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베트남은 지금] 베트남은 '포스트 코로나19'의 승자가 될 것인가

입력 2020-04-18 13:47   수정 2020-06-07 00:03

코로나19가 만든 국가별 명암의 윤곽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승자의 목록에 한국이 윗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국경을 열어놓은 채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차단했고, 4월15에 치러진 총선은 역대 최고 투표율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은 전 세계적인 전염병의 창궐 속에서도 인류가 세계화와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기둥을 지켜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코리아 데모크라시(Korea Democracy)’는 ‘한강의 기적’에 이어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몇 단계 올려놓을 ‘히트 상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도 승자의 명단에 조용히 이름을 올린 국가로 평가될만하다. 봉쇄와 통제라는 한국과 정반대의 방식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베트남 역시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15일 간 하루 평균 확진자 수는 2명에 그쳤다. 인구 약 1억명의 나라에서 공식 확진자 수는 18일 현재 270명 미만이다. 사망자는 여전히 ‘제로’고, 산업공단 내 감염으로 인한 ‘셧다운’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강력한 사회적 격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5월 최종 승리 선언도 가능할 전망이다. 베트남 정부가 지난 16일 마스크 수출 금지를 해제한 건 이 같은 자신감에서 나왔다.

아시아타임즈는 신뢰할만한고, 책임 있는 글로벌 일원으로 인정받기를 고대해왔던 베트남이 코로나19 창궐 이후 확실한 기회를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의 베트남 전문가인 칼 세이어(Carl Thayer) 교수의 말을 인용해 “베트남이 ‘코로나바이러스 민주주의’라는 신종 무기를 아주 발 빠르게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베트남은 최근 마스크를 비롯해 전염병 차단을 위한 각종 의료 장비들을 미국, 러시아,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내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1년 순회로 맡은 아세안 의장직을 베트남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맡을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글로벌 공급사슬(GSC)의 취약점을 코로나19를 계기로 절감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내 3M 공장에서 생산된 마스크가 수출 통제 대상에 묶인 걸 그저 바라만 봐야했다. 듀퐁의 베트남 공장이 생산한 방호복 45만개가 미국에 온전히 수출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우리의 친구 베트남”이라며 감사의 뜻을 올린 건 자연스런 반응이라고 해야겠다.

래리 커들로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지난 9일 폭스비즈니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돌아오는 기업의 이전 비용 100%를 지원 하겠다”며 “우리의 희망은 보다 많은 미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리쇼어링(reshoring,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기업들을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정책)만으로 GSC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일본 정부 역시 공급망 다원화 차원에서 탈(脫)중국을 위해 2435억엔을 배정하면서 235억엔은 리쇼어링이 아닌 다른 동남아 국가로의 이전을 위해 쓰겠다고 발표했다.

‘차이나+원’ 전략과 관련해 가장 주목해야 할 건 미국의 행보다. 미국과 베트남 관계는 미중 무역갈등 이후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최근엔 코로나19가 아교 역할을 하고 있다. 미 핵항모 승조원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등 인도태평양 해역에서 미국의 전략 공백이 발생하자 중국은 빠르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자국 동해를 남중국해라 주장하는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베트남은 전략적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 미국과 한 배를 타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전략상 베트남은 중국의 일대일로(내륙과 해상을 잇는 신실크로드 경제벨트)가 인도태평양 역내 국가들로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중요한 보루(堡壘)다. 월드뱅크(World Bank)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베트남의 올해 GDP(국내총생산)가 1.5%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역내 경쟁국인 태국은 동일한 가정 하에 ?5.3% 역(逆성)장이란 ‘미래 성적표’를 받았다.

다만, 미국이 실제로 대(對)베트남 투자를 얼마나 늘릴 지는 두고 봐야 한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쏟아 부은 직접투자(FDI, 누적 기준)는 2017년 9412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3077억 달러)을 훨씬 앞선다. 베트남으로 범위를 좁히면 숫자가 달라진다. 미국의 대베트남 FDI는 2018년에 24억 달러로 전년 대비 17% 늘어나긴 했지만, 중국보다는 한참 뒤쳐진다. 중국(홍콩 포함)은 지난해 약 68억 달러의 FDI를 베트남에 집행했다.

미국의 베트남 투자는 LNG 발전소 건설 등 ‘인프라’에 대한 투자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베트남은 석탄 화력 중심의 전력 시스템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블랙 아웃’ 공포에 휩싸여 있다. 셰일 가스 업체의 파산에 직면한 미국으로선 베트남을 ‘LNG 플랫폼’ 중 하나로 만듦으로써 전략적 동맹 관계를 발전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이 코로나19 이후 진정한 승자로 거듭나려면 미국 등 서방 세계의 기업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만들어야만 한다. 미 국무부는 홈페이지에 베트남에 대한 투자 환경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베트남으로 유입되는 강한 FDI의 흐름은 지속적인 경제개혁, 젊은 인구와 도시화, 정치적 안정, 저렴한 인건비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중대한 장애물들이 여전하다. 부패, 국제 규범과 맞지 않는 법제와 사법 시스템, 빈약한 지적재산권 집행 의지, 숙련 노동자 부족, 경직된 노동 관행, 인프라 투자 지연 등이 이에 속한다”

베트남은 1998년, 2007년 두 번의 기회를 얻었지만 모두 스스로 차버렸다. 세계가 전례 없는 금융위기를 겪었음에도, 역설적으로 당시 베트남은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본격 편입되지 않은 미숙아였던 덕에 오히려 성장의 기회를 잡았었다. 한국, 태국 등 경쟁자들의 좌초가 눈앞에 펼쳐졌으나 사회주의 특유의 비효율과 부패 탓에 시간을 허비했다. 이번에야말로 베트남이 다시 주어진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지느냐에 향후 한국과 베트남 간 관계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박동휘 하노이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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