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복지 하지말자고?"…"천만에, 제대로 잘 해야" [여기는 논설실]

핀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링크 복사 링크 복사

입력 2020-05-15 08:07   수정 2020-05-15 09:11

"그래서 복지 하지말자고?"…"천만에, 제대로 잘 해야" [여기는 논설실]


“그래서 위원님은 이 어려운 때 약자 돌보지 말자는 겁니까? 그냥 복지 하지 말자는 겁니까?” ‘위원님’이라고는 하는 데 음성이 높아진다. 잘못하다가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복지를 하되, 제대로 하자는 겁니다. 꼭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게 하자는 것이고, 자립의 기반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제 회사도 생산적 복지, 합리적 복지, 선택적 복지, 꼭 필요한 계층을 겨냥한 맞춤형 복지를 하자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번 생색만 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버젓하고 좋은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라는 주장에 동의해왔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가 아니라 ‘세금을 내는 일자리’를 역설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어느 토론회에서 복지 문제를 놓고 다른 참석자와 기자 사이에 벌어진 설전이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지만, 안타깝고 때로는 답답하다. 1회성의, 그것도 선거를 앞두고 사실상 현금을 살포하는 방식의 복지는 문제가 크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설에는 종종 쓰지만, 대면 토론회 등에서는 포퓰리즘이란 말은 가급적 피한다. 그래도 “약자배려가 영 부족하다”고 한다. 그 정도는 약과다. “고통 받는 약자를 외면하자는 거냐”라며 완전 논리비약하고, 심지어 “인간미가 없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성 비난까지 들을 때도 있었다.

◆“뭘 그렇게 따져? 따지길!”

온 나라를 불필요한 논란에 빠뜨리면서, 이런 위기 상황에서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재난지원금 문제도 그렇다. 공무원과 많은 기업들까지, 아직은 때 되면 월급이 잘 나오는 한국경제 임직원까지, 정상적으로 급여소득이 있는 사람들에게 왜 일괄로 돈을 주느냐는 게 우리의 문제제기였다. 수십억 자산이 있는 계층에 왜 나라 빚을 확대해 가며까지 돈을 주느냐는 것이었다. 실직자, 장기 구직자, 폐업지경의 소규모 자영사업자, 사업이 어려운 위기의 영세 중소기업, 직접 매출타격을 입은 한계 산업에 지원을 집중하고 오히려 이쪽에는 지원을 늘려주자는 게 우리 주장이다. 그런데 거두절미한 채 “어려울 때 국가가 너와 나, 계층 구별 없이 다 지원해주자는 데 왜 그렇게 반대만 하나”라고 따지면 맥이 풀린다.

또 다른 유형은 “뭘 그렇게 따져? 따지길!”이런 것이다. 따져야 할 것 아닌가? 미래세대에 막대한 부담을 지우는 것인데, 정부 채무가 늘어나면 국가 경제가 어떻게 되는지, 어느 계층부터 그 충격을 받게 되는 지 뻔히 예상되는데? 충격을 먼저 받고 크게 받는 쪽은 언제나 고리가 약한 취약지대부터인 것은 만고 진리다.

◆전국민 고용보험? 고용관계인가? 보험원리엔 맞나? 판단부터

어느 듯 논의가 시작된 ‘전국민으로 고용보험’도 그렇다. “경제도 어려운 때 취약자들이 모두 실업급여 받으면 좋지 않나? 그들도 좀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좀 돕자는 데, 뭘 그리 시비하고 반대하나?”라고 많이들 한다. 하지만 이런 수준으로 그치고 말면 우리사회는 퇴보할 것이다. “고용보험은, 고용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 고용자-피고용자 간에 성립한다. 또 보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가입자, 즉 보험료 납입자가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과 진짜 형평성 문제를 따져보자는 지적에 막연한 복지확대론을 또 펴면 어쩌자는 것인가. "도입 하면 얼마나 좋겠나"라는 희망론 만으로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사안이 아닌 것이다. 기여에 따른 급여(보험금 수령‘이 보험의 본질이다”이런 원칙이 견지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실직자는 어떻게 하냐고?” 기존의 다른 여러 가지 복지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 복지프로그램에 따르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그쪽을 따로 보강해야 한다. 예산을 그쪽에 집중하는 게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런 논의와 논란은 거의 모든 정책 분야에서 비슷하게 되풀이 된다. 생산성과 관계없이 임금을 급격하게 올려서는 안 된다는 쓴소리도 그렇다. 최저임금에서 숱하게 반복됐다. “노동 약자들 손에 급여가 더 들어가게 하자는데 정말 반대만 한다”고 오히려 억지를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에서도 반복됐다.

무리한 재정확대, 특히 적자 국채 발행을 늘리면서 나라빚을 확대해 다음 세대에 부담을 줘선 곤란하다는 주장을 사설, 개인 글, 토론회에서 일관되게 많이 강조해왔다. 답답하고 가슴 아픈 것은 재정건전 담론에 대해 “참 나쁜 주장을 한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데 ‘먼 미래’만 말하는 것도 나쁘지만, 주변의 사정을 알고도 이러면 더 나쁘다”고도 한다. 더구나 경제와 재정을 알만 한 사람이 그런다. 미국 일본 유럽국가처럼 기축 국가도 아닌 한국이 재정까지 부실해지면 어떻게 될지 알만 할 텐데 ‘나쁜 주장’이라니…. 토론회에서 이런 주장을 접하면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재정위기국(PIIGS)들이 어떤 위기를 겪었는지 못 봤나. 모른다면 무지요, 알고도 재정확대만 외친다면 참 무책임하고 나쁜 주장’이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온다. 하지만 가급적 좋은 말로 대응할 뿐이다.

◆성장 vs 분배, 급등한 최저임금, 근로 시간·형태…곳곳에 '극단의 배척논리'

성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성장을 주장하는 이유도 같다. 일자리가 여기에 좌우된다.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에서 국가재정의 기본 축은 세수가 성장에 달렸다. 적절한 성장은 사회의 안정과 안전에서도 필수다. 사회의 건전성과 준법정신, 개인의 윤리 문제와도 이어진다. 그게 현실 가능한 최선의 복지인 것이다. 그런데도 성장론에 대해 백안시하는 경우가 나온다. 분배를 외쳐야 정의로운 듯 말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선동과의 경계가 아슬아슬하다. 그런데도 듣지는 않은채,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지적과 주장에 대해 “맞긴 맞는 얘기인데, 지금 상황이 워낙 안 좋으니….”라고만 해도 절충의 여지가 있겠건만…. 토론에서도, 실제 정책과 집행에서도. 심지어 ‘나쁜 주장’이라고도 한다. 그런데도 비슷한 논쟁이 반복되는 게 현실이다. 한경 논설실 근무가 쉽지 않은 것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게 안타깝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핀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링크 복사 링크 복사

관련뉴스

    인기 갤러리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