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코로나 시대 경조사 표정

입력 2020-04-20 17:18   수정 2020-04-21 00:54


중국에서는 2013년부터 QR코드를 활용해 결혼식 축의금을 주고받고 있다. 방문객이 예식장 앞에 걸린 QR코드를 스마트폰에 읽히면 축의금이 혼주에게 바로 송금된다. 모바일 청첩장에 나온 QR코드만 있으면 축의금을 대신 전해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필요도 없다.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혼주나 상주가 계좌번호를 알리는 건 결례로 여겨진다. 물론 알음알음 파악해 송금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QR코드로 축의금과 부의금을 주고받는 사례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경조사를 서로 챙겨주며 ‘상부상조’하는 오랜 문화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결례’로 여겨지기도 한 비대면, 비접촉 송금이 확산되고 있다. 집단감염 우려로 결혼식과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형편을 이해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동료나 선·후배의 경조사를 잘 챙기는 건 직장 생활의 기본. 요즘엔 ‘돈 봉투’를 대신 전달할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식장에서 1~2시간씩 머물며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던 문화도 옅어지고 있다.

“사다리 타서 정하자”는 말까지….

면세점에서 일하는 배 과장(38)은 부친상을 당한 입사 동기의 상가에 누가 조문을 갈지 정하는 과정에서 동료들과 작은 갈등을 겪었다. 동기들은 대표 한 명을 선발해 부의금을 걷어 조문하기로 했지만, 막상 나서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동기들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반나절 넘게 정적이 흘렀다. ‘사다리를 타서 조문객을 정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배 과장은 “동기가 부친상을 당했는데 갈 사람을 사다리 타기로 정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내가 가겠다”고 나섰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인 민 주무관(31)은 총각이라는 이유로 부서의 대표 조문자로 ‘자의 반 타의 반’ 뽑혔다. 부서 선배들 모두 결혼해 배우자와 자녀를 두고 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되더라도 홀몸이니까”라는 한 선배의 말을 그냥 웃어넘겼다. 민 주무관은 “부담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같은데 싱글이라는 이유로 빈소 조문을 떠맡은 것 같아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조촐하게 혼례를 치르는 사례도 늘었다. 경기 안산의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김 대리(32)의 직장 동료는 ‘스몰 웨딩’을 올렸다. 부서별 직원 1~2명씩만 참석하도록 부탁했다. 김 대리도 부서 대표로 결혼식에 들렀다. 신랑 신부 하객을 합쳐 50여 명만 참석했다. 김 대리는 답례품을 부서 대표로 받아 동료들에게 전달했다.

식사 사라진 관혼상제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직장 동료들을 만나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저와 음식이 사라진 식장도 눈에 띈다. 상주와 혼주 그리고 방문객 모두를 코로나19의 감염으로부터 차단하려는 목적이라고 하는데, 확 달라진 분위기에 당황하는 일도 적지 않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김 대표(48)는 고등학교 동창의 모친상에 갔다가 놀랐다. 식사 대신 음료만 나왔기 때문이다. 조문객이 일시에 몰려 오래 머무르게 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란 얘길 들었다. 김 대표는 캔 음료 한 잔을 마시고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장례식장에 머문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상갓집에 가서 두어 시간 정도 식사하고, 얘기를 나누고 왔지만 요즘엔 계좌로 부의금만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며 “당황스러웠지만 괜찮았다”고 말했다. 한 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식대가 크게 줄어들면서 전체적인 장례 비용도 함께 낮아졌다”며 “감염병 우려가 오랜 기간 굳어진 문화까지 바꾸고 있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혼례나 장례에 찾아온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건 우리 전통이다. 요즘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만큼 식사를 꺼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혼례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커진 배경이다. 풍성한 음식 대신 간편한 식사를 준비해 서로 부담을 최소화하는 사례도 있다.

공기업에 재직 중인 조 대리(33)는 다음달 중순으로 예정된 결혼식에서 뷔페 대신 테이크아웃 도시락을 제공하기로 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는 “많은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청첩장을 돌리는 게 쉽지 않다”며 “찾아오시는 분들에게는 제대로 된 도시락을 드려 식장이나 댁에서 드실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참석해도, 안해도 눈치

“조사는 꼭 챙겨야 한다”는 직장 선배들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어려운 시대다. 특히 상가가 지방에 있으면 조문을 가기까지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지방 공기업에 근무하는 박 주임(34)은 지인의 부친상 소식을 들었지만, 고민 끝에 친구에게 조의금 전달을 부탁했다. 빈소 방문 자체도 그렇지만, KTX를 타고 서울과 지방을 왕복해야 하는 점이 더 부담스러웠다. 박 주임은 “못 찾아가 마음이 정말 무거웠다”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정중하게 미안함을 표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부 혼주들은 참석 여부를 고민하지 않도록 미리 ‘방침’을 확실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김 과장(36)은 이달 말 직장 상사의 자녀 결혼식을 앞두고 오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김 과장은 “평소 윗분들 자녀가 결혼하거나 직계가족상을 당했을 때 웬만하면 참석하는 게 관례였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마음의 짐을 덜고 불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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