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어느 편?"…압박에 엇갈린 한·일 [조재길의 경제산책]

입력 2020-05-24 10:41   수정 2020-08-21 00:01



금주 초 열렸던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선 대만의 참석 여부를 놓고 무척 시끄러웠습니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일부 의원들이 “대만이 WHO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한국 등 55개국에 서한을 보낸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죠. 소수 민족 분열을 우려해 ‘하나의 중국’을 고수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 정부는 강력 반대했습니다.

대만은 기구한 운명을 안고 있는 나라입니다. 중국 압력 탓에 국제 사회에서 ‘국가’ 자격을 인정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유엔 회원국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가와 외교 관계가 단절됐습니다. 2016년부터는 WHO 옵서버 자격까지 박탈됐지요. 미국의 강력한 군사·외교·경제적 지원 덕분에 그나마 버텨 왔습니다.

미국의 대만 지지 요청에 대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미 전통 우방국은 물론 일본도 적극적인 동참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지요. 우리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이 어떤 입장인 지에 대해 코멘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만은 결국 화상으로 진행됐던 이번 WHO 총회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국가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대만 정부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성공적인 (방역) 경험을 공유할 게 많았는데 그 기회를 얻지 못해 매우 실망했고 분노했다”고 했습니다.

대만의 WHO 총회 참석을 둘러싼 미·중 기싸움은 작은 사례일 뿐입니다. 실제 총회에서 미국은 “중국이 코로나 발병 원인을 숨기는 바람에 전 세계에 엄청난 희생을 초래했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코로나 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수 차례 강조했구요. 중국은 “미국이 자신의 방역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맞섰으나 미국에 비해 발언 강도는 훨씬 약합니다.

미국 당국자들의 중국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 수위가 점차 한계치를 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군사적 대치만 없을 뿐이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지요.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 역시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최고조에 달하고 있구요.


오는 11월 3일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중국과의 긴장 관계를 고조시킬수록 정부·여당에 유리하다는 것이지요.

실제 정치전문 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올해 4월 이후 실시된 19개의 미국의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단 한 차례도 조 바이든 전 부통령(민주당 대선 후보)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지요. 2016년 대선 때도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를 예측한 여론조사와 주류 언론은 거의 없었습니다. 선거 당일까지 힐러리 당선을 99%라고 확신했으나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가 달랐지요. 트럼프 대통령 및 그의 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율은 매우 견고하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이전부터 줄기차게 “중국이 미국의 부를 빼앗아 간다”고 공격했고, 재선 후에도 이 기조에 변함이 없을 겁니다.

미국은 군사·경제 등 모든 측면에서 중국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운용 중인 핵 항공모함은 10척이 넘지만 중국은 검증되지 않은 항모를 겨우 두 척 진수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미국 달러는 글로벌 기축통화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탈(脫)중국을 목표로 친미(親美) 국가들로 구성된 경제협력체 ‘경제번영 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EPN)’에 참여할 것을 한국에 제안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자유 세계 국가들로 구성된 경제 블록에 한국이 동참해 달라는 겁니다. ‘세계의 제조 공장’으로 부각된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 중심국 지위를 끌어내리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한국의 입장은 난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경제적 성과를 축적해 왔으니까요.

제조업 강국이지만 내수가 작아 수출 지향형 경제일 수밖에 없는 한국은 ‘달리는 자전거’와 같습니다. 멈추면 쓰러질 수 있지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은 36.3%(2018년 기준)에 달합니다. 일본(14.8%) 대비 두 배를 훌쩍 초과합니다. 전 세계 50개국이 넘는 나라와 적극적인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해 온 배경입니다.

군사적 동맹국인 미국과는 2012년 3월 FTA를 맺었습니다. 전체 수출의 13.5%(작년 기준), 수입의 12.3%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지요. 미국과의 교역으로 작년에만 115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습니다. 2015년 12월 FTA를 체결했고, 작년 전체 수출의 4분의 1(25.1%)를 중국에 기댔습니다. 중국 현지공장을 통한 내부 판매액이 제외됐는데도 그렇습니다. 수입 의존도는 21.3%였구요. 중국과의 거래에서 작년에만 290억달러의 흑자를 냈습니다.

미국과 중국 중 한 쪽을 포기하기엔 희생이 너무 크다는 게 문제입니다. 특히 중국과는 어느새 경제적으로 떼낼 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지요. 중국이 본격적인 보복 조치에 나설 경우 2016년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게 될 겁니다. 핵심 수출품인 반도체만 해도 작년 중국 비중이 39.7%에 달했습니다.

일본의 움직임은 훨씬 단순해 보입니다. 일찍부터 미국과의 단단한 동맹을 과시하고 있으니까요. 미국의 전략과 보조를 맞춰 탈중국에 나서는 자국 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리쇼어링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친미 경제블록인 EPN엔 이미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요. EPN엔 일본 외에 캐나다 영국 호주 인도 등이 초기부터 참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은 아직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 이후’까지 기다리자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낮게 본 겁니다. 설사 바이든 전 부통령이 11월 새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공세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바이든이 대통령직을 맡으면 중국이 잃을 게 많다’(China has much to lose from a Joe Biden presidency)란 기사를 내기도 했지요. 미·중 관계는 상당부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입니다.

또 한국이 글로벌 밸류체인(GVC)의 다원화를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만 단시간 내 현실화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통상 전문가인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지금으로선 뚜렷한 해법이 없다”고 답답해 했습니다. 다만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어려운 상황일수록 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국제적 상식 및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대응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이를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설득하는 게 최선이 아니겠느냐. ”고 말했습니다.

아슬아슬하지만 당분간 ‘줄타기’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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