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맡기면 月 6만원…현실이 된 '이자생활자 안락사'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03-30 10:13   수정 2020-03-30 14:42


“이자는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하나의 과도기적 단계”라고 말한 사람은 거시경제학의 대부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1936년에 발간돼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그는 '이자생활자의 안락사'를 예견했다. 80여년 전 천재 경제학자의 주장에 대해 "이자가 사라진다고? 농담하느냐"고 생각한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제한 돈을 공급하는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 정책이 '뉴 노멀'이 되면서 '이자의 종말'은 현실이 됐다.

◆현실이 된 '이자의 종말'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이자는 지난 주를 거치며 일제히 0%대로 진입했다. 한국시티은행 정기예금은 0.7%, 우리은행 'WON모아예금'과 농협은행 '큰 만족실세예금'은 나란히 0,75%다. 국민은행의 간판상품 '수퍼정기예금' 이율도 지난 주부터 연 0.90%로 낮아졌다.

30년전 외환위기 직후 정기예금 금리가 연20%까지 치솟은 걸 기억하는 40·50대 이상이라면 듣고도 쉬 믿기 힘든 초저금리다. 격세지감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현기증 나는 변화다. 이러다 은행에 보관수수료를 내야하는, 말로만 듣던 '마이너스 금리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는 데로 생각에 미치면 당혹감은 더 커진다.

전세계적인 양적완화 흐름에 맞춰 한국은행이 '무제한 RP매입'을 선언한 것이 한국에서도 '제로금리 시대'가 열린 배경이다. 이자는 자본의 희소성에서 유래한 것인데,수요를 뛰어넘는 수준으 로 자본이 공급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봤던 케인스의 판단대로다. 케인스는 이자의 종말을 긍정적으로 봤다. '무이자가 성장을 자극할 것'이라던 주장을 펼친 독일의 아나키스트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1862~1930)을 높이 평가하며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과도하다 싶을 만큼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케인즈의 낙관과 달리 현실에선 '돈 값'의 추락이 반갑지 않은 쇼크다. 특히 저축한 돈으로 여생을 꾸리는 노년들에게는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1억원을 은행에 넣어둬도 이자가 연70만원,월6만원 선에 불과하다.이래서야 인간다운 여생을 설계하기는 힘들다. 노인들이야말로 '이자생활자 안락사'의 주인공인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 주는 두려움과 가능성

제로금리가 노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뜩이나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도 0%대 이자는 무력감을 안긴다. 창창한 인생을 설계할 목돈 만들기를 하늘의 별따기로 만들고 말았다. 저축으로 종자돈을 만들고 투자해 집을 장만하는 앞선 이들의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가장이자 우리 사회의 주력세대인 중·장년층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증권 부동산 등 냉정한 자산투자의 길로 내몰리는 상황은 인생살이의 위험을 가중시킬수 밖에 없다.

이자의 종말은 재테크의 어려움을 떠나 그 자체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안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의 증대라는 위험과 마주해야 한다. 금융업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 은행에서는 빠른 고객이탈이 감지되고 있고,보험사들은 대규모 역마진 부담에 초비상이다. 비금융업 일반기업들도 돈 값의 추락은 지금가지의 사업방식을 전반적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본질적인 변화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저금리는 부동산 주 식등 자산가격이 상승을 부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은 장담하기 어렵다.초저금리가 유동성을 구석구석 공급해 목적하는 투자 활성화로 이어질수 있을지,일본에서 본 것처럼 경제전체의 무력화를 부를지 알수 없다.

저금리의 원인이 심각한 부실의 축적에서 시작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제로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로 구세주역을 자임하고 나섰지만 부실의 심각성으로 볼때 성공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최종대부자 역할에 행여 실패한다면 세계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그 때 몰려들 변화는 예상하기도 감당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관에 빠질 필요는 없다. 모든 위기는 기회이듯, 준비하기에 따라서는 개인이든 국가든 무한한 가능성의 새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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