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역대 최대 정책자금 풀렸지만 마냥 웃지 못하는 벤처캐피탈들

입력 2020-03-01 16:25   수정 2020-03-01 16:27

≪이 기사는 02월20일(15:0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17일 오후 벤처캐피탈(VC)업계가 술렁였다. 모태펀드 운용사인 한국벤처투자가 올해 출자 예산의 90%가 넘는 1조 1930억원을 연초 1차 정시 출자에 투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인 모태펀드에 앞서 지난 7일엔 금융위원회가 담당하는 산업은행과 한국성장금융은 8800억원 규모의 성장지원펀드 출자 계획을 내놨다. 이들 정책기관들이 핵심 출자자로 나서 조성하려는 펀드 규모만 5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총 벤처투자 규모(4조 3000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시장에 대규모 자금이 풀리면서 벤처투자업계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환영 이상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정책기관들의 출자가 연초에 몰리면서 펀드 결성을 위한 민간 자금 유치전은 여느 때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민간 벤처투자 시장이 따라가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책 자금 유치에 성공하고도 펀드 결성에 실패하는 운용사도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자금을 구하기 어려워진 운용사들이 펀드 결성을 위해 불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한 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무리한 투자에 나서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초 모태펀드 예산 90% 투입하는 정부

정부가 이처럼 대규모 벤처펀드 출자에 나선 것은 스타트업 등 벤처투자를 통한 ‘제2벤처붐’이 침체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해법이라는 인식에서다. 중기부는 2021년까지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의미하는 ‘유니콘’ 기업 20개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4월로 다가운 총선 핵심 공약으로 2022년까지 30개의 유니콘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매년 추가경정예산에 의존하며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모태펀드가 본예산으로만 역대 최대 예산을 확보해 이례적으로 연초에만 전체 예산의 90%를 쏟아붓게 된 배경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스케일업과 VC창업을 활성화해 투자 저변의 다양성을 확대하는데 올해 출자 사업의 주안점을 뒀다. 국내 벤처펀드 규모가 작아 토종 운용사들이 쿠팡, 배달의 민족 등 초대형 유니콘 기업을 키워놓고도 정작 투자 회수 단계의 과실은 외국계 투자자들이 가져간다는 문제 의식이 일자 올해만 2000억원 이상의 대형 벤처펀드 4곳을 만든다는 계획을 내놨다. 대형 벤처펀드의 기준으로 통하는 1000억원 이상의 펀드까지 합하면 최소 10개 이상의 대형 펀드가 한 해에 만들어지는 셈으로, 지난해 1000억원 이상의 대형 벤처펀드 결성 건수가 3건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변화다.

개인이나 조합이 출자해 만드는 개인투자조합이나 유한책임회사(LLC)가 출자를 받기 쉽도록 조건을 대폭 완화한 것도 이번 출자 계획의 특징이다. 한국벤처투자는 LLC의 경우 조합 결성이 되지 않았더라도 설립을 전제로 제안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투자조합 또한 운용 인력의 신규채용 등을 전제로 제안서를 받기로 했다. 즉 아직 설립이 되지 않은 운용사라도 대표 등 소수의 심사역의 투자 계획이나 경력만 보고 출자할 수 있다는 의미로, 우수한 인력의 창업을 유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연초에 펀드 계획을 발표해 민간 운용사들의 펀딩을 돕고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라며 “다양한 목적과 형태의 벤처펀드를 육성함으로써 국내 벤처투자의 저변을 넓힌다는 취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6개월 안에 민간에서 2조 조달 가능할까

하지만 정부의 ‘선의’에도 벤처투자업계는 마냥 웃지만은 못하는 상황이다. 늘어난 정책 자금의 확대폭을 민간 유한책임출자자(LP)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직원공제회, 행정공제회, 군인공제회 등 공제회 및 보험사 등 대형 LP들의 한해 벤처펀드 출자액은 많아야 연평균 500억원 수준이다. 수익성만큼 안정성을 중시하는 이들 기관들은 아직 벤처투자의 수익성보다 리스크(위험)에 가중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정부 예산으로 조성된 정책자금 비중은 60% 수준으로 절반을 넘어선다. 올해 중기부가 목표로 잡고 있는 벤처펀드 결성액이 4조 6000억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2조원 이상의 자금을 민간에서 조달해야 하는 셈이다.

실제 아직 출자 신청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임에도 시장 안팎에선 기대 이상의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모태펀드를 비롯한 정책 자금 출자사업은 3월 중 선정 과정을 거쳐 4월께 일제히 운용사를 결정할 계획이다. 펀드 결성 시한을 최대 6개월로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같은 시기에 정책자금을 출자 받은 수십곳 운용사가 펀딩 경쟁을 펼쳐야 하는 셈이다. 똑같은 정부 예산을 주머니로 갖고 있는만큼 모태펀드와 산은·한국성장금융 자금을 둘 다 유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한 대형 VC 임원은 “여전히 성장 중인 벤처투자 시장에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민간 시장이 적절히 따라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대한 정책자금은 한 시기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잠재적 부실을 키우고 시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이어 ”펀딩 실패는 운용사로선 치명적이기에 출자를 받은 운용사는 통상의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자금 조달이 어려울 경우 불리한 조건을 무릅쓰고 제2, 제3금융권에 손을 벌리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높은 자금 조달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리스크가 큰 투자에 매달릴 수 밖에 없어 벤처투자 시장의 건전성을 해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투자조합이나 LLC에 대한 기준을 대폭 낮춘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인다. 취지는 운용사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것이지만 현재도 업계가 전문성 있는 심사역 부족으로 운용사 간 인력 빼오기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많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VC 임원은 ”아직 설립이 안된 조합이라도 사람만 보고 돈을 맡긴다면 결국 그 대상은 대형 VC나 대기업 계열 투자사에서 경력이 있는 인력이 될 것“이라며 ”능력있는 심사역들이 자신들을 보고 출자가 이뤄진 펀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독립하는 사례가 늘어날 경우 시장 혼란이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 성적이 저조한 가운데 정부가 벤처투자 분야 ‘숫자 만들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연초 정책 자금 출자가 몰린 것은 결국 올해 안에 몇 조 시장을 조성하고 유니콘은 몇 개 키운다는 정부 구호에 맞춰진 것”이라며 “개인투자조합 등에 대한 기준을 대폭 낮춘 것도 올해 몇 개의 운용사가 새로 생겼다는 식의 전시 행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