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시혁과 증권사의 불안한 'BTS 쇼' [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입력 2020-05-22 13:29   수정 2020-08-25 08:45

≪이 기사는 05월22일(10:2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캔디크러시(Candy Crush Saga)’를 아시나요?

같은 색의 사탕을 연달아 3개 이상 연결하면 사탕이 터지며 점수를 얻는 스마트폰 게임입니다. 2014년 플레이어수 1억명을 돌파하며 이른바 ‘매치(match)-3’ 퍼즐 게임의 지존으로 떠올랐는데요. 덕분에 현재 몰타공화국에 본사를 둔 게임 개발사 킹(킹닷컴)도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아이템 판매 등 캔디크러시 수입이 하루 100만달러에 달했으니까요.

그런데 뉴욕증시에선 이 성공적인 게임을 사뭇 다른 방식으로 기억합니다. 2014년 ‘최악의 기업공개(IPO)’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킹의 공모주 가격은 주당 22.5달러로, 모바일·소셜 게임회사로선 미 IPO 사상 최대인 76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는데요.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15.6%나 급락했습니다.

냉정한 평가의 배경은 전체 매출의 78%를 하나의 게임에 의존하는 킹의 사업 구조였습니다. 게임의 강한 중독성을 과신하고 수요예측 때 비싼 주가를 써냈던 월가의 기관투자가들과 달리 일반 투자자들은 성장 잠재력을 회의적으로 바라봤던 것입니다. 이후 회사 실적은 실제로 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주가는 절반 수준에 가깝게 떨어졌다가 2015년 블리자드에 인수됩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인수 가격은 주당 18달러였습니다.

올해 국내 대형 공모주를 기다리는 투자자들은 어쩌면 킹의 IPO 사례를 유념해야 할지 모릅니다. 한류의 신기원을 연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이자, 한국 엔터테인먼트업계의 ‘킹’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가 화려한 데뷔 무대를 준비 중이기 때문입니다.

방시혁 대표가 이끄는 이 콘텐츠플랫폼 회사는 지난 2월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JP모건을 대표주관사로 선정하며 IPO 절차의 공식 착수를 알렸습니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주식투자자를 공개모집하는 절차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기존 엔터테인먼트 관련 상장사들을 압도하는 이익을 자랑하는 빅히트는 기업가치만 무려 2조~6조원으로 거론됩니다. 작년 영업이익은 987억원에 달했는데요. 국내 3대 상장 연예기획사 JYP(영업이익 435억원, 시가총액 약 8500억원), 에스엠(404억원, 6500억원), 와이지(20억원, 6000억원)를 합친 것보다 큰 규모입니다.

주목할 점은 빅히트도 킹의 캔디크러시처럼 거의 모든 수입을 BTS란 단일 아이템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빅히트는 작년 수입의 90% 이상을 BTS 관련 매출에서 올렸습니다. BTS의 인기가 실적을 좌우하는 셈이죠.

유행에 민감한 한 가지 수입원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는 IPO 과정에서 주가를 실제 가치보다 크게 부풀릴 위험이 있습니다. 증권사들이 공모주의 가치를 제안(희망가격 범위 제시)할 때 사업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내 증권사들은 일반적으로 주가수익비율(PER: 시가총액/순이익)을 따져 기업가치를 매기는데요. 경쟁 회사들의 시가총액이 순이익의 15배라면, 최근 순이익에 15배를 곱하는 식입니다.

단일 아이템 의존 기업의 IPO는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큰 실망을 안긴 사례가 꽤 있습니다. 2013년 ‘애니팡’ 개발사인 선데이토즈, 2014년 ‘쿠키런’ 개발사인 데브시스터즈가 대표적입니다. 두 회사의 상장 후 주가 그래프를 보면, 수많은 공모주 투자자들의 상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게임의 ‘롱런’ 기대와 달리 소비자들의 기호는 빠르게 변했고, 기존 주력 상품을 대체할 강력한 새 상품도 내놓지 못하자 손절매도 물량이 꾸준히 흘러나왔습니다.

당시 게임회사들의 부진한 주가 흐름은 한국거래소 상장심사팀에도 뼈아픈 일이었는데요. 주식시장 진입 기업의 수질을 관리해야 하는 거래소는 이후 단일 아이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기업의 심사를 상당히 까다롭게 진행했습니다. 최근 빅히트가 사업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려고 인수 대상 기업을 적극 물색하는 배경과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증권사들은 이번 빅히트의 공모주 희망가격 산정 때도 PER을 활용할 텐데요. BTS의 인기에 편승해 단기 차익을 거두려는 기관이 수요예측에 몰리면 공모가액을 실제 가치보다 비싼 수준에 확정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공모주를 청약하는 개인 투자자들은 불안정한 사업 포트폴리오에 따른 실적 변동 위험을 떠안아야 합니다. 물론 지분 45%를 보유한 방시혁 대표, 그리고 공모금액에 비례해 수수료를 얻는 증권사 관점에선 축포를 터뜨릴 만한 일이지만요.

아무튼 세계적인 보이그룹을 내세운 이번 IPO ‘쇼’는 막강한 구매력을 자랑하는 팬 ‘아미(ARMY)’를 비롯해 폭넓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 게 분명해 보입니다. 난생 처음 공모주 청약을 계획하고 있을지 모를 수많은 소녀 팬들에게 어떤 기억을 안겨줄지 궁금해집니다.

회사 관계자는 IPO 계획 관련 질문에 “어떤 이야기도 해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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