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계소문] 정치권 표적된 음원 사재기, 선거철 '반짝 이슈'여선 안 되는 이유

입력 2020-04-11 08:40   수정 2020-04-11 10:53



"볼빨간사춘기가 사재기 가수라고?"

실체가 불분명해 수년째 의혹으로만 떠돌고 있는 음원 사재기 논란을 정치권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여전히 의혹 제기 수준에만 그칠 뿐, 시원한 강구책 하나 없는 실정이다. 그 과정에서 10여 명의 가수들이 언급됐는데 전부 "사실 무근"이라며 펄쩍 뛰었다.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 대중들의 혼란만 가중된 꼴이 됐다. 어쩌다 음원 사재기 의혹은 정치권의 표적이 된 것일까.

김근태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보는 지난 8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음원 차트 순위 조작이 있었음을 주장했다. 김 후보는 한 마케팅 회사가 불법 해킹 등으로 취득한 아이디로 음원 차트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중국 등지에서 불법 취득된 개인정보로 생성된 ID와 일반 사용자의 계정을 해킹해 취득된 ID가 음원 차트 조작에 활용됐다. 조작에 이용당한 국민 1716명의 다음 및 멜론 ID 명단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또 다시 음원 사재기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 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음원 차트 조작이 가능했던 것일까. 가요계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사재기와의 전쟁이 드디어 끝을 볼 수 있는 것인지 기대 반, 궁금증 반이었다.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김 후보의 발언만이 유일한 증거였다. 해킹으로 취득한 아이디, 그리고 순위가 조작됐다는 10여 명의 가수들까지 언급됐지만 사재기 여부를 판단하라면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마치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사재기의 실체를 분명하게 하는 과정이 선행되지 않은 탓이다.

순서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 후보는 음원 사재기 의혹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면서도 해당자들에 대한 고발은 진행하지 않은 상태였다. 선 폭로, 후 고발 조치를 예정한 것인데 문제는 이 방식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대중을 납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1월 정민당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 시절에도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당시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마케팅 업체인 앤스타컴퍼니가 설립한 인공지능 큐레이션 회사 크레이티버가 국민 1716명의 계정을 해킹해 취득한 아이디를 음원차트 조작에 활용했다는 것이 김 후보 측의 주장이다. 이미 지난 1월 앤스타컴퍼니 대표 김모 씨는 이와 관련해 새로운 음원 플랫폼을 모니터링하던 과정에서 송하예, 영탁 등의 친분 있는 회사의 노래로 단순 테스트를 했던 것이라며 사재기 의혹을 일축한 바 있다. 이후 김 후보는 고발을 진행하지 않은 채로 선거철인 현재, 다시 같은 이슈로 기자회견을 여는 방법을 택했다.

폭로 시기에 대해서도 다소 의견이 분분하다. 처음 의혹을 제기했을 때는 정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신고한 뒤였다. 정당법에 따르면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 후 6개월 이내에 5개 이상의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아야 정식 정당으로 등록할 수 있다. 정민당으로서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리고 음원 사재기 관련 기자회견이 화제가 되면서 수많은 젊은 층들이 정민당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어 이번에는 김 후보가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보로서 선거철에 연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에서 거론된 아티스트들은 전부 "사실 무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법적 대응을 시사한 곳도 있었다. 멜론 측 역시 "서버를 해킹 당한 적이 없다"며 해킹 피해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은 일절 없었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 요청이 오면 적극적으로 절차에 응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음원 사재기 의혹은 오랜 시간 가요계를 멍들게 하고 있는 고름 같은 존재다. 인지도가 낮은 가수들이 차트 프리징(chart freezing) 전후로 급격한 순위 상승을 이뤄내면 어김없이 따르는 의혹이었다. 공정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어야하는 음원 경쟁 환경에서 이는 치명적인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공정성이 훼손되고,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발생한다면 실시간 차트의 존재 이유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음원 사재기는 명백한 불법에 해당한다.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6조에 따르면 음반·음악 영상물 관련 업자 등이 제작·수입 또는 유통하는 음반 등의 판매량을 올릴 목적으로 해당 음반 등을 부당하게 구입하거나 관련된 자로 하여금 부당하게 구입하게 하는 행위는 '음원 사재기'다. 이를 어길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이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는 것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 한계가 존재했을 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차원의 진상 조사도 있었지만 사재기 유무를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이와 관련해 문체부 측은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가 아닌 행정조사였기에 한계가 존재했다. 음원 사재기는 ID 식별이 중요한데 개인정보보호법상 신원 노출이 안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경찰, 검찰 등 수사 기관이 직접 수사에 나서도록 고발을 한 사람은 없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2013년 SM, YG, JYP, 스타제국 등 대형기획사들은 함께 음원 사재기를 고발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정황은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음원 사재기는 문체부도 두손 두발을 들고, 수사기관도 등돌린 의혹인 셈이다.

그렇기에 음원 사재기 문제를 두고 실체 없는 전쟁이라는 말도 나온다. 마케팅과의 경계도 모호해 사재기 자체의 개념부터 재정립해야한다는 의견도 많다. 사재기는 분명한 불법이고, 대중문화계의 공정성을 해할 수 있는 중대 범죄다. 이로 인해 대중은 물론, 일부 뮤지션들까지 차트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선거철 정치권 '반짝 이슈'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음원 사재기 의혹이 단순히 이슈에 편승하기 위한 소재가 아닌, 올바른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뿌리 뽑아야 할 심각한 사안임을 상기해야 한다. 의혹이 유야무야되지 않도록 음원 사재기 근절을 위한 대안 마련을 위해 업계는 물론, 수사기관과 관계자들, 정치권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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