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봉투 전해줘라"…故 구본무 당부에서 시작된 LG의인상

입력 2020-06-05 11:19   수정 2020-06-05 14:06


"이 봉투를 전해주고 와라."

2015년 1월 구본무 당시 LG그룹 회장은 한 직원에게 현금이 든 봉투를 건네며 경기 의정부에 사는 이승선씨에게 전해주고 오라고 당부했다.

LG그룹에는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 시절부터 의로운 사람에게 자금 등을 지원해주는 전통이 내려오고 있었다. 백범 김구 선생, 백산 안희제 선생 등을 도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한 것이 시초다.

“돈을 버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라 하지만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 기업은 몸담고 있는 사회의 복리를 먼저 생각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의 백년대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구인회 창업주의 지론은 잘 알려졌다. 그는 평소 "우리도 기업을 일으킴과 동시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런 기업만이 영속적으로 대성할 수 있는 것이다"고도 강조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구본무 회장이 2015년 이 씨에게 현금을 전달하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간판 시공업자 이 씨는 당시 의정부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밧줄을 이용해 탈출하지 못한 시민 10명을 혼자서 구해냈다. 언론에서는 그를 '동앗줄 의인'으로 불렀다. 구본무 회장은 그런 이씨에게 사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씨의 주소를 수소문 한 뒤 자택으로 찾아간 직원은 그를 만나는 데 성공했지만, 이씨는 한사코 사례를 거절했다. 그는 "그런 건 됐고 술이나 한잔 사쇼"라며 집 인근 고깃집에서 직원과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LG그룹의 직원은 며칠 뒤 다시 이씨를 찾아갔다. 재차 봉투를 받아달라고 권유했지만 이씨는 또다시 손사레를 쳤다. 오히려 "지난번에 얻어먹었으니 이번엔 내가 사겠소"라며 직원에게 저녁식사까지 대접했다.

이 일화를 듣고 감동한 구본무 회장은 의인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타인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의인들을 공식적으로 포상하자는 취지였다. LG의인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제정된 계기였다. LG그룹 고위관계자는 "보이지 않는 지원도 좋지만, 이 씨와 같이 사적인 답례는 거절하는 의인도 있기에 공식적인 상을 주기로 한 것"이라며 "의인의 선행을 귀감으로 삼아 널리 알리면 사회에 '선항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의인상을 만든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LG복지재단은 그 해 9월부터 LG의인상 수상자를 선정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만 정연승 특전사 상사, 이기태 경감, 이병곤 소방관에게 의인상을 수여했다. 지금까지 LG의인상 수상자는 122명에 달한다.

유지는 계승돼 발전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2018년부터는 LG의인상 수상 범위를 사회에 귀감이 될 만한 봉사와 선행을 한 시민들로까지 넓혔다. 이달 4일에는 사고로 불길에 휩싸인 차량에 갇힌 운전자를 구한 최철호씨가 LG의인상을 받았다. 최씨는 지난달 23일 부산 강서구 대저동 서부산 유통단지 입구 도로에서 전복된 차량을 발견한 뒤 "살려달라"는 운전자의 외침에 달려가 구해냈다. 사고 차량은 완전히 불탔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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