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마이너스 금리' 갈등하는 美, 금리상한제 시행할 수도

입력 2020-05-26 18:14   수정 2020-05-27 00:11

코로나 유동성 경색 해법은?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 고용 창출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준금리를 노멀 스텝 방식, 즉 0.25%포인트씩 조정하는 ‘금리 정책’과 국채를 매입 또는 매각해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는 ‘공개시장 정책’이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비상 국면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비전통적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금리 정책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서너 단계씩 내리는 빅스텝 방식으로 제로(0) 또는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린다. 공개시장 정책도 조작 대상을 넓히고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대상 채권을 무제한 사주는 양적 완화를 추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로 분류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구상의 어두운 질병 문제이기 때문에 초기 충격이 크고, 경제 주체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아 현금 확보부터 나선다. 각국 중앙은행이 코로나19 발생 직후 비상 체제로 돌아서 비전통적 통화 정책을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3월 임시회의를 계기로 미국 중앙은행(Fed)은 1913년 설립 이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중앙은행의 가장 큰 기능인 ‘최종 대부자 역할’까지 포기하고 있다. 공개시장 조작 대상에 국채뿐 아니라 회사채, 심지어는 넣어서는 안 될 정크본드까지 포함시켰다. 코로나 사태 직후 유동성 경색 현상이 심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경제활동을 서둘러 재개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성급한 경제활동 재개로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할 경우 공개시장 조작에 더 이상 포함시킬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점이다. 최후 유동성 공급 대책으로 만기 50년 이상 영구채를 발행해 중앙은행이 사주는 ‘국채 화폐화’ 방식이 있으나 부작용이 커 추진하기가 어렵다.


무력화되는 중앙銀 통화정책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5년 전부터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극단적인 정책을 추진해 왔다. ECB와 BOJ의 실증 사례를 보면 이 제도는 궁극적으로 민간 예금의 마이너스 금리로 귀착된다. 민간이 예금할 때 마이너스 금리인 수수료를 낸다면 여유 자금을 은행에 예치하기보다 소비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실에서는 정반대 상황이 발생했다. 이 제도 도입 이전에 예치했던 예금까지 인출해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금융권에서 돈이 아예 퇴장한다면 경제 활력은 더 떨어진다. 마이너스 금리제 도입 이후 유럽, 일본의 대표적 경제활력지표인 통화유통속도(국내총생산(GDP)/통화량(M2))와 통화승수(통화량(M2)/본원통화량)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마이너스 금리제를 검토해 온 Fed도 이 대목을 가장 고민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제는 정책 무력화 명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통화 정책의 무용론이 제기된 지는 오래됐다. 경제 주체가 미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함에 따라 금리 인하와 총수요 간의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통화 정책 전달경로’가 작동하지 않고 있어서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이다.

금융위기 이후 제로(0) 또는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진 기준금리를 정상화시키는 출구전략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로 금리가 더 떨어짐에 따라 이제는 내리고 싶어도 더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다. 테일러 준칙 등으로 금리 수준을 평가해 보면 대부분 국가의 기준금리는 적정 수준에 비해 크게 낮다.

항상소득가설(밀턴 프리드먼), 생애주기가설(안도·모딜리아니) 등 소비 이론에 따르면 가계는 기대소득(항상소득)이 높아져야 소비를 늘린다. 마이너스 금리제는 기대소득을 낮추는 요인으로, 소비보다 저축을 늘리는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난다. 지급 문제를 놓고 논란이 많았던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도 임시소득으로, 경기부양 효과는 크게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0년대 일본이 경기부양 차원에서 지급한 상품권이 좋은 사례다.

문제는 극단적인 처방인 마이너스 금리제가 의도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수단이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달 중순 열린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웹세미나에서 제롬 파월 Fed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을 거부하면서 마이너스 금리제보다 더 좋은 제3의 방안이 있다고 발언해 Fed가 다음에 내놓을 통화 정책 수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비전통적인 통화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검토해 온 ‘금리 상한제’다. 2차 대전 직후 사용했던 금리와 공개시장 정책을 묶은 이 제도는 양적 완화 대상에 목표선을 설정해 놓고 그 이상으로 금리가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대상 채권을 매입해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도 공급한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전통적인 통화론자가 주장한 ‘통화 준칙(monetary rule)’과 같은 원리다.

장단기 금리조정도 한계

하지만 이 제도는 경제 주체가 인플레이션을 기대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채권 매입과 유동성 공급, 그리고 인플레이션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리 상한제 도입의 또 한 가지 근거로 삼고 있는 ‘수확체감의 법칙’, 즉 너무 많이 풀리고 금리가 낮으면 돈 경시 풍조로 통화 정책 효과가 줄어드는 문제도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

마이너스 금리제가 효과가 없다면 수익률 곡선을 직접 조절하는 방식도 제3의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장 참여자에게 수익률 곡선은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을 때는 ‘단저장고(短低長高)’, 그 반대의 경우 ‘단고장저’라는 용어로 익숙하다. 경기와 연관시킨다면 전자가 발생할 때는 ‘회복’, 후자가 발생할 때는 ‘침체’로 받아들여진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이 방법을 통한 경기 판단과 예측이 잘 맞아 종종 경기부양 수단으로 활용됐다. 코로나 사태 이후 대부분 국가는 수익률 곡선의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세계 경기 침체와 맥을 같이한다. 단고장저의 수익률 곡선을 정상화시키는 데는 단기채를 매입하는 것과 장기채를 매도하는 방안이 있다. 후자는 장기채 매도 과정에서 유동성 위축이 불가피해 코로나 사태를 맞아 유동성을 최우선적으로 공급하는 각국 중앙은행이 쓰기 힘들다.

각국 뉴딜정책은 궁여지책

전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준금리를 제로 또는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뜨린 여건에서 수익률 곡선의 정상화만을 위해 단기금리를 정책금리보다 더 떨어뜨리면 정책금리의 시장금리 조절 기능을 무력화하는 등 또 다른 부작용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장단기 금리조정을 통한 경기 부양은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각국 중앙은행 수장이 비전통적인 통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정 정책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치 입을 맞춘 듯 각국 정부는 ‘뉴딜 정책’으로 화답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최악으로 몰리고 있는 경제를 회복시킨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통화 정책이 무력화되는 것에 따른 궁여지책 성격이 강하다. 두 목적 중 어느 것이 강하냐에 따라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의 앞날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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