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피카소와 김홍도의 특별한 스승

입력 2020-05-15 17:51   수정 2020-05-16 00:10

파블로 피카소는 키가 작았다. 163㎝도 채 되지 않았다. 체형은 땅딸막했다. 스페인 시골 출신의 스무 살 청년이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을 때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대 중반까지 몽마르트르의 낡은 창고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지냈다. 그림을 출품해도 반응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이 나타났다.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였다. 마티스로부터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천재적인 화가”라는 평을 들은 그는 마티스를 스승이자 대선배, 조언자로 모시고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사제지간 넘어 선의의 경쟁

두 사람은 이후 예술적 자극을 주고받으며 20세기 미술사의 새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마티스는 1905년 살롱전과 1907년 앙데팡당전에서 색채의 혁명을 일으키며 야수파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그보다 열두 살 어린 피카소도 ‘아비뇽의 처녀들’로 세상을 놀라게 하며 입체파의 서막을 화려하게 열었다.

그러나 둘의 기질은 달랐다. 마티스는 프랑스 북부 태생의 냉철한 이성주의자였고, 피카소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출신의 뜨거운 열정주의자였다. 마티스가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 병상에서 그림에 눈을 뜨고 화가가 된 데 비해 피카소는 15세 때 왕립아카데미에 조기입학할 정도로 타고난 소질을 지녔다.

화풍도 판이해서 마티스는 색채 위주의 안정과 조화를 중시했고, 피카소는 형태 위주의 긴장과 정열에 초점을 맞췄다. 이 때문에 둘은 자주 반목했고 10년 이상 만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서로 작품을 교환하며 런던에서 대규모 합동전시회를 여는 등 상보적인 관계로 발전했다.

마티스는 85세를 일기로 타계하기 전에 “내 그림과 피카소 그림을 함께 전시하지 말아주게. 불꽃같이 강렬하고 번득이는 그의 그림 옆에서 내 그림들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라고 말했다. 마티스의 부음을 들은 피카소는 “다시 태어난다면 마티스처럼 그리고 싶다”며 “내 그림의 뼈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마티스는 나의 영원한 멘토이자 라이벌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들이 현대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순히 사제지간이라는 수직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호혜적인 선의의 경쟁 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서로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끊임없이 영감의 불을 지펴준 예술적 동반자였다.

피카소가 태어나기 130여 년 전, 조선에서 ‘풍속화의 대가’ 단원 김홍도가 탄생했다. 그도 피카소처럼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났지만 중인이라는 신분의 굴레에 갇혀 있었다. 그가 ‘조선 4대 화가’ 중 한 명으로 성장하게 된 이면에는 표암 강세황의 특별한 지도가 있었다. 강세황은 우리 화단에 서양 기법을 처음 도입한 주인공으로 61세에 과거에 급제해 한성부 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을 지낸 이력을 가졌다.

그는 경기도 안산에 살 때 자기 집에 드나드는 7~8세가량의 김홍도를 가르쳤다. 그의 천거에 힘입어 김홍도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도화서 화원이 됐다. 29세에는 영조의 어진(초상화)과 훗날 정조가 된 세손의 얼굴을 그리는 데 참여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런 김홍도를 강세황은 이렇게 평했다. “나와 김홍도의 사귐은 앞뒤로 세 번 변했다. 시작은 그가 어려서 내 문하에 드나들 때로 그림 그리는 비결을 가르쳤고, 중간은 관청에서 아침저녁 서로 마주했으며, 마지막은 함께 예술계에 있으며 참된 친구로 지냈다.”

그러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은 대체로 천과 종이에 그려진 것을 보고 배우고 익혀 공력을 쌓아야 비로소 비슷하게 할 수 있는데, 그는 독창적으로 스스로 알아내어 교묘히 자연의 조화를 빼앗을 수 있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극찬했다. 그는 손자뻘의 지체 낮은 화원에 불과한 김홍도의 풍속화를 ‘입신의 경지’에 비유하고는 자신도 그림 속에 어린 종의 모습까지 묘사한 풍속화를 그렸다.

스승은 소나무, 제자는 호랑이

말년에는 둘이서 한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에 나오는 소나무는 강세황이 그렸고, 소나무 밑의 호랑이는 김홍도가 그렸다. 노년의 경륜이 담긴 소나무 그림에 수만 개의 호랑이 털을 정밀하게 그려 넣은 이 그림을 보면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들 또한 서양의 마티스와 피카소처럼 한 시대의 문예사조를 완성한 사제간이자 예술적 동지였다.

예부터 스승과 제자가 함께 가는 길을 사제동행(師弟同行)이라고 했다.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깊은 뜻은 동서양을 다 아우른다. 아무리 위대한 스승도 한때는 모두 누구의 제자였다. 그 제자가 커서 또 누군가의 스승이 된다. 스승의 날, 국립중앙박물관의 단원 김홍도전을 둘러보면서 100~200여 년 전 예술가들의 특별한 인연을 새삼 떠올려 본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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