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핑계로 안면인식 추적까지…'21세기 빅브러더'의 등장

입력 2020-04-20 17:14   수정 2020-04-21 01:56


1929년 시작된 세계 대공황은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스주의의 등장을 불러왔다. 당시 각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정부지출을 늘렸고, 민간경제에 대한 개입을 강화했다. 이른바 ‘큰 정부’다. 큰 정부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공황을 극복한 뒤 1970년대까지 주류를 이뤘다.

1980~1990년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던 큰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부활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민간기업에 대한 국유화도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큰 정부가 경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염병 방역을 이유로 등장한 비상조치들이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뉴노멀’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각종 비상조치 등 개인과 사회에 간섭이 이어지고, 비판세력 탄압이 잇따르는 ‘빅브러더’ 정부가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재정 확대 나선 각국 정부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8조달러(약 9736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돈을 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2조2343억달러(약 2729조원) 규모의 긴급예산법안을 통과시켰다. 성인 1인당 1200달러의 현금을 지급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지난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0.4% 규모다. 양적완화 등 중앙은행의 금융시장 자금 투입은 제외한 것이다.

코로나19 시대에 미국은 중앙은행(Fed)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하는 것은 물론 정부도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풀고 있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항공업체 등 대기업마저 정부에 손을 내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경기부양을 위해 회원국이 준수해야 하는 재정준칙(SGP)을 일시 중단했다. 재정적자는 GDP의 3% 이내, 정부부채는 GDP의 60%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각각 코로나19 경기부양을 위해 615억유로(약 82조원)와 450억유로(약 60조원)의 재정을 집행할 계획이다. 일본은 GDP의 19.5%에 달하는 108조엔(약 1222조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코로나19 틈타 권력 강화하는 지도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종신집권을 노려왔다. 당규나 헌법을 고쳐 기틀을 마련했다. 코로나19로 정부의 통제 필요성이 생기자 종신집권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사라졌다.

코로나19 사태를 틈타 권력 강화를 꾀하는 지도자는 이들뿐이 아니다. 2010년부터 3연임 중인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EU 회원국 중 처음으로 독재에 가까운 친정체제를 완성했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도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세계 곳곳에서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명분으로 권력을 강화하면서 견제와 균형, 토론 등 민주주의 가치가 후퇴하고 있다”고 지난 13일 보도했다.

전례없는 위기를 맞아 국민 감시를 확대하는 정부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헝가리와 폴란드는 지난달 국가비상사태를 무기한 연장하고, 정부에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전통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해온 서유럽 국가들 역시 공권력을 통해 개인 감시를 강화하는 방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영국 하원은 지난달 보리스 존슨 총리가 상정한 ‘코로나바이러스2020’ 비상 법안을 통과시켰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에 시민을 제재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프랑스 의회도 지난달 말 정부가 영장 없이 개인에게 가택 수색 및 연금 조치를 내릴 수 있는 비상사태 법안을 통과시켰다.

EU는 그동안 금기시돼온 휴대폰을 통한 개인 동선 추적도 허용했다. 한국의 확진자 동선 앱을 벤치마킹해 확진자 경로를 추적하고, 접촉한 주민 신원을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세계에서 개인정보 보호 규제 강도가 가장 센 EU에선 매우 이례적인 조치다. 중국 정부는 안면 인식 인공지능(AI)까지 활용해 개인 동선을 추적하고 있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힘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덜 개방되고, 덜 자유로운 세상이 찾아올 수 있다”고 전했다.

빅브러더 사회 오나

일부 국가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언론 등 비판세력도 탄압하고 있다. 정부 통계에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언론사를 조사하거나 외신기자를 추방하는 사례까지 잇따르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가짜뉴스 유포 시 최대 징역 5년에 처할 수 있도록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WP는 “비상조치를 활용해 비판언론이나 야당 인사를 탄압하는 정부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독재자처럼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탄압하는 사회가 생겨나고 있다는 얘기다.

국제사회는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엔은 지난달 각국 정부에 코로나19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비상조치를 남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지난달 말 공식 성명을 내고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3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권력과 적법성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 사회계약도 무너진다”며 “민주국가는 국내 정치와 국제 외교에 일정한 제약을 두고 핵심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인류는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며 “전체주의적 감시체제로 갈지, 시민사회 권한 강화와 연대의 길로 갈지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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