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봉오동·청산리 전투와 함께 기억해야 할 것

입력 2020-06-09 18:14   수정 2020-06-10 00:27

100년 전 만주에서 독립군 특공대가 일본군 1개 대대를 무찌른 ‘봉오동 전투’는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전쟁 사상 첫 승리를 거둔 전투였다. 홍범도 장군 지휘 아래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 명을 부상시킨 이 전투에서 독립군 전사자는 단 네 명뿐이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봉오동 계곡에서의 승리는 독립군이 넉 달 뒤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1200여 명을 궤멸시키는 ‘대첩’으로 이어졌다. 홍 장군은 이 전투에서도 김좌진 등 후배들을 도와 압승을 이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맞은 지난 7일 트위터에 “(봉오동 전투 승리로) 독립운동가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우리 민족은 자주독립의 희망을 갖게 됐다”는 글을 올렸다. “의병뿐 아니라 농민과 노동자 등 평범한 백성들로 구성된 독립군의 승리였기에 겨레의 사기는 더 고양됐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그런 위업을 이룬 홍 장군이 지금 묻혀 있는 곳은 이역만리,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이다. 그렇게 된 사연이 기막히다.

만주 간도지방의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잇달아 치욕적 패배를 당한 일본군은 ‘간도지방 불령선인(不逞鮮人) 초토화계획’이란 이름의 독립군 근거지 소탕작전에 나섰다. 한인 독립군이 다시는 만주일대에서 활동할 수 없도록 씨를 말리겠다며 1만80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그리고는 1920년 10월과 11월 두 달 사이에만 훈춘을 비롯한 간도지역 한인 3623명을 학살했다(독립신문). 한인촌의 가옥 3500여 채, 학교 60여 개소, 교회 20여 개소와 양곡 6만여 석까지 불태웠다. 말 그대로 ‘초토화’였다.

일본이 의도했던 대로 독립군이 더는 간도 일대에 발을 붙이기 어려워졌다. 홍 장군의 독립군 부대는 일본군 손길이 미치지 않는 러시아의 연해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러시아(당시 소련) 정부는 중국과 달랐다. 통치자로 등극한 요시프 스탈린에게 한인 독립군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1937년 극동지역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킬 때 홍범도 장군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한겨울 혹한 속에서 17만2000여 명의 극동지역 한인(고려인)들이 무작정 옮겨지는 과정에서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게 다행이었다. 그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게 된 사연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홍 장군 유해의 봉환을 추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와 독립운동의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늦었지만 마땅한 결정이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게 있다. ‘경신참변’으로 불리는 한인 대학살 사건이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와 같은 패배가 더는 없도록 하겠다며 ‘초토화’에 나선 일본군 앞에서 독립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수많은 ‘농민과 노동자 등 평범한 백성들’이 허망하고 원통하게 목숨과 생활터전을 잃었다.

‘경신참변’은 한 해 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무장 독립군을 군사적 기반으로 삼으려던 임시정부의 구상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사회평론가 복거일 선생은 저서 《낭만적 애국심》에서 “조선 독립군처럼 비정규전을 펴는 군대는 활동의 근거가 있어야 보급을 받고 인원을 보충할 수 있었다”며 “일본군은 당연히 그 근거를 없애려 했고 결국 만주의 조선인들이 참혹한 화를 입었다”고 진단했다. 자신들보다 몇 배나 덩치가 큰 중국과 러시아를 연달아 격파하며 무력과 국력을 팽창시키고 있던 일본 앞에서 ‘봉오동’과 ‘청산리’는 비용이 너무 컸고, 지속가능할 수도 없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100주년을 맞는 올해 우리가 기억하고 새겨야 할 역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이유다. 일본군을 통쾌하게 쳐부순 두 전투만 놓고 보면 ‘자신감’ ‘희망’ ‘사기의 고양(高揚)’이 솟구칠지라도, 그 대가가 혹독하고 참담했음에 눈을 감아서는 곤란하다. 잠시의 ‘정신승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국력을 키워나가는 게 홍범도 장군과 봉오동 전투를 진정으로 기리고 기념하는 것임을 새기게 된다.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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