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방역, 목적함수인가 제약조건인가?

입력 2020-03-08 18:45   수정 2020-03-09 00:19

프랑스에는 나폴레옹이 엘리트층 양성을 위해 설립한 소수정예의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 중 에콜 폴리테크니크라는 공과대학이 있다. 1794년 이 대학이 개교했을 때 당대 최고의 학자들로 교수진을 구성했는데 수학과 해석학 부문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를 영입했다. 라그랑주는 해석학뿐 아니라 정수론과 고전역학, 천체물리학까지 다방면에 걸쳐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경제학에서도 라그랑주가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모든 경제학 이론은 궁극적으로 ‘제약조건하의 최적화’ 문제로 요약되는데,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사람이 라그랑주다. 경제학과에 입학해 처음 배우는 수학적 기법이 ‘라그랑주 배수해법’이라고 부르는 이 해법이다.

이 제약조건하의 최적화 문제는 현실에서도 다방면에서 활용되는데, 그 적용에서 해를 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약조건과 목적함수의 설정이다. 제약조건은 반드시 만족해야 할 조건이기 때문에 목적함수에 우선한다. 다시 말해 제약조건은 이해가 상충할 수 있는 목적함수와 타협의 여지가 없는 조건이다.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이 활용하는 최대예상손실액(VaR: Value at Risk)이라는 위험측정치가 있다. 1990년대 초반 JP모간이 도입한 뒤 바젤협약에서 공식적으로 의무화됨에 따라 한국을 포함한 세계 모든 금융기관이 채택하고 있다. 쉽게 말해 VaR은 ‘최악의 손실값’이다. 최악의 경우는, 예를 들어 발생 확률이 2.5%인 이벤트로 설정한다. 모든 금융기관은 이 VaR값을 미리 설정한 값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 포트폴리오 관리의 예를 들자면 최대손실이 특정 금액 이하가 돼야 한다는 제약하에 기대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식이다. 따라서 제약조건인 VaR값을 미리 설정한 금액 이하로 만족하는 것이 우선이며 이는 기대수익률이란 목적함수와 타협의 여지가 없다. 즉 의사결정에서 여러 고려 사항이 있을 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약조건으로 설정한 뒤 나머지 고려사항을 목적함수에 둬야 하며, 금융기관의 경우 VaR로 측정되는 위험의 관리를 최우선시하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가 7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50명에 달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는 ‘신천지’라는 돌발 요인이 핵심적이지만 정부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기한 금융기관의 위험 관리 관행에 비춰 볼 때 가장 아쉬운 부분은 이 최적화 문제 설정에 있다고 본다. 중국에서 처음 코로나19가 발병해 확산될 무렵 정부는 그 대응에서 방역과 중국과의 외교 관계, 그리고 부진한 경제성장률 제고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려 사항이 복수일 경우 의사결정자는 가중치를 둬 판단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방역에 60%, 경제회복에 20%, 중국과의 관계 고려에 10% 등 여러 목적을 병렬화해 가중 평균화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인의 입국제한 조치에 소극적인 면이 있었고 발병률이 잦아들자 대통령이 “머잖아 종식될 테니 일상생활로 돌아가라”고 언급한 것도 회복 기미를 보이는 경기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가중평균식 목적함수 설정이 문제의 근원이었다. 이런 접근법은 일상적 상황이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전염병, 그것도 전염력이 극히 높은 전염병과 같은 초위기 상황이라면 방역을 제약조건으로 둔 뒤 나머지를 목적함수로 둬야 했다. 즉, 방역을 최우선으로 하고 이를 희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다른 요인들을 고려해야 했다. 국민의 안전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VaR 개념을 차용하면 방역은 최악의 경우를 설정해 관리하고 세부적으로 금융기관이 시행하는 ‘스트레스 테스트’와 같은 시나리오 분석도 병행해야 했다.

전염병은 화마와 같다. 불길이 잦아들더라도 작은 불씨만 남아 있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실제로 화마나 전염병이나 확률 과정(stochastic process)을 수리적으로 나타내면 매우 비슷하다. 이번 기회에 유사시 의사결정체계 및 전염병에 대한 국가방역체계를 다시 정립해 최소한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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