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슬쩍 경영진 책임 줄이는 기업들

입력 2020-04-05 17:49  

[04월 05일(17:49) '모바일한경'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모바일한경 기사 더보기 ▶



(김은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이사 책임 경감 조항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과거엔 이사의 배상 책임이 사실상 무한대로 규정돼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기업에 손해가 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 기업의 임원들이 거의 다 책임을 떠안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이 때문에 임원들이 적극적인 경영 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문제제기가 꾸준히 있었습니다. 기업 경영을 위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논리였죠.

그래서 2012년 4월부터 시행된 개정 상법에서는 이사 책임 경감 조항이 신설됐습니다. 이사의 책임을 최근 1년 간 받은 보수액의 6배(사외이사는 3배) 이내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한 금액에 대해서는 면제할 수 있도록 이사의 책임 제도를 개선한 겁니다. 물론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기업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는 제외이지만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장의 기회가 많은 기업의 경우 통상 변동성이 크죠. 잠재적 소송 위험도 큽니다.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경영인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혹시 투자가 잘못되면 투자 실패에 대한 과도한 책임을 져야 하거든요. 과도한 책임을 지는 게 두려워 제대로 투자를 못하게 되면 기업은 미래 성장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막겠다는 게 이 조항의 본래 목적입니다.

올 들어서도 상당수 상장사들이 이같은 이사 책임 경감 조항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기계 제조 업체 러셀, 축전지 제조 업체 에이에프더블류, 도매 업체 포비스티앤씨 모두 올해 처음으로 이사 책임 경감 조항을 도입했죠.

사실 이사 책임 경감 조항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합니다. 일단 우려의 시각이 있습니다. 경영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할수록 아무래도 경영자는 기업 경영에 더 신중하게 됩니다. 더 책임감 있게 기업 경영에 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임을 덜어주다 보니 오히려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임원의 사적 이익을 위한 기업의 이익 침해 활동을 억제하지 못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은 이 조항이 임원에 대한 배상 책임을 제한해 임원의 위법 행위에 대한 억제력이 약화된다는 근거를 들어 주주총회 때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실례로 국민연금은 올해 SKC코오롱PI의 정기 주총에서 무더기 반대표를 행사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사 책임 경감 근거를 신설한 안건이었습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이사 책임 경감 조항을 도입하게 되면 주주 권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국민연금의 이번 반대표 행사에도 불구하고 SKC코오롱PI가 상정한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됐습니다. 최대주주 측 지분율이 높고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5% 미만이었거든요.

이와는 달리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반대로 이사 책임 경감 조항을 도입하지 못한 곳도 있습니다. 올해 초 국민연금은 강원랜드 임시 주총에서 강원랜드 전 사외이사와 비상임이사 7명에 대한 책임 경감 안건을 반대했습니다. 책임 경감 제도의 도입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데다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국민연금 외에도 강원랜드의 최대주주인 한국광해관리공단(지분율 36.27%) 역시 이번 안건에 반대하면서 결국 강원랜드 전 이사들에 대한 책임 경감은 무산됐습니다.

강원랜드 전 이사들은 강원 폐광 지역에서 태백관광개발공사에 150억원을 기부하는 안에 찬성했다가 배임 혐의로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기부안에 찬성한 이사 7명이 연대해 30억원을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강원랜드는 임시 주총에서 7명의 이사들이 2012년 보수액의 3배에 해당하는 8157만원을 초과한 손해배상 금액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안건을 상정한 겁니다.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연구한 '이사 책임 경감 조한 도입 기업의 특성'을 보면 성장 잠재력이 낮고 주가 변동성이 높은 기업에서 이사 책임 경감 조항을 더 도입한다고 합니다. 경영자가 미래 경영 실적 하락과 주가 하락으로 인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도입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죠. 또 기업의 소유주가 등기이사로 있을수록, 기업 소유주의 주식 보유율이 높을수록 도입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사실 이사 책임 경감 조항의 근본적인 목적은 유능한 경영인을 쉽게 영입하고 이사의 진취적인 경영 활성화를 위해서입니다. 이건 상법 개정 이유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기업들이 상법 개정 취지에 맞게 이사 책임 경감 조항을 활용하기를 바라봅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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