서 학생(독립군)들에게 한국사를 강의하면서 고대사 연구에 매진했다. 근처인 지안(集安) 등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고 백두산도 방문했다. 다시 베이징에서 의열단장인 김원봉을 만나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한다. 이 무렵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은 뤼순 감옥에 갇혀있을 때 서울에서 《조선사연구초》로 출판됐다. 《조선상고문화사》가 출판됐으며, 단재는 결국 무정부주의 운동의 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체포됐다. 그리고 감옥에서 1931년부터 《조선상고사(조선사)》를 집필했다.

한국 근대 역사학은 일본 제국주의의 책략으로 ‘객관성과 가치중립적’이라는 미사여구로 위장한 ‘몰가치성’을 역사학의 본령으로 삼았다. 그리고 독립 이후 분단상황이 계속되자 남과 북에서 잊혀지고, 은폐됐으며, 심지어는 왜곡당하기까지 했다. 역사학계는 단재를 비판하면서 그의 민족주의 사상이 너무 강해서 역사가 객관성을 잃었고, 심지어는 국수주의자로서 사실 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들도 했다.

정말 그럴까? 그는 중국과 일본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맹종하지 않았다. 역사는 물론이고 전통학문과 종교, 문화, 문학, 역사철학,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사상을 섭렵했고, 문헌사학, 고고학, 민속학, 종교학, 문학, 철학, 사회학 등을 도입해 연구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독립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실질적인 답사를 하면서 우리 고대사를 연구했다. 그는 그때까지, 심지어는 최근까지도 역사학계가 다루지 못했거나 회피했던, 고대사의 핵심적이고 예민한 쟁점들을 다뤘고 자기주장을 펼쳤다. 역사이론과 역사학의 본질 등 사관의 문제, 기자조선설의 부정, 한사군의 위치와 성격문제, 고조선의 영토와 단군 연구, 백제의 해외경략설, 일본열도 진출설, 발해의 영토와 남북국시대론 등은 그가 시작한 주제들이다.

그가 순국한 날에 후학인 난 또 한 번 묻는다. 어떤 지식인이 단재처럼 독립군으로 풍찬노숙하며, 감옥에서 엄청나게 많은 역사책, 역사평론, 역사소설, 역사시 등을 집필했는가? 어떤 지식인이 단재만큼 다양한 분야의 저서와 글을 읽었으며, 고전은 물론 서양학문에도 박식했고, 그것을 역사연구에 도입했는가? 어떤 역사학자가 단재만큼 역사현장을 폭넓게 답사했는가? 어떤 역사학자가 목숨을 걸고 역사를 연구했으며, 나라와 역사를 위하다가 결국 감옥에서 죽었는가?

역사가 망각되고, 진실이 혼란스러우며, 지식인들이 힘과 직심(直心)을 잃어가는 이 시절에 단재 선생을 추모하며, 그의 직필과 일갈이 다시 환생(多勿·다물 : ‘옛땅을 되찾음’이란 뜻의 고구려 말)하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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