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그들은 왜 발리에 정착했나 [조재길의 경제산책]

입력 2020-04-28 10:32   수정 2020-04-28 10:47

10여년 전 국내에서 은퇴이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던 적이 있습니다. 제한된 생활비로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죠.

필리핀 바기오와 태국 치앙마이, 베트남 호치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피지 등 연중 따뜻하고 물가가 비교적 저렴한 곳이 각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립감에 시달리다 귀국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수 년 전 은퇴이민에 나섰던 미국인 부부의 ‘좌충우돌 이민 정착기’를 실었습니다. 주인공은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다 은퇴한 스콧 버그스타인 부부인데, 60대인 남편은 은퇴 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WSJ는 한국경제신문의 독점 제휴 매체입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2011년 우리(스콧 버그스타인) 부부는 은퇴 직후 이탈리아 푸글리아의 작은 올리브 농장을 매입했다. ‘La Dolce Vita(걱정 없는 삶)’이 목표였다. 자연의 아름다움, 문화적인 풍요로움, 따뜻한 사람들, 신선한 식재료, 풍미 가득한 포도주... 하지만 무엇이 잘못 됐는 지 금새 깨닫게 됐다.

30여년 사무실 의자에만 앉아있던 나는 ‘농부’가 될 체질이 아니었다. 농사를 짓는 건 혹독한 작업이었다. 60년 동안 사무실 작업에만 최적화된 나와 아내의 몸은 고된 농사를 감당할 수 없었다.

고립감도 몰려왔다. 도심지 아파트에 살 때만 해도 식당 극장 등 편의시설이 가까웠다. 푸글리아 농장은 달랐다. 워낙 시골이었기 때문이다. 그 마을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우리 부부뿐이었다. 현지 마을은 대부분 혈연으로 연결된 친족 사회였다. 우리가 제대로 어울릴 수 있을 리 없었다. 농장을 구입하기 전에 이런 고민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달랐을 터다.

곧바로 다른 은퇴이민지를 찾기 시작했다. 몇 가지 조건을 리스트로 만들었다.

- 연중 따뜻한 기후
- 발달된 대중교통 (더 이상 운전하고 싶지 않았다)
- 국제공항 접근성
- 어느 정도의 영어 사용
- 제한 없는 비자 프로그램
- 다양한 음식
- 수준높은 의료시설
- 비교적 낮은 생활비

구글 어스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지구 전체를 뒤졌다. 그러다 말레이시아를 발견했다. 그 중에서도 서쪽 해안의 페낭 섬을 주목했다. 숙박공유 앱인 에어비앤비를 통해 페낭에서 한 달 살기를 시도했다. 길거리 음식이 훌륭했고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했다.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등 다양한 국가의 음식이 있었다. 축제 행사 등 놀거리도 풍부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난 뒤 우리는 휴양섬 페낭이 좀 배타적인 도시란 생각이 들었다. 외부와 단절된 느낌이었다.

이후 180만명이 밀집해 있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로 향했다. 쿠알라룸푸르는 세계적인 도시다. 화려한 오피스 타워와 고층 아파트, 쇼핑몰, 저렴하고 품질 좋은 주택, 수준 높은 병원 등... 여행 가방 4개만 챙겨 이 곳으로 이주했다. 꽤 괜찮은 방 4개짜리 아파트를 월 1500달러에 임차했다. 수영장 셔틀버스 요가수업 등을 편의시설로 두고 있는 곳이었다. 취미로 요가를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 곳을 거점으로 놓고 가까운 국제공항을 통해 주변 나라를 탐험하고 다녔다. 인도와 중국, 일본도 다녀왔다. 쿠알라룸푸르는 좋은 은퇴이민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인도네시아의 ‘마법의 섬’으로 통하는 발리를 방문하게 됐다. 한 번 가니 또 가게 됐다. 이 섬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결심을 굳히고 2018년 12월 발리의 내륙 마을인 우붓에 정착했다. 우붓은 요가 교육의 중심지 격이기도 하다.

발리 사람들의 삶의 토대는 힌두교다. 인간에게 기본적인 선함이 있다고 믿는다. 여기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점차 이끌리게 됐다.

발리의 의료시설이 당초 기대만큼 좋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병원들이 즐비한 싱가포르까지 비행기로 단 2시간 거리란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물가는 저렴한 편이다. 마사지만 해도 한 시간에 6달러도 안 된다. 외식비는 매우 싸다. 멀리 이동하고 싶다면 운전해 줄 사람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아침에 커피를 함께 마신 뒤 각자 할 일을 한다. 아내는 요가 수업을 듣고, 나는 현지 카페 중 한 곳을 찾는다. 우리는 방 2개짜리 대나무로 만든 집에 산다. 정전이 잦은 건 작은 흠이다.

지난 겨울 우리의 인도네시아 비자가 만료됐다. 마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병했다. 발리에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서울을 거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지금은 잠시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아내 여동생 집에 머물고 있다.

우리 부부는 가급적 빨리 발리로 돌아가고 싶다. 그 곳에 우리의 새로운 삶이 있기 때문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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