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친구를 얻는다는 것'에 대하여

입력 2020-05-14 17:56   수정 2020-05-15 00:08

‘집콕’ ‘록다운’ ‘셧다운’으로 표현되는 차단의 시기를 겪으며 무엇보다 그리운 것은 친구들과 어울려 한잔의 술과 함께 풀어놓는 이야기보따리다. 고되고 단조로운 삶 틈틈이 세상은 어찌 돌아가는지, 내 생각은 이런데 자네 생각은 어떤지 논하는 정겨운 시간도 함께 차단돼서다.

가족들과 웅크리고 있는 동안 마음속 공허는 깊어만 간다. 국내외에서 보도되는 가정폭력 증가 기사도 이런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로마시대 철학자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말처럼 ‘기쁨을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줄여주는 존재인 친구’와 마음 편히 어울리지 못한 탓이다.

이십년지기 친구들의 일상을 다룬 ‘슬기로운 의사생활’(tvN)은 이와 같은 시대적 공허함을 치유하는 데 주력한다. 전문의이고 교수임에도 이들의 삶은 평범하다. 퇴근 후 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20년째 함께하는 밴드 공연은 이들이 ‘워라밸’ 시대의 대표주자임을 강조한다.

이혼하고 다섯 살 아들을 키우는 간담췌외과 교수 익준(조정석 분), 형제가 모두 성직자인 소아외과 교수 정원(유연석 분), 까칠하지만 따뜻한 흉부외과 교수 준완(정경호 분), 아버지 내연녀와 대립 중인 병약한 모친을 둔 산부인과 교수 석형(김대명 분), 모든 일에 완벽하지만 본질은 허당인 신경외과 교수 송화(전미도 분)는 서로의 결여를 수다와 먹방, 음악으로 메꾼다.

수술 장면이 매회 등장하고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중요한 축이지만 결국 가족의 희생과 의료진의 활약으로 물 흐르듯 해결된다. 사건 사고, 갈등의 연속보다는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삶에 방점을 둔 까닭이다. 필요 이상으로 대사가 길고 롱테이크가 많은 것도 그런 방향성을 드러내는 것. 자칫 지루해지기 쉽지만 제작진은 이런 착한 드라마도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다룬 ‘부부의 세계’(JTBC)는 반대 의미로 화제다. 완벽한 삶이라 자부했던 가정의학과 전문의 지선우(김희애 분)가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의 외도를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뻔한 불륜 서사보다 주목받는 것은 빠른 전개로 드러나는 친구들의 치밀한 배신 행각. 전말을 파악한 선우의 고통이 폭발하는 1회 엔딩 신은 드라마 전체를 아우르는 명장면이다.

17세기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저서 《세상을 보는 지혜》에서 “친구를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인생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오랜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도 잃는 것이다. ‘부부의 세계’ 주인공 지선우는 오랜 친구와 남편의 신의를 잃고 그간의 삶을 정리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정원의 어머니 정로사(김해숙 분)와 병원 이사장 주종수(김갑수 분)는 60년 우정을 유지하며 노년의 삶에 활력소가 된다.

비대면을 장려하는 요즘 다중 화상회의가 가능한 줌 등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각자의 집에서 술 한잔 들고 모임을 하길 추천한다. 오프라인만큼은 아니더라도 친구들과 삶을 공유하며 풍요로움을 유지하기 위한 좋은 시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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