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강성부의 KCGI 펀드, 한진칼과 싸울 때 아냐

입력 2020-04-05 17:30   수정 2020-04-06 00:3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기업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진칼(한진그룹 지주회사) 경영권을 놓고 한진그룹 측과 KCGI(일명 강성부펀드) 간 지분 확보 싸움으로 행동주의 헤지펀드 실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란 행동주의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직접 나서서 수익을 챙기는 헤지펀드를 말한다. 벌처펀드로 인식하는 시각이 있으나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벌처펀드는 부실 기업이 거래되는 세컨더리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오는 매물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일류 기업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지펀드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헤지펀드란 1949년 미국인 알프레드 존슨이 처음 만든 일종의 사모펀드다. 대체로 100명 미만의 소수 투자자에게서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아 파트너십을 결성한 뒤 조세회피지역에 거점을 마련해 활동한다.

조세회피지역은 법인 이윤과 개인 소득에 대한 원천과세가 전혀 없거나 저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지역을 말한다. 면세 대상과 정도에 따라 △조세천국지역 △조세은신지역 △조세특혜지역으로 구분된다. 조세회피지역에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이후 헤지펀드가 활동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케이맨제도와 같은 조세천국지역이 꼽힌다.

수동적 자세로 일관했던 헤지펀드 투자전략에 큰 변화를 몰고온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계기로 발생한 미국의 금융위기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처럼 당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금융위기를 맞아 대부분 헤지펀드는 ‘마진 콜(증거금 부족 현상)’을 당했다.

마진 콜은 곧바로 ‘디레버리지’로 연결된다. 디레버리지란 헤지펀드가 고객으로부터 마진 콜을 당할 경우 증거금 부족분을 보전하기 위해 기존에 투자해 놓았던 자산을 회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순차적으로 폭락하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전환됐다. 미국 단일금융법의 핵심이 된 ‘볼커 룰’에서는 헤지펀드의 상징인 레버리지 비율을 일정 범위 이내로 엄격하게 규제했다. ‘헤지펀드의 대부’ 격인 조지 소로스가 자신이 운용하던 타이거펀드 등의 자금을 고객에게 되돌려주면서 뒷전으로 물러난 것도 이때다.

하지만 엘리엇매니지먼트 운용자인 폴 싱어와 기업 사냥꾼으로 알려진 칼 아이칸 등은 새로운 규제 환경에서 적극 변신해 나갔다. ‘주주가치 극대화’와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목을 내걸고 투자 대상 기업의 모든 것을 간섭하는 능동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등으로 풀린 자금이 몰리면서 급성장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빌 애크먼의 밸리언트와 앨러간 간 적대적 M&A, 넬슨 팰츠의 펩시 이사회와 듀폰 간 분리, 아이칸의 애플 자사주 매입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돈이 되면 뭐든지 한다. 4년 전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에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한 것도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다.

싱어, 아이칸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 운영자의 게임 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비교된다. 공통점은 참가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샤프리-로스식 공생적 게임’이 아니라 참가자별 이해득실이 분명히 판가름나는 ‘노이먼-내시식 제로섬 게임’을 즐긴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갈수록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상대로 자신들의 요구를 직접 관철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는 점이다. 주가 부진 등의 이유로 제너럴일렉트릭(CE)의 제프리 이멜트, US스틸의 마리오 롱기 등이 쫓겨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트위터의 잭 도시 등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 기업 규제가 유난히 심한 나라다. 더 강한 ‘정신력(수익 추구)’과 ‘전투력(규제 완화)’을 갖춘 외국 자본이 몰려오는데, 한국에선 기업들의 ‘창과 방패(경영권 보호 장치)’를 내려놓게 하는 것은 물론 장수(CEO)를 보는 눈마저 곱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 국내 자본이 국내 기업을 상대로 싸울 때인가. 서로 협조해 맞서야 할 때다. 정책당국도 국내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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