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대한항공을 둘러싼 '동상이몽'

입력 2020-05-19 15:09   수정 2020-05-19 17:54

≪이 기사는 05월18일(08:46)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하루아침에 지옥에 빠진 기업들이 있다. 해외여행이 모두 중단되었으니 항공사와 여행사는 졸지에 문을 닫을 처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저비용 항공사(LCC)들 모두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이 참에 항공업을 구조조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모두가 관심이 있는 '매물' 목록 제일 첫 번째에 오르내리는 게 대한항공이다. 카카오톡을 통해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SK그룹에 대한항공 인수를 부탁했다는 글이 한동안 퍼지기도 했다. 거짓 정보라고 생각한다. 농담이라도 해서는 안 될 말이고, 김 실장과 청와대가 그 정도 분별력은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가 대단히 매혹적이었던 모양이다. 근래 만난 투자은행 업계나 사모펀드 업계의 많은 이들이 대한항공이 이 참에 '새 주인'을 찾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고들 여기던 차에 그럴싸하게 작성된 글이 떠돌자 아예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준 느낌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 글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산업은행이 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채권단 관리 체제로 들어가고, 두 회사를 합한 다음 SK를 비롯한 좀 더 여력이 있는 곳에 되팔 것이라는 구체적인 과정도 거론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한항공은 아직 주인이 있는 회사다. 한진칼이 29.96%를 가지고 있고, 소액주주도 있다. 불과 지난 3월27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기존 경영진과 KCGI 등은 대한항공을 거느린 한진칼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표 대결을 벌였다. 정부와 채권단에서 자금을 지원받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뿐이다.



정부는 이미 1조20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 있고, 앞으로 아마 몇 조원은 더 들어갈 것이다. 돈을 넣지 않으면 자본잠식을 피할 수 없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이럴 때 기존 주주의 주식 가치는 휴지 수준으로 전락한다. 채권단의 자금을 지원받은 많은 기업이 차등감자 등을 통해 대주주 지분율을 0%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대한항공도 만약 정부가 이번에 지원하는 수 조원으로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취득하기로 결정한다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단번에 대한항공의 주주가 될 터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의 항공화물 매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하는 7000억원 규모 자산유동화증권(ABS)과 3000억원 규모의 영구 전환사채(CB)를 사 주는 등의 방식으로 자금을 줄 예정이다. 3000억원의 영구채는 CB인 만큼 여차하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지만 바꾸기 전엔 의결권이 없다. 아시아나항공도 작년 4월에 같은 방식으로 5000억원을 지원받았다. 정부가 이렇게 결정한 것은 대한항공이 위기 전에는 정상기업이었던 만큼 현재의 위기는 경영실패보다는 코로나19에서 기인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영권 위협을 받지 않고 몇 조원을 지원받는 대한항공은 이에 상응하는 자구노력을 요구받고 있다. 1조원어치 유상증자와 서울 송현동 부지 매각 등으로 5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놨고, 기내식과 항공기정비(MRO), 마일리지 사업부 등의 매각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것 뿐이다. 코로나19로 회사가 어려워져 외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정만으로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아무런 명분이 없다.

물론 몇 조원의 지원금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조원태 회장은 결과적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당분간 경영권을 지키게 되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비효율적으로 운영돼 왔거나 잘못 운영되는 부분이 있다면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최근 시장에선 한진칼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대한항공이 무리수를 두려 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과거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기내식 사업권을 줄 테니 지주사를 지원해 달라고 했던 전례가 다시 거론되기도 한다. 당연히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의혹이 나오도록 빌미를 제공하면 그때는 한진그룹이 '국민에게 진 빚'이 진짜로 경영권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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