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아의 독서공감] 단어 하나에 달라지는 관계…배려와 민폐는 '한 끗 차이'

입력 2020-06-04 18:18   수정 2020-06-05 02:15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앞부분이다. 만약 꽃이라 부른 존재를 그냥 지나치거나 밟아버린다면, 꽃이라 불린 존재는 어떤 심정일까. 꽃이 아니라 잡초나 쓰레기라 명명돼 사람의 손에 의해 땅에서 뜯겨 생명을 잃는다면 그는 꽃이되 꽃이 아닐 것이다.

말과 글 역시 그렇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쓰는 이와 읽는 이의 마음이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소통은 마음을 맞추는 일이다. 소통하기 위해선 단어를 세밀히 고르는 안목과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다. 말과 글은 총칼보다 잔인한 무기가 되기도 하고, 생명을 구하는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여기 세 권의 책은 사람과 사람 간 ‘마음의 손끝’을 맞추기 위한 소통법을 알려 준다. 《보통의 언어들》은 유명 작사가이자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인 김이나 씨가 5년 만에 내놓은 에세이다. ‘좋아한다’ ‘외롭다’ ‘찬란하다’ 등 한 단어를 주제로 글을 써나갔다.

저자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감정서랍이 있다”며 “비록 나의 경험치가 아닌 일임에도, 진심으로 내 마음속의 서랍을 열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디테일한 설명이 사람들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해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공감을 사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배려의 말들》은 100개의 문장과 말을 소개하며 ‘진정한 배려’에 대한 단상과 자신의 일상을 짧고 담백하게 담아낸 책이다. 책을 쓴 류승연 작가는 “상황을 이해하고 타인을 생각하고 나 자신까지 살피고 나서야 적재적소에 맞는 배려를 주고받을 수 있다”며 “애석하게도 우리는 배려에 대해 잘 모른다”고 지적한다.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다”(임홍택, 《90년생이 온다》) “손을 흔들어 주어서 고마워요. 몇 번이나 흔들어 준 손 고마워요”(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욕설은 듣는 쪽보다 하는 쪽의 품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박서련, 《체공녀 강주룡》) 등 마음에 담을 만한 문장들이 배려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어느 노(老)언론인의 작문노트》는 일본 아사히신문 1면 칼럼 ‘천성인어(天聲人語)’를 13년 동안 썼던 저널리스트 다쓰노 가즈오의 글쓰기 안내서다.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글은 곧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마음으로 글을 쓰기 위해 글 잘 쓰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기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 그대로의 진심”이라며 “현실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직시하고 인간 본성의 가난함과 삶의 치졸함을 끌어안으며 자신의 추악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마음만 있다고 글의 리듬감, 신선함, 짜임새 등이 저절로 갖춰지는 사람은 천재밖에 없다”고 꼬집는다.

오늘 얼마나 많이 소통하고 배려했다고 착각했을까. 배려와 착각은 한끗 차이임을 이 책들은 알려준다. 그 작은 틈이 존재를 살리고 죽일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단 한 개의 단어가 사람을, 관계를,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음을 말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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