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입력 2020-04-16 17:58   수정 2020-04-17 00:04

출장 중에 공항에서 긴 줄을 서야 하는 것은 항상 고역이다. 해외 일부 공항은 일등석 승객에게 패스트트랙(fast track)으로 시간을 절약해 주는 특혜를 제공하기도 한다. 돈으로 해결되는 시장이 확장되면서 우리는 편리한 세상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이런 시장이 이제는 윤리를 밀어내기까지 한다. 이스라엘의 한 어린이집에선 끝나는 시간보다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 때문에 벌금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자 지각하는 부모 숫자가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벌금을 요금으로 생각하고 아이를 늦게 찾으러 가도 미안한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즉 돈의 힘이 윤리적 판단을 몰아낸 것이다.

최첨단 자본주의로 많은 것이 돈으로 가능해지는 미국의 경우를 들여다보자. 미국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비싼 의료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웬만큼 아프지 않고는 병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시장만능주의에 의해서 보험료를 부담할 수 있는 국민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하게 퍼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초기에는 비싼 의료비 때문에 검사도 못 받고 병원에도 갈 수 없던 많은 환자가 지금은 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자 환자 수가 폭증해 턱없이 부족한 인공호흡기 문제가 의료진과 환자, 가족 모두를 또 다른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환자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인공호흡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금, 의사들은 어느 환자를 살려야 하는지 윤리적 딜레마에 처해 있다. ‘삶의 희망이 보이는 환자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환자’를 결정하는 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 많은 생명을 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어느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달아서 회복 가능성이 높아지는지가 기준이 될 것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또는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인공호흡기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염병이 창궐해 의료시설이 부족한 극한 상황에서는 어린이집 사례와는 반대로, 윤리적 판단이 돈의 힘을 밀어내고 있다.

벨기에의 어떤 할머니는 “나는 오래 살았으니 삶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세요”라고 말하고 숨을 거뒀다고 한다. 기저질환이 있는 한 이탈리아 신부님이 인공호흡기를 젊은 환자에게 양보한 뒤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이었는데 극한 상황이 되니 공익, 윤리, 양보가 결국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와 기준이 되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이 ‘삶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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