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밤에 취재원 찾기 소동 벌인 환경부

입력 2020-04-23 18:16   수정 2020-04-24 00:21

정부정책에 대해 언론이 비판적인 기사를 싣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해당 부처가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연락해 관련 내용을 추가로 설명하고, 때에 따라서는 항의하는 것 역시 흔하다. 하지만 기자는 지난 21일 밤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전화를 여러 통 받아야 했다.

이날 환경부가 발표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 할당기준’ 입법 예고 기사와 관련해서다. 해당 기사의 골자는 “온실가스 배출권의 무상 할당 업종을 결정하는 기준이 달라지면서 새로 배출권을 사야 하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추가 비용이 기업당 수천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철강업계의 반응도 담았다.

기사가 나간 뒤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해당 발표를 한 환경부가 아니라 철강업체들이었다. 한결같이 “기사에 인용된 철강업체 관계자가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환경부에서 ‘한국경제신문의 취재에 응한 적 있느냐’ ‘왜 말을 그렇게 했느냐’고 묻고 있다”며 “규제부처인 환경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 곤란하다”는 하소연이 뒤따랐다. 정작 환경부 측에서는 한 통의 전화도 걸어오지 않았다.

이 같은 환경부의 처사는 기사의 계기가 된 입법예고 제도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민의 일상생활이나 권리와 직결되는 법령 등을 만들거나 수정할 때 내용을 미리 알려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입법예고다. 이해관계자들은 공청회 등 공식 기구는 물론 언론을 통해서도 충분히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관련 업계에 “언론에 왜 그렇게 말했느냐”고 닦달하며 취재원 색출에 나섰다.

기사가 나간 다음날 환경부는 설명 자료를 배포하고 “산업계 의견수렴을 통해 배출권 무상할당 업종을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가 내비친 어려움에 대해 밤늦게까지 전화를 돌리며 당사자를 찾아내려 한 환경부가 산업계 의견을 가감 없이 수렴할 수 있을까.

게다가 배출권 거래제 확산을 통해 이루려는 미세먼지 감축, 재활용 활성화 등의 목표는 기업들의 불만을 무조건 잠재우며 밀어붙인다고 실현될 수 있는 목표도 아니다. 기업들의 관련 설비 개선과 기술 개발 등이 함께 이뤄질 때 산업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어서다. 지난해 말 환경부 스스로 “국내 기업을 지원해 온실가스 감축을 가속하면서 동시에 국제경쟁력 유지에 기여하겠다”고 밝힌 이유다. 한밤의 취재원 색출 작업이 스스로의 다짐과 배치되지 않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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